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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국가올림픽위원회(NOC)로부터 골프 국가대표 코치에 선임된 조진현

“내 인생의 마지막을 우즈베키스탄에 바쳐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조진현 코치는 우즈베키스탄 골프 국가대표팀 선발과 양성 계획에 대해 아주 열정적으로 얘기했다.

[글: 골프가이드 김대진 편집국장 사진: 조도현 기자/ 일부 조진현 코치 제공] 조진현(61). 그는 최근 우즈베키스탄 국가올림픽위원회(NOC)로부터 골프 국가대표 코치에 선임돼 5월초 타슈켄트로 떠날 예정이다. 우즈베키스탄골프협회 명예회장인 양찬국(70·인천 영종도 SKY72GC 헤드프로) 프로의 추천을 받았다.
조진현 코치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처음부터 골프를 한 골프 선수나 프로 출신이 아니다. 공부 잘 하고 음악에 소질이 뛰어났던 그는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서 한창 잘 나가는 회사원 생활을 하다 나이 40에 이를 접고 뒤늦게 골프의 길로 뛰어들었다. 웬만한 용기로는 내리기 어려운 결단을 한 것이다.
1997년 미국으로 가 샌디에고골프아카데미(SDGA)에 유학하고 2000년 돌아온 그는 골프 전문 케이블 TV방송 등에서 골프 해설위원을 지내며 이름이 알려졌다.
이후 그는 각종 강연회에 인기 강사로 나서기도 했고 골프잡지 발행인, 골프아카데미 원장, 대학 골프학과 교수, 골프회사 운영 등 안해 본 게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해왔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그도 한때 외국브랜드 골프용품 유통사업에 뛰어들어 6개월만에 접어야만 하는 좌절을 겪었다.
골프 프로페셔널. 골프 관련 전문직업인이라는 의미다. 그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그가 우즈베키스탄 골프 국가대표 코치로 어떤 구상을 갖고 있는 지 들어봤다.

3월 29~31일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 있는 타슈켄트 레이크사이드 골프클럽에서 열렸던 '제2회 우즈베키스탄 오픈 국제골프대회' 개막식 때 표도르 김 우즈베키스탄골프협회 회장(중앙), 양찬국 프로(오른쪽)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사진 김대진)

2022년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2024년 파리올림픽 출전 겨냥해 남녀 골프 국가대표 양성 계획

“2022년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2024년 파리올림픽 출전을 겨냥하고 있다. 남녀 6명씩을 선발하겠다고 일단 우즈베크스탄 NOC에 보고했다”
조진현 코치의 얘기다.
앞으로 남녀 선수 후보 각 24명을 뽑아 매년 6명씩 세 차례 단계적으로 탈락시키고 마지막까지 남은 각 6명을 출전 선수로 확정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그는 지난 3월말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서 남녀 선수 후보 11명을 1차로 선발했다. 남자 6명, 여자 5명이었다. 남녀 각 25명과 13명이 지원했다.
그는 “체육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많지만 초등학생이나 미취학 아동도 있다. 선발 땐 실기와 인터뷰를 거쳤다. 실기는 순발력과 근력, 지구력을 봤고 인터뷰는 적극성과 집중력, 열정을 체크했다. 골프를 잘 칠 수 있는 신체 상태인지를 점검했다.”고 했다.
앞으로 선수 후보들은 계속 선발할 예정이다.
그는 “가능하다면 타슈켄트 뿐만 아니라 우즈베키스탄 전역을 대상으로 뽑고 싶다. 타슈켄트 외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되지 않겠는가. 물론 골프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훈련을 시켜야 한다. 그러다보니 체육 분야 엘리트들이 모인 체고 학생들이 선발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제2회 우즈베키스탄 오픈 국제골프대회' 중 대회 경기위원과 카자흐스탄에서 출전한 선수가 얘기를 하고 있는 장면, 왼쪽이 조진현 코치

