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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도 골프를 치나요?"

-목사님 질문에 "목사님도 골프를 치십니까?"라고 묻자 그 목사 멍한 표정 지어
-미국 보스턴 문수사 창건한 도범 스님, 쉰일곱에 골프장에 처음 나가, 지금은 골프로 건강 지켜

도범 스님

[골프가이드 김대진 편집국장] 스님이 골프를 친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 저는 아직까지 스님이 골프를 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니 스님이 골프를 친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습니다. 목사님이 골프를 친다는 얘기는 언뜻 들어보긴 했지만 스님이 골프를 친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지요.
스님이라면 으레 고즈넉한 산사에서 수도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속세와 인연을 끊고 수행하는 분들이니까요.
가끔 산 속에서 산책을 하거나 무술을 연마하는 스님들을 TV에서 본 적은 있습니다. 하안거나 동안거를 끝내고 여러 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행하는 만행(萬行)도 낯설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스님이 골프를 친다니 저는 적잖게 놀랐습니다. 더구나 스님이 최근 ‘골프 공과 선사’란 책까지 냈습니다.
‘도범 스님’ 얘기입니다. 도범 스님은 1967년 해인사에서 일타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뒤 여러 절에서 참선 수행했고 봉암사 주지를 지냈습니다. 1980년대 후반 미국으로 건너가 1992년 미국 보스턴에 문수사를 창건했고 지금은 그 절의 회주(會主)로 있습니다.

도범 스님이 처음 골프장에 나간 게 쉰일곱 때입니다. 90년대 어느 봄날 친분 있던 일간지 모 기자가 찾아와 골프장에 가자고 해 따라 나섰습니다.
그 기자는 스님에게 “운동이 부족해 건강이 좋지 않은 스님께 골프를 권하고 싶어 찾아 왔다.”고 했지요. 스님은 기자가 자신에게 운동이 부족해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한 말이 충격으로 다가왔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골프를 시작하게 된 스님은 허약 체질이 건강 체질로 바뀌고 노후 건강을 골프로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도범 스님

다음은 ‘골프 공과 선사’ 내용 중 골프와 관련된 주요 구절을 가려 뽑은 것입니다.

보스턴 사람들은 피부색과 상관없이 성직자와 골프 경기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특히 명상하는 수행자와 골프 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마음을 비우고 겸허해야 하며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운동인 골프를 불교와 관계가 깊은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7쪽

미국에 사는 수행자들이 가끔 골프장에 가는 것은 누구를 이기기 위함도 아니요, 무엇을 얻어오고자 하는 것도 아니며, 그동안 갇혀 있던 생각들을 버리고 오기 위함입니다. -8쪽

골프는 남과 싸우는 운동이라기보다는 자신과의 싸움이요, 명상하면서 하는 운동이라서 불교와 관계가 깊습니다. 불교에서는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고 하며, 골프를 치면 인과가 즉시 나타나서 더욱 각성하게 됩니다. 골프는 육체보다 정신력을 더 앞세우는 운동입니다. -17쪽

골프를 치면서 이겨야 할 상대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임을 스스로 터득해갑니다. 누구나 허욕을 버리기 위해 마음을 비웠다고 하면서 무언가에 연연해하거나 집착하고 있습니다. 공을 치는 순간도 딴생각을 하다가 실수를 합니다. 불교에선 모든 괴로움이 탐(貪), 진(嗔), 치(癡)에서 비롯되듯 골프에서도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미스 샷의 원인이며, 미스 샷이 골퍼를 고달프게 합니다. -30쪽

골프 공(Ball)과 불교의 공(空)은 많은 의미를 함께 하고 있으며, 한문 空을 ‘빌 공’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 공(空)은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가 아닌 아공(我空), 법공(法空), 구공(俱工)
으로 나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드라이버 헤드 속이 비어 있다는 것이지 드라이버가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 20쪽

'골프 공과 선사' 책 앞 표지

불교에서 마음을 비우라고 하듯이 골프에서도 마음을 비우라고 하며, 공(Ball)이 홀 108번뇌에 들어가면 108번뇌가 공(空)이 되는 이치입니다. - 23쪽

골프도 수행처럼 성급하거나 경솔하지 않고 침착해야지, 화나는 대로 또는 기분 내키는 대로 하다가는 후회하기 마련입니다. 모두가 골프를 정신력 게임이라고 하는 것은 육체적인 훈련만으로 되는 운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34쪽

마음을 비우고 스윙을 하면 무의식에서 리듬과 속도가 연습으로 익힌 그 상태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프로는 무념무상(無念無想)에서 치고, 싱글은 일념일상(一念一想)에서 치며 초보자는 다념다상(多念多想)에서 친다’는 우스개가 있습니다. - 37쪽

