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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생전 모습(사진 롯데지주 제공)

[데스크칼럼]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19일 별세했다. 향년 99세니 백수(白壽)를 누렸다. 1세기를 산 셈이다. 그가 산 세월도 길었지만 한평생 일궈온 업적이 대단하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홀로 일본에 건너가 공부를 하고 기업을 세워 오늘날 국내 5위의 롯데그룹을 창업한 주인공이다.
그를 마지막으로 이제 국내 굴지의 기업 창업주 1세대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삼성 이병철, 현대 정주영, LG 구인회, SK 최종현 등 과거 한국 재계를 이끌어왔던 그들은 죽어서  ‘전설’이 됐다.

불모지였던 이 땅에 맨손으로 기업을 세워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그들이야말로 누가 뭐래도 애국자였다. 한때 우리는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큰 일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너무나 가난했기에 먹을 것이 모자랐다. 6, 70년대 시골 동네에선 아침에 어른들을 마주치면 “아침밥 드셨어요?”라고 하는 게 인사였다. 끼니조차 걱정해야 할 때였으니 그런 인사를 했을 것이다.
그런 힘든 시기를 지나 우리는 선진국에 진입했다. 그러나 최근 우리 경제는 고비를 맞고 있다. 성장률이 둔화되고 수출이 저조하다. 경제가 활력을 잃고 있다. 여러 기업들이 문을 닫고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좌절하고 있다. 많은 중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문제는 우리 경제가 곧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경제가 회복될 것이란 장담을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기엔 주변 상황이 녹록지 않다.

이런 때일수록 경제계 거목(巨木)들이 그립다. 그들은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도 수많은 고비를 헤쳐나왔다.
그들이 보여줬던 불굴의 의지와 용기, 그리고 혜안(慧眼)이 새삼 필요한 시점이다.
신격호 명예회장도 생전 ‘기업보국(企業報國)’을 사업 이념으로 새겨왔다고 한다. 기업을 통해 나라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원래 기업은 이윤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다. 이윤을 남기는 게 가장 큰 목표다. 이윤을 남기지 못하는 기업은 존재가치가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과거 우리 기업인들은 기업 이윤, 그 이상의 몫을 감당해냈다.

신 명예회장이 남긴 여러 업적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123층 롯데월드타워다. 2017년 4월 3일 개장한 이 건물은 현재 국내 최고층이자 최초로 100층을 돌파했다. 부산 해운대 엘시티 더 샾(101층)과 함께 현존하는 국내 100층 이상 건물 2개 중 하나다.
그는 이 건물을 짓기 위해 30년 이전부터 준비해왔다. 그가 장래를 내다보고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부지를 매입한 것이 1987년이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이후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 우여곡절을 겪다 만 30년이 지난 시점에 이 건물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건축 허가를 내는데 24년, 건축에 6년이 걸렸다. 디자인이 23번이나 바뀌고, 총 4조2000억원이 투입됐다. 그의 마지막 숙원 사업이 이뤄진 것이다.
신 명예회장은 부지를 매입하면서 “초고층 빌딩을 짓겠다”고 했다. 주변에선 아파트를 지으면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했지만 그는 “서울에 온 관광객들에게 고궁만 보여줄 순 없다. 우리도 뉴욕이나 파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세계적 명소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며 롯데월드와 함께 세계 최고·최대 종합관광단지를 조성한다는 청사진을 그렸다고 한다.
그 롯데월드타워가 지금은 서울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 관광객들도 롯데월드타워를 찾는다. 그의 예상이 적중한 것이다.

신 명예회장은 젊은 시절 문학을 좋아했다. ‘롯데’란 사명(社名)도 그가 애독했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여주인공 샤를로테(Charlotte : 일본식 샤롯데)에서 영감을 얻어 지었다고 한다. 롯데 로고에 나오는 3개의 ‘L’자는 사랑(Love), 자유(Liberty), 삶(Life)을 의미한다니 참 새롭다.
그의 사무실엔 ‘거화취실(去華就實)이란 글귀가 있었는데 ‘화려함을 멀리 하고 실리를 취한다’는 뜻이다. 장자(莊子) 내편(內篇)에 나오는 말로 겉모양만 번지르하게 다듬고 꾸미고 고쳐서 멋있게 치장할 것이 아니라 인격, 덕성, 능력, 성실함 등 내면을 더욱 충실히 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쉽게 얘기하면 겉치레와 허례허식을 과감히 벗어 던져버리고 실속 있는 삶을 살아란 의미다. 신 명예회장은 평생 그런 삶을 추구했을 것이다.

그는 고향과 동포 사랑도 각별했다. 그가 고향인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이름을 따 1971년 ‘둔기회’를 만들고 해마다 5월이면 고향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벌여왔던 일도 이미 널리 알려졌다. 또 바둑기사 조치훈, 프로레슬러 역도산, 일본 야구계 전설 장훈과 백인천을 도우기도 했다.
그는 롯데복지재단을 설립, 외국인근로자와 조선족 동포 지원사업을 펼쳤고 롯데삼동복지재단을 세워 울산지역 소외계층 지원과 청소년 문화행사 지원 등 사회공헌 활동도 펴왔다. 롯데장학재단을 통해선 대학생과 대학원생 학자금도 지원하고 있다.
그는 참으로 많은 일을 하고 떠났다. 이제 남은 일은 살아있는 자의 몫이다.
그들이 가졌던 원대한 포부, 불굴의 의지, 끊임없는 도전, 굽힐 줄 모르는 용기는 후세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자산이다.

독자 여러분, 늘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오.
감사합니다.

김대진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