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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골프 역사 116년 조망

<창간 특집>

 

한국 골프 역사 116년 조망

 

원산에 상주했던 영국인들이 1897년 유목산 중턱에 6홀 규모 간이 코스

만든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골프코스로 전해져

 

우리나라에 골프가 언제 들어왔을까? 이에 관한 명확한 사료는 없다. 대한골프협회(KGA.회장 허광수)가 2006년 펴낸 『사진으로 보는 한국 골프사』에 따르면 한국에 골프가 전래된 것은 1897년 무렵으로 알려져 있다.

1876년 조선은 운요호사건으로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었고, 그 결과로 1880년 함경남도 원산항이 개항했다. 이 후 한국의 해관 관리로 고용된 영국인들이 해관 안 유목산 중턱에 6홀 규모의 간이 코스를 만들었다고 한다. 훗날 시가지를 확장하면서 외인촌을 철거할 때 다락방에서 쏟아져 나온 클럽세트며, 그들이 골프를 즐겼다는 내용이 구전으로 전해졌다. 그때 클럽을 포장한 신문지가 1897년도에 발행된 것이어서 결과적으로 골프는 그 이전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런 사실들은 1940년 11월 일본에서 발행된 「조선골프소사」에서 골프사가 ‘다카하다’가 밝히고 있다. 그는 1973년 일본 ‘월간골프’에 ‘조선은 일본 골프의 발상지다’고 발표했고 한국 골프코스가 1901년 개장한 일본 최초의 골프코스인 고베 록코산 코스보다 수년 앞서 있다고 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골프가 전래된 시점을 1897년으로 치면 올해로 꼭 116년이 된다.

취재 김대진 편집국장 사진 박형진 기자

 

 

 

골프역사 116년, 그동안 한국 골프는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거듭했다. 초창기 제대로 된 골프장도 없던 시절에서 오늘날 500여개에 달하는 골프장에 470만명에 달하는 골프 인구, 50여명의 남녀 선수들이 세계 최고 선수들이 모인 미국 프로 무대(PGA, LPGA)에서 활약하는 골프 강국이 됐다.

 

 

 

 

1960년 이전 국내 골프장

 

효창원 골프코스는 일제강점기 때 만든 전장 2,300야드 9홀 규모였다. 1919년 착공해 1921년 6월 1일 개장했다. 당시 조선호텔 이용객을 위한 부속시설로 만들어졌다. 7홀만 사용했던 이 코스는 외국인 내장객만으로 적자를 면키 어렵자, 법인체인 경성골프구락부를 조직하게 된다.

효창원 골프코스를 설계한 H.E Daunt는 1915년 일본아마추어골프선수권 챔피언이자 일본 고베 록코산 골프코스 회원으로 당시 일본에 체류 중인 러시아계 영국인이었다.

경성골프구락부는 효창원 골프코스가 공원으로 편입되며 개장 3년만에 폐장되자 청량리 골프코스를 1924년 12월 개장했다.

청량리 골프코스는 조선 왕조 이 왕가의 능림으로 전장 3,942야드, 파 70의 18홀 코스였다. 이때부터 한국인 골퍼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1925년 국내 공식대회인 전조선 선수권이 홀매치 플레이로 열렸다. 청량리 골프코스를 설계한 사람은 제1회 일본 아마골프 우승자 이노우에였다.

그러나 이 청량리 골프코스조차 폐장되면서 다시 군자리 골프코스를 1930년 개장하기에 이른다. 군자리는 경기도 고양군 뚝도면 군자리로 그 이전에 말과 양을 기르던 곳이었다.

군자리 골프코스는 유능 일대 30만평에 전장 6,160야드 파 69의 정규코스로 일본인 아카보시가 설계했다. 당시 군자리 골프코스의 시설물들은 기둥을 주제로 기와를 올린 한식 건물이 주류를 이뤘다. 클럽하우스는 일제강점기 박람회 때 조선관으로 사용하다가 군자리 골프코스로 이축한 것이었다. 그 후 주한 미군이 사용하던 중 난로 과열로 소실됐다고 한다.

 

이 무렵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골프코스가 개장했다. 1923년 대구 골프코스가 9홀 규모로 개장했고 1928년 평양 골프코스가 개장했다. 이어 1929년에는 원산 송도원 골프코스에 이어 1932년 부산 골프코스가 각각 9홀로 개장했으나 모두 제2차 세계대전 때 폐장됐다.

군자리 골프코스도 이때 폐장됐다가 이승만 대통령 지시로 1950년 5월 우리 손으로 복원했지만 1개월만에 한국전쟁이 일어나 또 다시 문을 닫았다. 이후 휴전으로 복원이 시작됐다. 1953년 사단법인 서울컨트리구락부를 창설하고 1954년 18홀(파 72), 6,750야드 국제규모로 재개장했다. 서울컨트리구락부는 군자리 골프코스를 1972년 어린이대공원으로 자리를 내주고 고양시에 있는 36홀의 한양골프장 주식을 인수, 이전했다.

1956년에는 부산 해운대에 9홀 2,610야드 규모로 부산컨트리클럽이 개장했다. 그러나 이 코스는 주택지구로 편입되면서 부산시 노포동에 18홀 6,402야드 규모로 이전해 재개장했다.

 

1960, 70년대 골프장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에 따른 경제성장으로 골프인구가 늘어나자 1964년 한양컨트리클럽이 문을 연데 이어 제주, 태능, 뉴코리아가 1966년, (구)관악(현,리베라)이 1967, 안양베네스트가 1968년 속속 개장했다.