세상에서 잘 맞지 않는 것이 네 가지 있는데, 복권과 사주와 일기예보 그리고 골프공이라고 합니다. 특히 골프는 잘 맞으면서도 안 맞는 운동이라서 땀 흘려 도전하게 하고 그 땀이 체력을 단련시켜 줍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역량을 발휘할수록 더 연습하고 연구하게 하며 더 재밌어지는 운동입니다. -54쪽

골프는 나이나 체격 및 체력에 상관없이 청소할 힘만 있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운동입니다. 골프는 다른 상대 없이 혼자서 연습도 하고, 혼자서도 필드에 나갑니다. 남녀노소 귀천 없이 누구와도 함께 치므로 미국에서는 대중운동입니다. 골프를 좋아하다 보면 자연친화적이 되고 세상사도 둥글게 살아가야 한다는 이치를 터득하게 됩니다. -98쪽

수행자가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언행이 일치하지 않으면 모두 경멸하듯이, 골프를 아무리 잘 쳐도 속임수를 쓰는 사람은 모두 싫어합니다. 참다운 수행자는 보는 이가 없다 해도 스스로 올바르게 살아가며, 골프 역시 심판이 없어도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룰을 범하지 않는 운동입니다. -108쪽

골프를 할 때도 힘을 빼고, 공을 끝까지 보며, 머리를 들지 말고, 백스윙을 여유 있게 올렸다가 유연하게 공을 맞혀야 합니다. 숨을 쉬면서도 쉬고 있는지 모르거나, 걸으면서도 걷는다는 자각 없이 걷듯, 잡념을 잠재우고 무심의 상태에서 스윙해야 합니다. - 175쪽

최경주는 샌드웨지가 두 개 반이 닿도록 고향인 전남 완도 바닷가 모래밭에서 하루에 네 시간씩 벙커 샷을 연습했다고 합니다. 하루에 4천여 개 이상씩 연습공을 치면서 정신력도 강해졌다고 합니다. 미국의 필 미켈슨은 골프대회가 끝나면 퍼팅 그린에 홀로 남아 100번 이상 더 연습하고 호텔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186쪽

1948년 US오픈에서 벤 호건(Ben Hogan)이 우승하던 날, 그는 기자회견도 마다하고 연습장으로 갔답니다. 친구가 “이 사람아, 자네는 지금 막 챔피언이 되었네!”라고 말하자 “아니야, 나는 오늘 고쳐야 할 문제점을 세 개나 알아냈네”라며 만류를 뿌리치고 연습에 매진했다고 합니다. -187쪽

도범 스님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골프를 치는 분들이라면 아마 상당 부분 공감(共感)하실 것입니다. 유명 선수들이 쉼 없이 연습한다는 얘기엔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세계적인 유명 선수들은 상상 이상으로 연습을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그들이 연습하는 것을 지켜본 적이 없어 자세히는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주말 골퍼들은 어떻습니까. 제대로 연습도 하지 않고 골프공이 잘 맞기를 바라는 분들이 많습니다. 연습을 하지 않고 필드에 나가면 공이 잘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한데도 말입니다. 어떻든 골프를 잘 치기를 바라는 분들은 모름지기 연습을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도범 스님은 수행을 많이 하신 분이라서 그런지 확실히 골프에 대한 이해가 남다른 것 같습니다. 특히 골프를 불교 수행과 비유한 표현은 쉽게 납득이 갑니다. 스님 중에서도 선 수행을 하신 분이 골프를 더 쉽게 친다고 하니 선(禪) 수행이 골프와 관련이 깊은 모양입니다. 그건 아마도 골프와 선 수행 모두 평정한 마음이 전제돼야 잘 될테니까요. 어떻든 도범 스님이 골프를 하고 난 뒤 건강이 좋아졌다고 하니 축하할 일입니다.

미국은 골프에 대한 시각이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릅니다. 우리나라에선 골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아직 남아 있지만 미국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도범 스님도 그 점을 강조했습니다. 골프는 그저 스포츠일 뿐입니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내에선 아직 그렇지 못합니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듭니다. 골프장에 가는 것도 힘들고 입장료(그린피)도 비쌉니다. 거기에 카트비와 캐디피, 세금까지 더해지면 일반 서민들이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은 괜찮을지 몰라도 그 이상은 무리입니다.
이참에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적은 비용으로 손쉽게 골프를 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지만 역시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골프장은 골프장대로 죽을 맛이라고 합니다. 최근엔 최저임금도 가파르게 오르고 주 52시간 근무제도 확대될 방침이어서 상당수 골프장이 난처한 입장인 모양입니다.

도범 스님

어떻든 이번에 도범 스님이 내신 책을 읽고 스님도 골프를 치는 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도범 스님 뿐 아니라 다른 스님도 얼마든지 골프를 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골프가 스님들의 건강을 위해 좋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도범 스님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