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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스타에서 대학 총장까지, CEO형 총장을 꿈꾼다

한국프로야구에 큰 획을 그은 박노준, 그가 대학 총장으로 돌아왔다. 은퇴 후 해설가와 프로야구 히어로즈의 단장으로서 창단을 이끌었던 그는 이제 한국 역사상 첫 프로스포츠 선수 출신 총장으로 제 2의 인생을 시작한다. 자신의 인생을 골프로 말하자면 이제 9홀을 막 지나고 10홀에 접어든다는 안양대학교 박노준 총장, 선수로서의 삶, 총장으로서의 꿈을 가진 인간 박노준을 만나보자. 

안양대학교 총장실에서 만난 박노준은 ‘꽃중년’의 면모를 과시했다. 이미 10대 때부터 많은 팬을 보유했던 그는 50대 중반에 들어서도 여전한 모습이었다. 처음 만난 박노준 총장은 선수 때와 같이 여유로운 모습을 자랑하며 “어깨가 무겁다”다는 말로 운을 떼었다.

박노준 총장은 선수 때와 같이 여유로운 모습을 자랑하며 “어깨가 무겁다”다는 말로 운을 떼었다. [사진=조도현 기자]

후배들의 귀감과 길을 개척할 것

박노준 총장이 어깨가 무거운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먼저 첫 번째는 스포츠 스타 출신으로서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그동안 스포츠 선수는 몸은 잘 쓰지만, 공부 쪽으로는 재능이 많지 않다는 편견이 알게 모르게 있었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야구 선수들은 어린 시절부터 학업과 운동을 함께 병행한다. 대표적으로 前 세이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토니 라루사 감독이다. 라루사 감독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을 하며 팀을 여러 번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시켰을 뿐 아니라 대표적인 지략형 감독으로 유명했다.

특히 그는 심판에 항의할 때 달변으로 유명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 라루사 감독 뿐 아니다. 그러나 한국 프로스포츠의 경우 미국과 달리 엘리트 스포츠를 추구한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대부분 학업에는 소홀한 채 운동에만 전념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 대중들이 프로스포츠에 선수의 학업 소홀에 대한 선입견이 생겨나는 지점이다. 박노준 총장은 이런 편견이 어렸을 적부터 싫었다고 털어놓았다. 따라서 고려대학교에 진학했을 때에는 경영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당시 엘리트 스포츠 선수들의 경우 체육대학이 아닌 학과를 선택할 수 있었다. 박노준 총장 또한 시대 풍조에 따라 고려대학교에 진학하면서 경영학과를 선택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내재된 꿈이 있었다. 바로 ‘경영’에 대한 꿈이다. 

“고교 시절 운동을 했지만 ‘기업 경영’에도 관심이 많았다. 훗날 회사를 경영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운동하면서도 틈틈이 책을 많이 읽었다. 특히 성공한 CEO 자서전을 많이 읽었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경영학과를 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경영학을 공부하면 나중에 야구를 하지 않더라도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했다.”

CEO형 총장으로서의 꿈과 목표 

박노준 총장이 밝힌 두 번째로 어깨가 무거운 이유는 한 대학교의 총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이다. 안양대학교는 박노준 총장 취임 전 많은 부침이 있었다. 지난 7년 동안 전대 총장들이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에 박노준 총장은 많은 부담감과 기대 속에 올해 초 취임했다. 그는 총장에 취임하면서 첫 번째 목표로 잡았던 것이 바로 안양대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었다. 안양대학교의 경우 70여년의 역사를 자랑할 뿐 아니라  서울과 지리적으로 매우 밀접해 수도권 대학으로서 발전 가능성이 컸다.
 

박 총장이 말하는 CEO형 총장이란 트렌드에 맞게 학과·커리큘럼를 재구성하면서 대학 체질 개선에 나서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박 총장은 학생 수요에 맞춰 발전적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다. 이유는 대학이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조도현 기자]

여기에 경쟁력 있는 학과와 역량 있는 교직원들이 많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외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아 평가 절하된 면이 있었다. 이에 박노준 총장은 인지도가 높여야 대학 경쟁력이 생긴다고 판단했다.  이는 박 총장의 지난 삶의 궤적을 봤을 때 최적화된 일이었다. 이유는 그가 히어로즈 구단을 창단할 때부터 오래도록 익힌 ‘스포츠 마케팅’ 경험 노하우를 무엇보다 잘 살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후 박노준 총장은 ‘CEO형 총장’이 되기로 결심한다. 박 총장이 말하는 CEO형 총장이란 트렌드에 맞게 학과·커리큘럼를 재구성하면서 대학 체질 개선에 나서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박 총장은 학생 수요에 맞춰 발전적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다. 이유는 대학이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박 총장은 말한다. 