골프 인프라나 노하우도 없는 우즈베키스탄에서 국가대표 선수를 선발하고 양성하는 과정은 ‘맨땅에 헤딩’이나 다름없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남녀 골프 국가대표 선수들을 선발하고 양성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나 다름없다.
그만큼 골프 불모지다. 우즈베키스탄엔 골프를 지도할 자국 지도자도 없고 인프라나 노하우도 거의 없다.
조 코치는 “주위에서 기부를 받아 퍼터 20여개를 현지로 보냈다. 앞으로 골프업계에 있는 지인들에게 도움을 더 요청할 계획이다. 현지 골프연습장에 있는 낡은 골프공도 모두 우리 공으로 채울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 골프협회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NOC가 어려운 환경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게 고맙다”며 “조만간 양찬국 프로님과 함께 비탈리 펜(H.E Vitaliy FEN) 주한 우즈베키스탄 대사님을 찾아 뵙고 인사도 드리고 본국 골프 발전을 위한 도움도 요청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코스에서 직접 레슨을 하고 있는 조진현 코치

선수들에겐 영어로 가르쳐야 국제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 최종 선수 선발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은 향후 골프산업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 강구 중

조 코치는 앞으로 선수 후보들은 영어로 가르칠 계획이다. 골프용어가 영어고 영어를 배워야 국제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에선 학생들이 학교 정규수업을 마치고 오후 3시부터 지도할 예정이다. 그곳은 수업을 철저히 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골프도 우리 방식으론 가르치지 않는다. 거꾸로 가르치겠다. 예컨대 퍼팅을 먼저 하고 쇼트 게임, 미들 아이언, 롱 아이언으로 나아가는 방식” 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종 선수 선발에서 탈락하는 사람들도 골프룰이나 골프장 잔디관리 등을 전문적으로 배워 향후 골프산업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또 기존에 있는 4명의 남자 국가대표 선수에게도 피팅과 티칭을 가르칠 생각”이라고 밝혔다.
“천산산맥에 이끌려 (우즈베키스탄에) 간다. 파리올림픽이 끝나면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까지 걸어서 오겠다.”
그는 지금도 매일 꾸준히 걷기를 한다.

조진현 코치의 골프 라운드 중 한 컷. 흑색 사진이 인상적이다.

대기업 해외지사 근무 때 처음 골프 배워, 골프 배운지 1년 6개월만에 이븐파 쳐. 1997년 회사 사직하고 미국으로 골프 유학 가다

그는 SK네트웍스(주) 말레이시아지사에 근무할 때 골프를 배웠다. 1988년 32세에 최연소로 해외지사 근무를 시작했을 때다.
“지사장이 골프를 배워라고 했다. 당시 아시안 투어 프로에게 레슨을 받았는데 ‘6개월간 필드에 나가지 마라’고 했다. 첫 라운드 때 128타를 쳤다. 세 번째 라운드에서 100타를 깼다. 그리곤 필드에 나간지 1년, 골프를 배운지 1년 6개월만에 이븐파를 쳤다. 핸디캡 18, 9, 0 세 단계만 거쳤다.”
그는 그만큼 골프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다. 그후 그는 본사에 팀장으로 돌아왔다. 회사 사장이 ‘골프를 잘 친다’며 특별 지시를 내린 것이다. 당시 37세였다.
그러나 골프에 대한 미련과 꿈을 접지 못하고 갈등을 거듭하다 1997년 회사를 사직하고 미국 골프 유학길에 올랐다. 샌디에고골프아카데미에 유학한 것이다.
“2년 과정이었어요. 졸업시험 때 수석을 했죠. 4.0 만점에 3.87점을 받았어요. 골프룰만 B 학점을 받고 다른 과목은 모두 A 학점을 받았어요.”

조진현 코치는 SBS골프와 MBC ESPN에서 7년간 해설위원을 지냈고 각종 골프 강연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2000년 귀국해 SBS골프에서 해설위원 4년 지내고 MBC ESPN으로 옮겨 3년 더 일해. 외국계 골프용품 유통업 하다 6개월만에 접다