1970년에 용인(현 양지파인)과 부평(현 인천국제)에 이어 1971년에는 부산과 동래(현 동래베네스트), 그리고 남서울이 각각 개장하는 등 1970년대말까지 총 22개의 골프장이 문을 열었다. 이후 1980년대에 용인프라자와 중문 등 20개가 추가 개장해 국내 골프코스는 1980년대 말까지 42개가 조성됐다.

이후 1990년대와 2000년대 들어 국내 골프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골프장의 지형, 레이아웃과 클럽하우스

초기 대도시 근교에 있던 골프장, 지금은 전국적으로 확산

바다 매립지나 해안가, 산악지대에 조성된 골프장도 많아

 

골프장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골프장의 지형, 레이아웃과 클럽하우스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초기 골프장은 주로 대도시 근교에 자리를 잡았다. 청량리나 효창원 골프코스 등이 그랬다. 부산과 대구 등 큰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산업화로 인해 대도시 근교의 부지가 주택지구 등으로 수용되면서 골프장은 대도시 근교에서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산지 지형으로 옮겨가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또 2000년대를 전후해 바다 매립지에 건설되는 골프장도 차츰 늘어나기 시작했다. 인천 영종도에 자리잡은 SK72GC를 비롯해 군산CC 등이 매립지에 건설된 대표적인 골프장이다. 남해안과 서해안에는 아름다운 해안가에 조성된 골프장도 여럿 있다. 또 강원도 등 일부 산악지대에는 하이원CC처럼 해발 500m가 훨씬 넘는 고지대에 만든 골프장도 있다. 또 제주도에 있는 수많은 골프장은 물론 드비치CC(거제도)와 아일랜드CC(대부도)처럼 섬에 건설된 골프장도 있다.

 

 

골프장 레이아웃, 과거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게 설계

난이도 높아졌으나 골프 치는 묘미는 훨씬 좋아져

 

골프장 레이아웃도 달라졌다. 과거엔 일자형 홀이 많았으나 요즘은 홀이 중간에서 좌우로 꺾인 도그렉홀도 많아졌다. 또 과거 골프장이 비교적 평지에 일자형으로 평탄했다면 요즘은 높낮이가 심하고 홀 중간에 워터 해저드나 벙커를 많이 배치한 홀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최근에 문을 연 고급 골프장들은 대개 많은 벙커와 워터 해저드, 좁고 어려운 그린 등으로 난이도를 높힌 홀이 많다. 뿐만 아니라 페어웨이도 과거 평지처럼 평탄한 곳이 주류였으나 요즘은 페이웨이의 폭도 좁아지고 울퉁불통하게 기복을 둬 골프를 치는 묘미를 더하고 있다. 그린도 평평한 그린에서 2단, 혹은 3단 그린으로 경사를 심하게 만든 곳이 늘어나고 있다. 한때 홀별로 2개의 그린을 뒀던 투그린이 유행했으나 요즘은 다시 원그린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클럽하우스도 다양한 양식으로 고급화돼, 내부에 에스컬레이트까지 갖춘 하우스도 등장

 

클럽하우스도 예전에 비해 규모가 커지고 훨씬 고급화됐다. 오래 전에 건설된 클럽하우스는 최근 리모델링을 통해 내, 외부를 고급화하고 있는 추세다.

초기 군자리 골프장의 클럽하우스는 전통적인 기와집 형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화재로 소실되고 재건되면서 현대식 양식 스타일로 바뀌었다.

현재 국내 골프장 클럽하우스는 양식 콘크리트 건물이 주류다. 그러나 일부 골프장은 한식형태로 지은 곳도 있다. 또 일부 골프장은 외국인 건축가가 설계를 맡으면서 아주 독특한 양식을 보이고 있다. 여주에 있는 해슬리나인브릿지CC는 클럽하우스가 독특하고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 있다.

또한 유명산에 위치한 아난티클럽서울CC는 하우스 입구가 옛날의 거대한 고분 입구를 연상시킬 뿐 아니라 클럽하우스안에 에스컬레이터까지 설치돼 있을 정도로 독특하고 이색적이다.

 

 

 

2013년 5월 현재 국내 운영중인 골프장 473개, 건설중인 골프장만 100개

골프장 총면적 남한 면적의 0.5%, 총 홀수 1만개

 

2013년 5월 현재 운영중인 골프장은 473개다. 이 가운데 회원제 골프장이 225개, 퍼블릭(대중제) 골프장은 215개다. 군 골프장은 33개다. 공사중인 골프장도 100개나 된다.

군 골프장을 제외하고 운영중인 골프장 440개의 총 홀수는 8,315개. 건설중인 골프장 1,718개홀을 더하면 총 홀수는 1만 96개홀이다. 18홀 골프장으로 환산하면 운영중인 골프장은 461개, 건설중 100개, 전체 561개가 되는 셈이다.

면적으로 따지면 운영중인 440개소의 총 면적은 414㎢로 남한 면적(9만 9,373㎢)의 0.5%에 해당한다. 건설중인 골프장 96㎢를 더하면 510㎢나 된다.

 

지역별 골프장 수는 군 골프장을 제외하고 경기도가 157개(운영중 138개, 공사중 19개)로 가장 많고, 다음은 강원도 71개(운영중 53개, 공사중 18개)다. 제주도는 운영중인 골프장이 40개다.