 “거창한 것보다는 3년 임기 내 발전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부분부터 변화를 주려고 한다. 3년이라는 시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문제는 대학이란 조직 내에서 3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며,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가져가기 힘든 외부 사정이 있다. 따라서 안양대학교가 가진 단점보다는 장점에 집중하려고 한다. 안양대는 인천 강화도에 11만평 부지의 제2캠퍼스를 보유하고 있다. 이곳을 잘 활용한다면 더 큰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스포츠인 출신인 만큼 스포츠 교육 기회를 확대하고 싶다. ‘스포츠 아카데미’나 ‘스포츠팀’을 창단해 엘리트 스포츠 선수들을 양성하면서 입학자원을 확보할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야구를 예를 들면 한해 80여개 고교에서 운동선수 1000여명이 졸업을 한다. 이들 중 100명만이 프로야구단에 들어가고, 400명은 대학을 간다. 나머지 500명은 운동을 포기해야 한다. 다른 종목들도 고교선수들은 프로진출이나 대학진학을 못 하면 운동을 포기한다. 아카데미를 통해 이들이 계속 운동 할 기회를 주고 싶다”

히어로즈 창단, 인생의 터닝 포인트

박노준 총장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2008년 히어로즈의 창단을 꼽았다. 당시 우리 히어로즈는 공중분해의 위기에 놓인 현대 유니콘스 야구단을 인수했다. 존폐위기에 놓였던 구단을 일으켜 세운 것이다. 당리 히어로즈는 국내 프로야구에는 없던 ‘네이밍 마케팅’을 통해 구단을 운영했다.

야구단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기업이 지원하고 그 기업의 이름을 선수들의 유니폼 등에 새겨 광고를 해주는 마케팅 방식이다. 팀 이름도 메인 후원 기업명으로 정했다. 당시 ‘우리 담배’에서 3년간 100억 원씩 받고 헬멧, 유니폼 등에 이름을 붙였다. 기업은 140여 야구 경기에 기업 타이틀이 쓰인 유니폼을 관중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 이런 ‘네이밍 마케팅’을 성사시키기 위해 1년동안 박노준 총장은 소위 입에 단내나도록 뛰어다녔다.

선수 시절보다 더 힘들었던 시기라 박노준 총장은 털어놓기도 했다. 그렇게 박노준 총장은 결국 히어로즈 창단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년 동안 혹독한 경영 수업을 한 것이다.  이 때가 터닝 포인트가 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그 후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면서 점차 행정가, 해설가, 교육자로서 입지를 다졌고, 지금 안양대학교 총장 자리에까지 오르게 됐다. 

“운동선수를 경험한 게 기본적인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교수 및 현재 총장을 하는데 큰 밑거름이 됐다. 승부의 세계에 오래 있다 보면 근성이 생기고 지고는 못사는 성격으로 변한다. 승부욕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요인들이 다른 일을 할 때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 야구는 단체 종목이기 때문에 내가 아닌 우리가 중요하다는 개념도 확실히 배웠다. 이를 바탕으로 안양대 구성원들이 하나의 팀으로 더욱 똘똘 뭉치게 만들어 진정한 우리가 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더불어 지난해부터 대한민국국가대표선수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데 여기에는 전·현직 국가대표 선수 2만 8천여 명의 회원들이 속해 있다. 이 단체를 이끌어가면서도 리더십 등 다양한 부분을 배웠다. 야구는 투수가 공을 던져야 게임이 시작된다. 그러다 보니 부담감을 이기는 법도 배우고 자연스레 리더십까지 생겼다. 야구에서 배운 리더십과 승부욕,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능력 등을 활용해 안양대가 희망찬 내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야구와 골프, 경영과 인생도 결국은 다 사람의 일”

총장에 취임한 후 박 총장이 가장 힘든 점을 하나 꼽으라고 말하자 박 총장은 웃음을 지으며 ‘시간이 부족해 골프를 치지 못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박 총장에 따르면 야구를 그만둔 후 가진 취미인 골프는 현재 스트레스를 푸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평소 술과 담배를 전혀 즐기지 않는 박노준 총장은 1997년 10월 잦은 부상 탓에 24년의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은퇴한 뒤 골프를 시작했다. 현역시절 선물로 받은 골프채는 있었지만, 골프를 치지는 않았다. 골프 스윙은 야구 스윙과 달라 배팅 밸런스가 맞지 않을 것이란 막연한 생각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선수가 골프를 친다는 건 건방져 보였다.
 

