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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말고 갤러리’ DP월드투어 코리아 챔피언십

'취재는 나 말고도 하니까 그냥 갤러리가 돼버리자!'

지이코노미 박준영 기자 | 10년 만에 열린 DP월드투어와의 공동 주관 대회 소식. 카메라를 챙겨 인천으로 향했다. 하필이면 비가 온다. 그래도 좋다. 나는 오늘 취재 말고 구경나온 갤러리다. 모드를 전환하고 대회장에 나간 에디터의 망상과 허언이 곳곳에 숨어있는 제1회 코리아 챔피언십 리뷰를 소개한다.

 

 

지난 4월 27일부터 30일까지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인천 송도)에서 KPGA와 DP월드투어가 공동주관한 ‘제1회 코리아 챔피언십’이 열렸다. 유럽투어와 KPGA가 공동 주관해 대회를 개최한 건 2008년부터 2013년까지 개최된 ‘발렌타인 챔피언십’ 이후 10년 만이다.


총상금 2백만 달러, 한화로 약 27억 원이고 우승상금은 34만 달러(약 4억 5천만 원)의 대규모 대회였다. 역대급 규모였다는 2022년 코리안투어가 21개 대회, 총상금 203억 원이었던 걸 생각하면 코리안투어에서 보기 어려운 큰 대회였음은 자명하다. 총상금 규모가 크게 올라 25개 대회, 250억 원 규모라는 2023시즌으로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시즌 첫 유러피언투어
이번 DP월드투어 코리아 챔피언십은 2023년 첫 유러피언투어 대회이기도 했다. DP월드투어는 유럽의 남자 프로골프투어로 2023시즌에는 전 세계 26개국에서 최소 39개 토너먼트를 가진다.

 

156명의 선수가 출전하는 가운데, DP월드투어 시드 순위 상위 95명과 코리안투어 시드 순위 상위 57명의 선수, 4명의 추천 선수가 기량을 겨뤘다. 박상현 프로가 한때 선두로 나서는 등 선전했지만 최종 공동 3위를 기록했고, 우승은 파블로 라라자발(스페인)이었다.


우승자에게는 우승상금과 더불어 DP월드투어 시드권(2024, 2025년)과 ‘레이스 투 두바이 랭킹’ 460포인트와 ‘제네시스 포인트’ 1,000점이 부여되며 2023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 출전 기회가 주어진다. DP월드투어 시즌 상위 10위 선수들에게는 PGA 투어 진출권이 제공되니 DP월드 투어 소속 선수들에게도 중요한 첫 경기였다.

 


갤러리가 된다는 것
에디터가 대회장에 간 건 3라운드가 열린 4월 29일이다. 잡아도 하필 우천 예보가 있는 날에 취재 일정을 잡게 돼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거대로 묘미는 있다. 대회에 갤러리로 참여한다는 건 선수들의 모습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 외에도 색다른 즐거움이 즐비하다.


심지어 한 번쯤 직접 라운드를 했던 골프장에 가더라도 골프를 치러 갔을 때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라운드를 위해 골프장에 가면 아무래도 동선이 딱 정해진다.

 

주차장에서 백을 내리고, 주차를 한 뒤 클럽하우스로 들어간다. 체크인을 하고 로커로 들어가 환복을 한 뒤, 스타트 지점에 나가 서성이다 카트에 탑승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조금 서둘렀다면 연습 그린에서 공을 좀 굴려보는 정도다.

 

회원제 구장에서 새벽 라운드를 주로 한다면 동선은 더욱 짧아지기도 한다. 어쨌든 갤러리로 골프장에 느긋하게 가면 갈 수 있는 곳은 다 둘러보게 돼 색다르다.

 

 

비가 오는 틈을 타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은 회원제 18홀 골프장으로 이미 굵직한 국제 대회를 여럿 개최한 대한민국 대표 코스다.

 

2015년에는 세계 4대 국가 대항전 중 하나인 프레지던츠컵을 개최하기도 했다. 코스 전체가 벤트그라스 양잔디가 깔려 밟는 곳마다 푹신하다. 우천으로 지연되는 틈을 타 18번 홀 스탠드를 통해 그린으로 숨어 들어보고 싶었지만, 당연히 가는 곳마다 미안할 정도로 친절하게 제지당했고, 빈 스탠드에 덩그러니 서서 빈 그린을 향해 의미 없이 셔터를 눌러대다 내려왔다.