시·군별로는 용인시와 여주군이 각각 29개, 22개로 골프장이 가장 많다.

제주도와 광역시 등을 뺀 전국 8개 도의 행정구역상 시·군은 모두 150개. 이 가운데 80%에 달하는 120개 시·군에서 1개 이상의 골프장을 운영중이거나 건설중에 있다. 이를 150개 전체 시·군 평균으로 나누면 1개 지역당 3개의 골프장이 있는 셈이다.

 

퍼블릭 골프장 비중(홀수 기준)이 2001년 15.9%에서 2011년말에는 32.2%로 높아졌고, 5년 후인 2016년에는 48.6%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회원제 골프장의 비중은 2001년 81.7%에서 2011년 63.6%, 2016년에는 47.9%로 떨어질 전망이다.

퍼블릭 골프장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골프회원권 가격 폭락에 따른 입회금 반환 사태, 신규 회원권 분양난, 운영적자폭 확대 등으로 회원제의 퍼블릭 골프장 전환이 급증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골프장 증가와 함께 골프 인구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1990년대 이후 국내 골프장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골프인구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이 2013년 5월 27일부터 30일까지 나흘간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2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골프를 칠 줄 안다는 응답이 18%로 나타나 우리 국민 5명 중 1명 정도가 골프를 칠 줄 아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골프 인구는 1992년 2%에서 2000년 5%, 2007년에는 9%로 증가했고 이후 6년간 2배인 18%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골프 인구를 성별로 보면 남성은 29%, 여성은 8%여서 남녀차가 컸다. 연령별로는 40대가 25%로 가장 많았다.

골프를 칠 줄 안다고 말한 응답자 223명 가운데 최근 1년간 필드나 골프연습장, 스크린골프장 이용 경험을 물은 결과, 48%는 필드에 나간 적이 있다고 답했다. 골프연습장 이용경험은 63%, 스크린골프장 이용 경험은 60%였다.

 

 

 

 

 

20여년 전인 1992년, 우리 국민의 72%는 골프를 사치스러운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는 의견은 18% 수준이었다. 그러나 국제 대회에서 한국인 골프 선수들의 활약이 늘고 골프 인구도 늘면서 골프에 대한 인식도 상당부분 바뀐 것으로 조사됐다.

 

골프가 사치스러운 운동이냐고 물은 결과, '사치스러운 운동' 48%, '사치스럽지 않은 운동' 47%로 팽팽하게 양분됐다. 추세를 살펴보면 1992년 이후 지금까지 골프가 사치스러운 운동이라는 인식은 크게 감소했지만 2007년을 기점으로 더 이상 줄지 않고 있다.

골프는 입문 후 첫 라운드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골프에 대한 인식은 연령별로 차이가 커서 고연령일수록 사치스러운 운동이라고 인식한 반면 저연령에서는 사치스럽지 않은 운동이라는 인식이 더 많았다.

◈ '골프 배울 의향 있다' 29%그렇다면 골프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현재 골프를 칠줄 모른다고 답한 993명에게 앞으로 사정이 허락된다면 골프를 배울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배울 의향이 있다는 응답이 29%였다. 2007년과 비교하면 11%p 감소한 수치다.

 

골프를 배울 의향이 있는 사람의 비율은 20대와 30대, 학생, 화이트칼라에서 40% 전후로 비교적 많았으며 40대 이상에서는 30%에 미치지 못했다. 지난 6년간 골프 인구가 급증하면서 관심 있는 중장년층 상당수가 이미 입문했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2012년 현재, 국내 골프인구 470만명, 2007년 대비 195만명(4.6%) 증가

20세 이상 인구 10명 중 1.5명 골프친 경험 있다

1인당 월 평균 골프활동 지출액 48만원, 1회 라운드비는 25만원선

 

대한골프협회가 경희대학교 골프산업연구소와 공동으로 전국 16개 시·도 20세 이상 성인 남녀 4,79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2년 한국의 골프 지표’자료에 따르면 20세 이상 인구 3,315만명 중 골프인구는 약 470만명으로 조사됐다.

10명 중 1.5명꼴로 전체의 14.2%였다. 이 가운데 남자가 여자보다 골프를 많이 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40대가 가장 많았다. 다음이 50대, 30대, 20대, 60대 순으로 나타났다.

 

2012년 한해 골프 참여인구는 12.1%, 약 401만명이었다. 골프를 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용품비를 제외하고 1인당 월 평균 약 48만원이었다. 골프활동을 위해 매월 1조 9,248억원이 지출됐으며 연간 총 지출액은 23조 976억원으로 나타났다.

국내 골프인구 중 골프장, 실내 골프연습장, 실외 골프연습장, 실내 스크린은 모두 남자 40대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용장소에 따른 월 이용빈도를 보면 골프장의 경우, 월 2회, 실내 골프연습장은 월 3회, 실외 골프연습장은 월 4회, 실내 스크린은 월 1회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골프 참여인구 중 남자 91~100타, 여자는 101~110타가 가장 많아

 

골프 인구의 평균 타수는 남자가 91~100타(25%), 여자는 101~110타(28.5%)였다. 특히 81타에서 100타 미만의 골퍼들이 주로 골프장과 실외 골프연습장을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내 스크린은 111~120타를 기록하는 골퍼들이 많이 이용했다.