그는 프로스포츠와 달리 골프는 취미이다 보니 즐거운 마음으로 명량골프를 즐기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조도현 기자]

골프는 은퇴 후 이 야구 공듬해 1월부하러 미국으로 갔을 때 정식으로 배웠다.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1년, 뉴욕 메츠에서 1년 있다가 다양하게 경험하고 싶어 마이너리그 싱글 A팀에서 유급 코치로 일했다. 때마침 미국에서 스펙이 맞는 왼손잡이용 채가 눈에 띄어 구입했다. 2000년 한국으로 돌아올 무렵 그는 안정적인 80대 타수를 쳤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왼손잡이가 골프연습장 타석 맨 끝에서 벽을 바라보며 공을 치기가 쉽지 않았다. 국내에서 왼손 골퍼로서 겪은 에피소드는 참 많다. 왼손잡이는 어드레스를 하면 국내 골프장 대부분의 경우 카트 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왼손잡이에 페이드 구질이다 보니 공이 주로 카트 도로를 향해 날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처음에는 골프를 칠 때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왼손잡이 골퍼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돼 골프를 치기 좋은 환경이라 박 총장은 웃으며 말했다.

이어 그는 프로스포츠와 달리 골프는 취미이다 보니 즐거운 마음으로 명량골프를 즐기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박 총장과 골프를 즐기는 가까운 지인에 말에 따르면 “박 총장은 지금까지 지인들과 즐기는 명랑골프를 해왔다고 강조했지만 사실 비거리가 길어서 OB도 자주 내지만 그만큼 유리할 뿐 아니라 박 총장이 많이 이긴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 총장의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는 270∼280m, 야드로는 300을 훌쩍 넘길 때가 많다. 이로 인해 드라이버를 치면 짧은 내리막 파 4홀에서 종종 ‘원 온’도 시키지만 OB도 자주 나온다. 너무 잘 맞아 옆 홀이나 산으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그의 특징 중 하나는 골프장에 따른 스코어 편차가 크다는 것이다. OB 2방이 나오면 70대는 어렵다. 파워히터이다 보니 드라이버가 견디지 못해 1년에 1개는 교체를 한다. 왼손잡이인 박 총장은 주로 인터넷 ‘직구’를 통해 미국에서 맞춤 제작을 해서 쓰고 있다.

끝으로 박 총장에게 흔히 인생과 비유되는 스포츠인 야구와 골프를 예를 들어 설명해달라고 하자 그는 너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명쾌한 대답을 내놓았다. 

“골프도 야구도, 인생도 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이 말을 해드리고 싶다. 지금껏 제 인생에는 수많은 부상을 비롯해 난관이 있었다. 그때마다 해설가가 되겠다. 사업을 해야 겠다. 구단을 창단하고 부사장, 단장을 해야겠다. 교수가 되고 대학 총장이 돼야 겠다 등등 목표를 세운 게 아니다.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회를 살려 스펙과 커리어를 쌓다 보니 계속해서 ‘기회’라는 문이 열렸다.  편견을 깨기 위해서 공부를 했고, 그 이후 교수가 되고 총장도 됐다. 골프든 야구든 인생이든 다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여러 경험을 해 보니 모든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거란 생각이 든다. 사람의 마음을 잡고, 헤아리고, 얻는 경영을 하려 한다. 내 좌우명이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뜻이다. 우리 학교 구성원들도 내가 알아주고 인정해 주면 안양대를 위해 열심히 일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구성원들의 마음을 얻는 일을 최우선으로 할 예정이다. 학부형들의 입장에서 등록금이 아깝지 않도록 사명감을 가지고 안양대를 운영해 나가겠다. 학생들이 공부뿐만 아니라 인성과 사회성을 배워 세상에 나갔을 때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겠다. 교수님들께서 지금보다 더 이런 부분들을 생각해서 수업을 진행해 주셨으면 좋겠다. 저 자신부터 반성하는 마음을 가지고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 앞으로 변화되는 안양대를 기대해 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