 

 

팬 존에서는 이벤트와 체험 행사 등이 마련된 듯했지만, 이른 시간인 데다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아 한산했다. 푸드트럭이 있는 곳에는 대형 천막과 테이블은 물론이고 대회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대형 화면도 설치돼 중계를 보며 먹거리를 즐기기도 좋았다.


국내 대회와는 달리 미디어센터에는 해외 취재진들이 상당수 보였다. 이들은 스타팅 지점 근처에 모여 진지하게 회의를 하기도 하고, 로커 입구 옆에서 하루종일 고기 굽는 향기를 풍기던 수제 버거를 들고 바쁜 걸음을 재촉하기도 했다.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선수보다 외국 선수들이 더 많이 보였다. 물론 눈에 익은 선수가 없으니 경기를 하고 있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는 풍경에 가까웠지만, 외국 선수들과 스탭들이 압도적으로 많아 이국적이기까지 했다.

 

스폰서 중 하나인 에미레이트항공의 한국인·외국인 승무원 2인이 곳곳을 돌며 사진도 찍어주고, 모자를 나눠주는데 다른 갤러리들에게는 먼저 다가가면서도, 일부러 근처에 서성이는 에디터 쪽으로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마! 이게 한국 골프장이다!
경기가 무려 1시는 넘어야 재개된다는 소식에 18번 홀 근처를 어슬렁 대다 홀인원 경품이 걸린 파3 17번 홀로 홀린 듯 걷기 시작했다. 홀인원 경품이 눈에 들어왔다. 제네시스 GV70 일렉트리파이드와 GV60 전기차가 마치 ‘나를 타고 가라’는 듯 에디터를 유혹했다.

 

역시 코스는 비어있었고 ‘공이랑 아이언 하나 꺼내올까’라는 상상화 그리기 대회가 머릿속에 펼쳐졌지만, 홀인원을 해도 차를 줄 것 같지 않아서 한번 봐주기로(?) 했다.


차가 2대인 건 대회 전부터 회자되던 캐디를 위한 홀인원 경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러 선수와 캐디들이 샷을 하기 전 “나만 믿으라구!”, “기대할게!” 같은 우스갯소리를 주고 받는 장면이 목격됐다.

 

이날 가장 많은 갤러리를 동원한 건 역시 2R까지 8언더파를 기록해 공동 선수에 올라 챔피언조로 플레이한 박상현이었다. 악천후로 3시가 넘어서야 첫 티샷을 할 수 있었는데, 비는 그쳤지만 바람이 어찌나 심한지 유럽 선수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유럽 골프의 가장 큰 장벽인 악천후의 악명을 익히 알고 있기에 엄살로 느껴진 것도 사실이었지만, 한편으론 뒤틀린 ‘국뽕’에 차오르는 순간이기도 했다. 마! 이게 K-웨더다!

 

비밀① 부러운데 부럽지가 않어

갤러리 모드로 대회장에 갔다곤 해도 엄연히 ‘MEDIA’라고 써진 비표를 차고 있었음에도, 나와는 클래스가 다른 활동 범위를 보여주는 외국인 사진기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나를 포함한 다른 기자들과 달리 티잉 그라운드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 전속 포토그래퍼인 듯했다.

어깨에는 거대한 배틀액스…아니 거대한 렌즈를 장착한 장비를 메고 초원을 누비는데, 3개 홀이 교차된 지점에서 앉았다가 잠깐 안 본 사이에 저 멀리서 엎드려 쏴를 하고, 또 잠깐 사이에 다시 이쪽으로 와 셔터를 눌러댔다. 힐리스라도 신고 있나 싶었다.

그가 한 번씩 자세를 바꿀 때마다 젖은 지면과 장비의 무게감으로 힘겨운 신음이 들려온 건 비밀로 하자.

 

 

 

비밀② 딩 일가와의 조우

대회가 재개되면서 1번 홀로 나갔다. 23조의 티샷이 준비되고 있었다.
Jorge Campillo(스페인)와 아마추어 신분으로 출전한 Wenyi Ding(중국)이었다. 우연히 타이
밍이 맞아 이들을 잠시 따라 나갔다. 호르헤 캄피요는 1986년생 DP월드투어 3승의 베테랑답게 단단한 플레이를 해나갔고, 2004년생 웨니 딩도 190㎝ 장신에서 나오는 시원한 샷을 선보였다.