 

골프를 치는 목적도 40대 이상은 ‘친분을 위해’, 20대와 30대는 ‘취미활동을 위해’서라고 답변했다. 여성골퍼는 ‘건강을 위해’ 골프를 친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잠재 골프 참여인구 950만명, 30대 남녀 골프 배우겠다는 의사 가장 높아

 

골프를 배울 의사가 있는 잠재 골프 인구는 950만명(33.4%)으로 조사됐다. 연령별로는 30대(34.6%)와 40대(30.9%)가 높게 나타났다. 우리나라 20세 이상 인구 3명 중 1명이 골프를 배우고 싶다는 것이다. 특히 남자 여자 30대가 골프를 배울 의사율이 가장 높았다.

 

2012년 해외 골프관광객 123만명, 1인당 평균 지출비용은 175만원

해외 골프관광 총 지출액 6조 148억원

 

2012년 골프를 친 3명 중 1명인 123만명이 해외 골프관광객이었다. 연인원 344만명이 해외에서 골프를 친 셈이다. 골프 관광을 위한 여행기간은 3박 4일이 가장 많았다.

 

1인당 해외 골프관광 비용은 평균 175만으로 연간 해외 골프관광 총 지출액은 6조 148억원이었다. 해외 골프관광 국가로는 태국(30.4%), 필리핀(24.5%), 중국(18.8%), 일본(8.3%) 순이었다.

 

 

 

 

골프연습장과 골프숍

세계 최대 규모의 SKY72 드림레인지 등 전국에 1,200여개 실내연습장,

실내연습장만 4,300여개 달해

 

우리나라 최초의 골프연습장은 1960년대 초 중구 명동 (당시 대연각호텔 뒤편)에 위치했던 ‘무학성골프연습장’이다. 이 연습장은 건물 실내에 꾸며졌는데 규모는 4타석이었고, 사장은 국악인 안비취씨였다. 그는 골프 실력도 상당 수준이었고 골프에 관심이 많았으며 당시 한국은행 총재 등 정·관계 인사들과 자주 라운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초의 실외 골프연습장은 남산 자유센터골프연습장으로 60석 규모로 1967년 개장했다. 비거리도 230m 안팎이었으며 요즘처럼 안전망을 치거나 철탑을 세우지 않은 자연 상태 그대로였다. 당시 골프연습장을 이용한 골퍼들이 내는 월 레슨비는 5천원 정도였다. 프로 골퍼들이 지도했으며 이용객은 주로 정 관계와 재계 인사들이었다.

그 후 철제탑을 세운 골프연습장이 비원에 개장했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되면서 골프연습장은 점차 도시 외곽으로 밀려났다.

골프연습장은 그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현재 우리나라에는 세계 최대의 골프연습장인 SKY72GC 드림골프레인지가 있다. 비거리 400야드에 자동타석이 300개나 되고, 별도의 천연잔디타석도 있다. 또 칩샷과 벙커샷, 퍼팅을 연습할 수 있는 숏게임 콤플렉스도 갖추고 있다.

국내 주요 골프장에는 회원이나 내장객들을 위한 연습장을 운영하고 있다. 정규 골프장과는 별도로 파3 연습장과 함께 운영하는 곳도 많다. 정규 골프장에 딸린 골프연습장은 도시 주변에 있는 골프장과 달리 대개 주변 환경도 좋고 시설도 상대적으로 잘 돼 있는 곳이 많다.

한국골프장연습장협회에 따르면 2011년말 현재 전국에는 5,580개의 연습장이 있다. 이 가운데 실내연습장은 4,351개, 실외연습장은 1,208개, 옥탑연습장이 21개이다.

 

골프숍은 전국에 수천개 산재, 브랜드별 전문매장을 비롯해 골프장 클럽하우스 매장, 백화점과 대형할인점 골프숍, 아울렛 형태의 브랜드 집단 매장도 곳곳에

 

골프숍은 1967년 문을 연 서울 중구 저동의 서울골프상회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후 골프숍은 골프인구 증가와 함께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현재는 정규 골프장은 물론 파3 연습장과 웬만한 실외 골프연습장에는 거의 대부분 골프숍이 있다. 또 전국의 유명백화점, 대형할인매장 등에는 거의 빠짐없이 골프숍이 들어와 있다.

이와 별도로 도심지나 도시 외곽지역에는 골프용품 브랜드별 전문매장이 있고, 골프숍이 여럿 모여 있는 아울렛 형태의 매장도 각 지역에 산재해 있다.

 

스크린골프장

실내에서 화면을 보며 골프를 즐길 수 있어 시간과 돈 절약

전국대회 등 각종 대회도 열려, 직장인을 중심으로 청장년층에 특히 인기

 

필드에서 골프를 치는 전통적인 골프 외에 실제 골프장을 본뜬 화면으로 실내에서 골프를 즐기는 스크린골프도 최근 급속하게 확산돼 인기를 끌고 있다.

스크린골프는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직장인을 중심으로 특히 청장년층에게 인기다.

스크린골프는 골프를 실내에서 즐길 수 있도록 제작된 시스템이다. 골프 시뮬레이터라고도 한다. 스크린골프는 플레이어가 친 볼의 탄도, 방향, 거리, 스피드, 회전 등을 판독해 데이터화시키는 센서, 프로젝트가 보여주는 영상을 보여주기 위한 하얀 광목천으로 된 스크린, 그리고 프로젝터, 컴퓨터, 스윙플레이트, 오토티업기, 퍼팅시뮬레이터, 모션카메라 등으로 구성돼 있다.