그는 2000년 귀국했다. 마침 케이블 방송인 SBS골프가 개국했다. 그는 골프 해설위원에 지원했다. “사실 처음엔 떨어졌어요. 방송이 무언지 몰라 서툴렀지요. 다시 오디션을 보고야 합격했죠.”
그는 중계해설과 현장해설을 맡았다. 수입도 괜찮았다.
“미국에 갈 때 집을 팔고 갔어요. 돌아와 6개월만에 다시 집을 샀어요. 그리곤 미국에 있는 가족들을 불러왔지요.”
그는 당시 원형중 해설위원과 해설을 맡았다. 중계할 분량이 많았지만 성실하게 성공적으로 소화해냈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이벤트 경기 현장 녹화를 전국 골프장을 돌며 진행하기도 했다.
“방송 외에도 나이키 같은 외국계 회사의 골프 관련 론칭 행사나 벤츠 같은 유명 자동차회사가 주최하는 골프대회 등에서 사회를 보거나 진행을 맡기도 했죠. 때로 피팅도 하고 레슨도 해줬어요. 참 바쁘게 살았죠.”
그러나 그에게 꽃길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테일러메이드와 아디다스 골프용품 유통업 영남총판을 운영하다 6개월만에 접었다. 부산은 그의 출생지였다.
“SBS골프에서 4년을 일하다 MBC ESPN으로 옮겼어요. 당시 MBC 임원으로 있던 춘천고  엄기영 선배의 권유를 받았죠. MBC ESPN에서 마침 남녀 US오픈 골프대회를 생중계하고 있었죠.” 그는 MBC ESPN에서 3년간 해설위원으로 일했다.

2003년 TV 골프 전문채널에서 해설위원을 지낼 때 여자 아나운서와 '2003 US아마추어 챔피언십'을 중계하는 모습

노래에 재능이 있어 ‘노래하는 골퍼’로 불리다. 한때는 노사연과 노래 봉사활동도 다니고 자작곡이 고 길은정의 데뷔 앨범에 실리다

그는 노래에도 재능이 있다. 그는 ‘노래하는 골퍼’로도 불린다.
1978년 대학가요제 서울 예선에서 탈락해 본선에는 나가지 못했지만 자작곡도 있다.
“저는 군에 끌려갔어요. 그래서 다분히 시대저항적인 가사를 썼어요. 제가 대학가요제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는 바람에 그 곡을 고 길은정 씨한테 줬죠. ‘아이야’란 노래인데 그 곡이 길은정 씨의 데뷔 앨범에 수록됐죠.”
그는 어릴 때부터 강원도 대표 등으로 나서 노래를 불렀다. 지금은 유명해진 가수 노사연과 노래 봉사활동도 다녔다. 노사연은 당시 춘천여고를 다녔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도 인생을 계속 쥐어짰다”고 했다.

조진현 코치는 음악에도 재능이 많다. 학창 시절에는 노래로 봉사활동도 많이 했다.

골프 밴드 ‘골프도서관’ 운영하며 매일 기술 칼럼 1편씩 쓰다. ‘죽으면 못갖고 간다. 다 주고 가자’는 게 그의 지론

그는 지금 ‘골프도서관’이란 이름의 골프밴드를 운영하고 있다. 회원은 670명 정도 된다. 골프산업계 종사자들이 많다.
그 밴드에서 그는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술 칼럼 1편씩 써오고 있다.
처음 골프룰부터 시작해서 코스디자인, 멘탈, 클럽피팅, 쇼트게임까지 써 왔다.
“골프를 사랑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칼럼 내용을 퍼 갈 수 있어요. 우스베키스탄에 가서도 이 밴드는 성실하게 운영할 겁니다. 많은 프로들이 골프 기술에 관한한 자신의 밥그릇인냥 숨기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죽으면 못갖고 간다. 다 주고 가자’는 게 제 지론입니다.”
그는 15년간 종합상사에 근무하면서 세계 많은 곳을 가봤다. 아프리카 케냐와 남아공, 이집트 남미의 브라질, 칠레를 제외한 지역과 구소련이나 동구권 외엔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다. 그런 게 다 그에겐 엄청남 견문이 된다고 했다.
그는 외국어에도 익숙하다. 영어는 물론 중국어와 일본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어도 할 줄 안다.
“노래의 본산인 스페인에 가서 버킷리스트의 하나인 에스파뇰 버스킹을 하고 싶어 올해는 스페인어를 배우려고 했는데 우즈베키스탄 골프 코치로 선임돼 러시아어를 바꿀 생각입니다. 그래야 현지에서도 통하겠지요.”
그의 열정과 패기는 끝이 없어 보였다. 그는 자신만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