마침 중국인으로 보이는 일가족이 우리와 함께 이 조를 따라다니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딩 선수의 부모와 여동생으로 보였다. 다소 기량의 미숙함이 보였지만, 제법 의연하게 대회를 치르는 모습에 어떻게 사용할지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일단 카메라에 그의 모습을 담았다.

그걸 본 가족들이 에디터를 신기하게 쳐다봤고, 목에 건 MEDIA 비표를 보더니 자기들끼리 수군댔다. 여동생 쪽은 자기 오빠 차례에 에디터가 카메라를 들지 않으면 뭐 하고 있냐는 듯 이쪽으로 연방 고개를 돌렸다. 알 수 없는 압박감(?)에 카메라를 내릴 수가 없었다.

 

 

대회보다 더 재밌는 연습구역
우천으로 순연된 경기를 기다리며, 드라이빙 레인지와 연습 그린을 제쳐두고 숏 게임 연습장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레인지는 어차피 볼이 날아가는 걸 자꾸 놓치고, 연습 그린은 조금 심심한 대신 숏 게임 연습을 하는 곳에서는 선수들의 스핀 컨트롤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 한 선수가 눈에 들어왔는데, 다른 선수들은 굴리기 3회, 띄우기 3회 같은 식으로 연습을 하는 반면, 이 선수는 일부러 매번 칠 때마다 칩샷, 피치샷, 로브샷을 바꾸는 건가 싶을 정도로 다채로운 샷을 보여줬다.

 

반대로 또 다른 선수는 로브샷만 파고 있었는데, 떨어지는 범위가 일정하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고 백스핀으로 당겨지는 거리마저 거의 같아 소름이 돋았다. 거의 벌어지지 않는 광경이지만, 오래 보고 있으면 실수해놓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다가 자기도 모르게 주위를 살피는 인간미 넘치는 장면도 목격하게 된다. 대회 자체보다도 이런 연습 장면을 넋 놓고 볼수 있다는 특권도 누릴 수 있는 게 갤러리다.

 

 

직관 후 불타오른 연습 욕구
갤러리 예찬을 좀 더 하자면 무엇보다 골프에 대한 욕구가 끓어오른다. 4월 말, 골프 시즌을 앞두고 한창 물오른 샷감에 자신감을 충전하던 에디터가 아이언, 특히 숏 아이언을 어떻게 쳐야 하는지 아예 잊어버린 것만 같던 시기였다. 또다시 골프에 흥미를 잃을 것만 같은 시기 말이다. 하기 싫으면서도 묘한 부채감에 연습장을 억지로 끌려가듯 가는 그 시기다.


선수들의 플레이와 연습 장면을 보자면 알 수 없는 해방감 같은 게 느껴진다. 사실 대회 자체는 중계를 보는 것만큼 박진감 있게 즐기기 어렵다. 특정 조, 특히 챔피언조와는 동떨어진 조를 따라다니면 더 그렇다. 대신 조금만 더 몰입한다면, 그러니까 선수가 샷을 준비할 때 나 역시 ‘나라면 어떻게 칠까’를 고민하고 선수의 샷을 보게 되면 이게 참 공부가 되면서도 ‘안구정화’가 된다. 내가 시뮬레이션 한 대로 선수가 플레이를 하면 더 그렇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감이 잡힐 것이다. 맞다. 대리만족이다. 내 시뮬레이션과 선수의 플레이가 맞아떨어지기라도 하면 만족감은 흥분감으로 고조된다. 그러면서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망상에 빠지면서 어제만 해도 꼴도 보기 싫던 골프백을 얼른 만나러 가고 싶어진다.

 

우천 예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탓에 챔피언조가 3시에나 티업을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탓에 이후 일정을 위해 4시쯤 대회장을 빠져나왔다. 다른 일정이고 뭐고 연습장으로 직행하고 싶었다. 그래서 갤러리 다녀와서 아이언 난조는 해결됐냐고? 알만한 사람이 그런 질문을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