스크린골프는 초기 평면 화면에서 최근에는 실제 골프장을 3차원 영상으로 구현한 최신형 프로그램까지 등장했다. 또 플레이트도 페어웨이와 러프, 그리고 벙커를 구분해 샷을 할 수 있도록 다양화되고 있다.

 

스크린골프장은 도심지나 외곽을 불문하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웬만한 곳에는 들어서 있다. 골프존을 비롯한 한국의 업체들이 전세계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스크린골프는 일반 필드에서 치는 골프처럼 각종 대회도 개최되고, 동호인 모임도 결성돼 있다. 또 필드 골프와 달리 꼭 4명을 채우지 않아도 되고 많은 인원도 한꺼번에 경기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이용하기에 아주 편리한다. 직장인 모임이나 학교 동기 모임 등 각종 모임에서 뒷풀이로 스크린골프를 즐기는 사례도 늘고 있다.

 

 

캐디

1920년대 효창원 골프코스에선 고의적삼에 고무신을 신은 까까머리 앳된

소년들, 요즘은 멋진 유니폼을 차려 입은 2, 30대 젊은 여성들이 주류

 

 

캐디도 변화가 심했다. 초기 캐디들은 주로 남자였다. 1920년대 효창원 골프코스에서 플레이하는 사진을 보면 골퍼는 조끼까지 갖춰 입은 정통 신사복 차림이었고 캐디는 고의적삼에 고무신을 신은 앳된 소년들이었다. 모자도 없이 천진난만하게만 보이는 까까머리였다.

사진을 보면 소년 캐디들이 요즘 파3 연습장에 가면 웨지와 퍼터, 그리고 숏 아이언 한 두 개 정도를 넣을 수 있는 작고 간편한 클럽백 같은 것을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캐디라고 하기 보다는 그저 클럽을 들고 따라다니는 심부름꾼 역할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효창원 골프코스 플레이 사진- 소년 캐디 초점)

 

 

 

예전 캐디들은 골프백을 어깨에 매거나 수동카에 싣고 걸으면서 경기를 진행했다. 때문에 하루에 2라운드(2게임)를 하면 피곤하고 지치기도 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골프장이 전동카로 운영되면서 경기를 진행해 한결 수월하고 부드러운 진행을 할 수 있게 됐다.

캐디의 성별도 지금은 여성 캐디가 압도적으로 많다. 남녀 캐디가 있는 골프장도 있지만 상당수 골프장은 여성 캐디 뿐이다. 골프장별로 통일된 멋진 유니폼을 갖춰 입은 2, 30대 여성 캐디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일부 고급 골프장엔 대졸 학력의 고급 인력을 캐디로 채용하는 곳도 있다.

캐디가 봉사료로 받는 피(Fee)도 최근엔 팀당 12만원까지 높아졌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8월 14일 현재 팀당 캐디피를 12만원 이상 받는 곳은 18홀 이상 국내 골프장 325곳 중 31.4%인 102곳이었다. 특히 회원제 골프장은 227곳 중 40.1%인 91곳이 팀당 12만원을 받았고, 퍼블릭 골프장도 98곳 중 11.2%인 11곳에서 12만원을 받았다.

이처럼 캐디피의 인상과 함께 캐디도 고소득 전문 직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캐디피가 인상되면서 골퍼들의 부담도 늘어났다. 일각에선 ‘캐디선택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얘기도 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쉽게 도입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골프 장비와 복장

초기 클럽은 감나무 같은 나무 소재를 우드클럽의 헤드로 활용,

볼도 밤나무 등으로 만들어

최근엔 각종 첨단 소재로 만든 다양한 클럽 나와

 

골프 장비와 복장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1920년대 사진을 보면 초기 골퍼들의 골프 장비는 요즘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였다. 먼저 클럽 수가 지금보다 훨씬 적었던 것 같다. 요즘은 최대 14개까지 허용되지만 초기에는 그 절반 안팎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요즘 파3 숏홀 연습장에 가면 볼 수 있는 하프백 정도 크기의 골프백을 들고 다녔다. 클럽수가 요즘의 절반 정도이다 보니 클럽백의 크기도 단연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클럽(골프채)의 소재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초기에는 우드클럽 헤드를 감나무, 오얏나무, 살구나무와 같은 과수나무를 주로 사용했다. 우드클럽이라는 명칭도 헤드를 나무로 쓴 데서 연유했다. 당시 우드클럽의 특징은 헤드와 타면(페이스)이 얇고 길었다. 어떤 클럽은 클럽헤드의 힐에서 토우까지 6인치가 되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아이언클럽은 헤드는 아이언으로 하되 샤프트는 나무였다.

아이언이나 금속 합성 소재가 발달하지 못한 예전에는 헤드나 샤프트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소재가 없었다.

클럽헤드의 형태도 초기에는 망치나 갈퀴형, 수뢰형 등 다양한 형태였다. 그러다가 서서히 지금의 클럽 모양으로 단순화됐다. 헤드의 크기도 계속 커져 지금은 비공인 500cc까지도 나와 있다. 다만 국제적으로 공식 인정된 헤드 크기는 460cc까지다.

 

골프볼도 초기에는 너도밤나무 등으로 만든 우드볼이었다. 그러다 새의 깃털과 가죽으로 만든 패더리볼이 나오고, 뒤이어 현재와 같은 딤플을 새긴 형태의 볼이 등장했다. 골프볼의 소재는 합성고무와 우레탄을 비롯해 각종 첨단 소재가 총 동원되고 있다. 최근에는 타구 감감각과 비거리, 컨트롤 기능을 더욱 향상시킨 파이브피스볼(5겹볼)까지 등장했다.

 

골프복장도 초기엔 조끼까지 갖춰 입은 정장 신사복 차림에 중절모자를 써,

지금은 골프 전용 웨어에 신발, 양말, 모자, 선글라스까지 착용해 패션화

 

골퍼들이 입는 복장도 눈부시게 발전했다. 초기 골퍼들은 주로 정장 차림이었다. 조끼까지 차려입은 신사복에 일반 구두를 신었다. 모자도 골프용 모자가 아니라 일반 중절모를 많이 썼다. 1900년대 초기만 해도 골프를 치는 사람들이 극소수였기 때문에 골퍼들을 위한 복장이 별도로 생산되거나 판매되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접어들면서 경제가 눈부시게 성장하면서 골프 인구도 늘어나 골퍼들이 입는 복장도 서서히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요즘처럼 남자 골퍼의 경우, 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모자를 쓰는 스타일이 일반화됐다. 골프웨어 산업은 2000년대 이후 국내 골프인구가 급증하면서 급속도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현재는 국내 브랜드뿐 아니라 외국계 브랜드가 여럿 들어와 그야말로 골프웨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골프 웨어뿐 아니라 모자, 신발, 양말, 관련 화장품, 선글라스 등 골프용품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요즘 투어 프로들의 경기를 보면 특히 여자선수들은 최신 패션웨어에 신발, 모자, 선글라스 등으로 멋진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한국을 빛낸 골프 선수들

 

한국을 빛낸 골프 선수들은 수없이 많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남녀 선수들은 세계 무대를 누비고 있다. 특히 여자골프는 9월 5일 현재 세계 랭킹 1위인 박인비를 비롯, 4위 김인경 , 5위 유소연, 7위 최나연, 9위 박희영 등 10위 안에 5명이 들어갈만큼 성장했다. 그동안 여자 골퍼들이 받은 누적 상금도 엄청나다. 한국 골퍼의 위상을 드높이고 IMF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한없는 자신감을 심어줬던 박세리는 LPGA 상금만 1,194만 달러를 벌어들여 가장 많은 상금을 받았다. 현재 LPGA에서 뛰고 있는 현역 선수 중 최나연, 박인비, 신지애, 김인경, 한희원, 장정은 모두 5백만달러 이상의 누적 상금액을 기록하고 있다.

남자의 경우, PGA에서 8차례 우승했던 최경주가 세계 랭킹 106위다. 그동안 받은 상금액은 2,837만달러다. 양용은은 메이저 대회인 PGA챔피언십 우승(2009) 등 두 차례 우승을 포함, 총 835만달러를 받았다.

 

 

영친왕, 유능 부지 30만평 기부 등 한국 골프 태동기에 크게 기여

 

한국의 골프를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영친왕(이은)이다. 그는 나라를 잃고 일본에 볼모로 가 있는 동안 근심을 잊기 위해 골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핸디캡은 25, 이후 영친왕은 유능 부지 30만평을 골프장 건설을 위해 무상으로 임대해 주는 한편 당시 2만엔을 하사하는 등 한국 골프가 태동하는데 이바지했다.

 

한국인 골퍼가 처음 등장한 곳은 청량리 골프코스다. 윤호병씨를 비롯해 한상룡, 박용균씨 등이 있었다. 장병량 선수는 한국인 골퍼로서 처음으로 일본인 골프 아성을 깨고 1936년 경성골프구락부 챔피언이 됐다. 그는 1937년과 1938년에도 우승, 3연패를 기록했다.

 

한국 프로골퍼 1호 연덕춘 선수, 한국인으로서 일본과 한국 오픈 동시 제패

한장상, 김승학 등 뒤이어, 1990년 이후 최경주와 양용은 등이 PGA에 진출

 

한국 프로골퍼 1호인 연덕춘 선수는 17세때 일본으로 건너가 골프유학을 했다. 1935년 22세에 프로자격증을 땄다. 이후 1941년에 일본오픈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이는 손기정 선수의 올림픽 마라톤 제패에 버금가는 쾌거였다. 그는 1958년 한국오픈에서도 국내 첫 우승을 차지하는 등 초창기 한국골프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겼다.

 

연덕춘에 이어 한장상, 김승학이 한국 골프의 계보를 이어갔다. 한장상은 1967년 한국오픈에서 우승했고, 1972년 일본오픈에서 한국인으로서 두 번째로 우승했다. 김승학은 1968년 한국오픈에 이어 1973년 아시아골프써킷겸 필리핀오픈, 1978년 한국오픈 겸 아시아써킷대회에서 우승했다. 조태운은 1974년 한국오픈에서 우승했다.

 

1980년대 이후 최상호, 김종덕, 강욱순 등이 두각을 나타냈다. 1990년대 이후 최경주와 양용은, 노승렬, 배상문 등이 PGA에 진출해 활동하고 있다.

구옥희, 일본과 미국 무대에서 활동하며 한국 여자프로 골프 개척,

박세리, LPGA 25승의 화려한 전적으로 ‘박세리키즈’ 낳아

현재 세계 여자랭킹 1위 박인비 등 10위 안에만 한국인 5명 등 수십명 활약

 

여자 프로골퍼로는 구옥희가 미국과 일본에서 활약하며 명성을 떨쳤으나 2013년 7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한국과 해외에서 총 44승이라는 불멸의 금자탑을 쌓았고 2005년에는 KLPGA 명예의 전당에 최초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한국 여자골퍼로는 LPGA 최초 진출자이자 최초우승자이며 JLPGA 최초우승자이기도 하다.

 

박세리는 2007년 USLPGA, 세계골프, KLPGA 명예의 전당에 동시 입회한 한국이 낳은 걸출한 스타다. 국내 대회에서 7회 우승했고 LPGA에서만 25승을 거뒀다. 그는 이른바 ‘박세리키즈’를 낳은 선수로도 유명하다.

 

이 밖에도 고우순, 원재숙, 강수연, 김미현, 박지은, 한희원, 신지애, 최나연, 박인비 등 여자 선수들은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현재 국내에는 수백명의 남녀 프로골퍼들이 활약하고 있다. KPGA와 KLPGA에 등록된 선수들은 물론 프로 지망생까지 폭넓게 분포돼 있다.

 

아마추어 골퍼도 각종 세계대회서 우승, 준우승 하며 국위 선양

아시안게임에선 남녀 합해 총 12개의 금메달 사냥해

KGA가 1990년대 초반부터 실시한 국가상비군 육성제도와 선수육성 프로그램이 한국 골프의 급성장에 크게 기여

 

아마추어 선수들도 각종 대회에서 입상, 한국의 골프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1994년 세계여자아마추어골프팀선수권대회(프랑스)에 박세리, 김미현, 권오연 선수가 출전해 준우승을 했고, 1996년 필리핀대회에선 강수연, 한희원, 김경숙 선수가 우승해 한국아마추어골프의 저력을 과시했다. 한국여자팀은 2000년 독일에서 개최된 대회에서도 준우승했다.

이후 2010년 제24회 세계여자선수권대회에서 단체 우승과 개인전 1, 2, 3위를 싹쓸이한데 이어 2012년 제 25회 세계여자선수권대회에서도 단체 우승해 2연패를 달성했다.

남자팀은 1996년 세계아마추어골프팀대회 개인전에서 서종현 선수가 준우승했다. 2012년 제28회 세계남자선수권대회에선 단체 3위에 입상했다.

 

아시안게임에서도 한국 선수들이 맹활약, 2006년 도하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남자팀의 김경태와 김민휘가 각각 개인전 금메달, 남자팀이 단체전 금메달을 땄다. 1986년 서울과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선 남자 단체전 금메달과 동메달에 이어 김기섭과 김현우가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했다.

여자팀은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원재숙이 개인전 금메달을 딴 이래 2006년 도하와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 류수연과 김현수가 각각 개인전 금메달을 땄다. 여자팀은 이 세 대회와 2002년 부산대회에서 모두 네 차례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밖에 개인전에서 이종임(1990년 베이징), 강수연(1994년 히로시마), 김주미(2002년 부산)가 은메달을, 송채은(1994년 히로시마), 장정(1998년 방콕), 박원미(2002년 부산), 최희영(2006년 도하), 김지희(2010년 광저우)가 동메달을 각각 획득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아시안게임 골프부문에서 금메달 12개, 은메달 8개, 동메달 8개 등 총 28개의 메달을 획득해 가장 많은 메달을 기록했다.

이처럼 한국 남녀 아마추어 골프선수들이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기록하고 국위를 선양한 이면에는 대한골프협회(KGA)가 1990년대 초반부터 실시한 국가상비군 육성제도와 선수 육성 프로그램이 크게 이바지했다.

 

골프관련 단체

대한골프협회(KGA) 주축으로 KPGA, KLPGA 등 여러 단체가

한국 골프 발전 위해 노력

 

초창기 골프단체는 일제 강점기인 1937년 경성, 대구, 평양, 부산, 원산 골프코스 등 5개 골프장이 결성한 조선골프연맹이다. 1953년 서울컨트리구락부가 창설되고 1959년 한국골프협회가 발족했으나 4·19 당시 사회단체 및 정당 활동 금지로 유명무실해졌다.

이에 서울컨트리구락부가 국제대회 등 행정 업무를 맡아 처리해오다 1965년 4월 아시아·태평양골프연맹(A-PGC) 가입과 함께 서울, 한양, 부산 등 골프장들이 주축이 돼 1965년 9월 한국골프협회가 출범하게 된다. 초대 회장은 박두병씨가 맡았고 이듬해 5월 문교부에 사단법인 한국골프협회로 등록인가를 마쳤다. 1982년 인도아시안게임에 골프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면서 1985년 협회 명칭을 대한골프협회로 변경했다. 1986년에는 대한체육회에 가입했다.

대한골프협회(KGA. 회장 허광수)는 한국 골프를 대표하는 기관으로 골프 스포츠의 진흥과 보급, 국민체력 향상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대한골프협회는 9개 분과위원회를 두고 있으며 산하에 4개 연맹(한국초등학교골프연맹, 한국중·고등학교골프연맹, 한국대학골프연맹, 한국실업골프연맹)과 16개 시·도협회가 있다.

대한골프협회는 국위선양을 위해 세계적인 골프스타 발굴을 위해 국가대표 및 상비군선수 육성은 물론 골프장의 코스레이팅 및 슬로프레이팅을 실시하고 있다. 또 공인 핸디캡증명서 발급, 규칙 제정과 보급, 골프 관계 법규 개선사업 등도 벌이고 있다.

대한골프협회는 2013년 현재 총 20개의 대회를 주최 또는 주관하고 있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회장 황성하)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회장 구자용)는 한국 프로골프의 발전을 위해 애쓰고 있다. KPGA는 1968년 11월 창설됐다. KLPGA는 1978년 KPGA내에 여자프로부로 시작해 1988년 2월 KPGA에서 독립해 창립했다.

KPGA는 올해 각각 56회째를 맞는 KPGA선수권대회와 한국오픈을 비롯해 총 14개의 투어프로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KLPGA는 정회원 890명 등 총 1,762명의 선수가 등록돼 있으며 KPGA보다 더 많은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특히 최근 박인비, 최나연, 유소연, 박희영, 신지애, 전미정, 안선주 등 여자선수들이 미국과 일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데 힘입어 KLPGA대회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KPGA와 KLPGA가 주최하는 투어프로대회에는 수많은 갤러리들이 모여 선수들의 경기모습을 지켜본다.

이밖에 골프장 경영인들의 단체인 한국골프장경영협회(KGBA. 회장 박정호)가 1974년 창설됐다. 올 현재 266개사가 가입해 있다. 그 외 한국대중골프장협회(KPGCA. 회장 강배권), 한국골프연습장협회(KGCA. 회장 정대용), 한국골프용품협회 등의 골프 관련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이 단체들은 모두 소속된 회원들의 권익 보호와 정보 교류, 대외적인 창구로 활동하며 한국 골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골프 매스컴

방송, 신문, 골프전문지 등 골프 관련 보도 크게 늘어나

 

국내 골프가 발전해오면서 골프 관련 매스컴도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골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전문 TV채널에서부터 신문, 전문잡지 등 매체도 다양해졌다.

골프전문 케이블 TV방송은 현재 J골프와 SBS골프가 있다. 이 두 방송은 국내 대회뿐 아니라 PGA와 LPGA를 비롯한 일본과 유럽 등 해외 투어프로대회를 중계하고 있다. 또 레슨 프로그램과 골프 소식도 다양하게 편성해 방송하고 있어 아마추어 골퍼들에게도 인기다.

그 외 공중파와 케이블 TV 등 일부 방송도 국내외 큰 대회가 있을 때는 중계 방송에 나서는 등 골프 프로그램을 편성해 방송하기도 한다.

 

종합일간신문의 골프 기사도 크게 늘어났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고정소식란에 가끔씩 보이던 기사가 1982년 인도 뉴델리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지면의 양과 게재 회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당시 스포츠지들이 경쟁적으로 창간되면서 골프지면이 크게 확대됐다.

1998년 박세리 선수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자 일간지들이 1면 톱으로 다루면서 골프기사의 1면 등장이 본격화됐다. IMF로 온 국민들이 실의에 빠져있던 당시 박세리의 우승 기사는 1면 스트레이트 기사에 3면 해설 기사, 그리고 사설까지 곁들인 완벽한 종합 선물세트였다. 같은 날 상당수 일간지엔 박세리의 우승을 축하하는 대기업의 축하광고가 1면 하단에 5단짜리로 실렸다.

올들어 박인비 선수가 LPGA에서 나비스코챔피언십과 LPGA챔피언십, US여자오픈 등 메이저 3연승을 기록하자 다시 1면 기사로 등장했다. 요즘은 골프기사가 스포츠면의 톱기사로 실리는 것은 전혀 낯설지 않다.

 

골프 소식만을 전하는 주간신문도 생겨났다. 1990년 창간된 레저신문을 비롯, 한국골프신문 등이 발행되고 있다.

월간 전문잡지는 10여종이 넘는다. 올해 창간 18주년을 맞는 골프가이드를 비롯, 골프다이제스트, 골프매거진 등이 골프와 관련한 다양한 내용을 담아 매월 발행되고 있다. 이 가운데 일부 잡지는 해외에서 발행되는 유명 골프잡지와 라이센스계약을 맺고 기사와 사진을 전용게재하고 있다.

 

골프 관련 간행물, 영화, 드라마 등 줄이어

골프장도 개방해 지역민들과 소통, 새로운 골프 문화에 앞장서

 

초기 골프서적은 주로 레슨 이론서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말부터 해외 번역물을 비롯해 소설, 에세이 등도 출간됐다.

최근에는 만화로 엮은 레슨서적은 물론 영상 비디오, 사진 중심으로 엮은 골프안내서 등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골프 간행물이 봇물을 이루는 것과 함께 골프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도 시도됐다. 1980년대 말에는 코스 잔디 관련 논문들이 발표됐고, 그 이후 해외 유학파들이 늘어나면서 골프 기술이나 심리적인 측면에서 접근을 시도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학문적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골프 관련 박사 논문들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골프가 인기를 끌고 골프 인구가 급증하면서 골프가 영화나 TV드라마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역전에 산다’ ‘공공의 적’ 등의 영화와 ‘라이벌’ 같은 TV드라마에서 골프가 등장했다.

 

이같은 흐름과 함께 골프장들도 최근 지역 주민들을 비롯한 일반인들에게 개방, 여러 가지 문화행사를 갖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서원밸리CC의 그린콘서트, 아난티클럽서울의 숲속영화음악감상회, 대구CC의 음악회, SKY72에코소풍행사, 제주중문골프장의 달빛걷기행사 등이 대표적이다. 그밖의 다른 골프장들도 1년에 한 두차례 정기적으로 골프장을 개방해 어린이 사생대회나 자모 글짓기 대회를 개최하는 등 지역 주민들과 소통을 하며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