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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w Shot] 정찬수 변호사와 함께 하는 골프관련 법상식 2

[Law Shot] 정찬수 변호사와 함께 알아보는 골프 관련 법 상식 2






캐디가 무슨 잘못이라고!

운이 없으면 골프장에서는 뒤에 서 있어도 볼에 맞는다.





일명 ‘골사모’, 골프를 사랑하는 사람들 회원 네 명은 6월 경기도의 한 골프장에서 정기모임을 가졌다. 김민지(47, 가명), 박춘자(50, 가명), 이기려(48, 가명), 민숙희(47, 가명) 네 명은 오로지 골프가 좋아 의기투합해 ‘골사모’를 만들었다. 이들 구력은 높지 않지만 골프에 대한 사랑만큼은 대단하다. 6월의 화사한 햇살 아래 골사모는 실전 감각을 높이기 위해 필드를 찾았다. 평소, 에티켓을 규칙보다 중요하게 여겼던 박춘자 씨는 캐디에게도 매너 좋기로 소문이 났다. 티잉 그라운드에 모인 골사모. 박춘자는 첫 번째 홀을 시작함에 있어 경건한 마음으로 드라이브 샷을 하기 위해 백스윙을 감행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딴 마음을 먹었을까? ‘다음 홀에서 오너(honor)는 내 거야.’라는 생각에 평정심은 순간 흔들렸다. 박춘자씨의 공은... 앞으로 날아간 흔적이 전혀 없었고... 아뿔사! 박춘자가 친 공은 앞이 아닌 뒤로 날아갔다. 말없이 서 있던 캐디가 그 공을 맞고 바로 쓰러지고 말았다. 이럴 수도 있는가? 사건은 이렇게 엉뚱하게 시작됐다.


골프장은 황홀하다. 골프를 사랑하는 마음도 황홀하다. 골프는 ‘황홀’ 그 한 마디로 표현된다. 골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일명 ‘골사모’ 회원들의 골프사랑은 항상 황홀 그 자체다. 골프 실력만큼이나 골프 에티켓도 중요하게 여기는 골사모 회장 박춘자 씨는 이 모임의 연장자다. 박춘자 만큼이나 에티켓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심판이 없는 유일한 스포츠. 골프는 그래서 규칙만큼 에티켓이 중요한 운동이라고.”
박춘자의 교양 섞인 말에 클럽하우스에 모인 골사모 회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가 우리 모임 회장이니까 우리도 덩달아 에티켓을 더 신경 쓰게 되더라고요.”
모임에서 두 번째 서열인 이기려가 박춘자의 말에 동의했다.
“나도 골프를 늦게 시작했잖니? 골프는 알면 알수록 매력이 넘치는 스포츠가 아닌가 생각해. 다른 플레이어를 배려하고 경기의 기본 정신을 지키는 자세. 그게 아마추어나 프로나 모두에게 해당하기 때문에 더 대단하지 않나 싶어. 그...  무슨 책이더라? 그 책에 보면.”

박춘자가 말을 잇지 못하자 이기려가 도왔다.
“알앤에이(R&A)에서 나온 룰즈 오브 골프!”
“맞다. 룰스 오브 골프. 나는 왜 만날 그렇게 잊어버리는지 모르겠다?”
“언니야 사업이다 봉사다 협회다 활동을 많이 하니까 그러지 뭐. 다 이해해요. 우린.”
김민지의 말에 동갑 민숙희도 맞장구를 쳤다.
“책 제목이야 뭐... 우리 골사모가 골프를 사랑하면 됐지? 안 그래?”
이기려가 교양 있게 웃자, 다들 덩달아 웃었다.
“호, 호, 호.”
클럽 하우스에 있는 고전적인 카페에서 모닝커피를 마신 골사모는 라운드를 하기 위해 필드로 나갔다. 

“안녕하십니까? 도우미 이광미입니다.”
골사모 담당 캐디가 박춘자에게 제일 먼저 정중히 인사했다. 그리고 세 명에게 연이어 인사했다.
“어머, 이광미(35)씨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박춘자가 따뜻하게 인사했다.
“사모님 보고 싶었어요. 꼭 한 달 만이신 거 같아요.”
“제가 그렇게 오랜만에 왔나요? 저도 이광미 씨 생각이 많이 났어요.”
오순도순. 그들은 카트를 타고 코스 첫 번째 홀에 당도했다. 

티잉 그라운드에 선 골사모들. 티샷을 하기 위해 제비뽑기에 들어갔다. 박춘자가 먼저 뽑았다.
“어머, 내가 티샷을 치게 됐네?”
“내가 두 번째다.”
“난 세 번째.”
“난 안 뽑아도 되겠는 걸?”

순서가 정해지자 박춘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뒤에 섰다. 멀찌감치 떨어져 박춘자의 티샷을 바라봤다. 박춘자는 골프에서의 ‘아너(honour)’를 좋아한다. 아너는 티잉 그라운드에서 가장 먼저 플레이하는 플레이어가 “아너를 갖는다”고 한다. 앞 홀에서 타수가 적은 사람이 다음 티 아너의 자격자가 된다. 박춘자가 골프에서의 아너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언가 명예로운 순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 모임에서는 그 명예로움을 느끼면서 잠시 눈을 감고 사색에 잠겼다 캐디에게 주의를 들었다.

리듬을 타면서 박춘자는 티샷을 치기 위해 아이언 그립을 힘껏 쥐었다. 비기너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박춘자. 몸의 탄성을 이용해 친 공은 순간 빠른 속도로 날았다. 그런데 비기너의 손에 전해진 느낌은 ‘제대로 맞지 않았다는 것’이 확실했다. 싱크가 나고 말았다. 골프공이 아이언 헤드에 제대로 맞지 않고 헤드와 샤프트 사이 비스듬히 맞았다. 공은 엉뚱하게 뒤로 날아갔다. 쉽게 말해 삑사리가 난 것. 뒤에 서있던 사람들은 놀라 몸을 숨겼다. 하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캐디는 뒤늦게 총알처럼 날아온 공을 보게 됐다. 자기 자신에게 날아오는 공... 캐디는 공손히 대기하다 공연히 볼에 맞았다. 박춘자 씨는 골프장에서의 아너가 아닌 현실에서의 아너를 지켜야 할 순간을 맞이했다.


“뒤에 서 있다가 맞았어요. 변호사님 저처럼 억세게 운 나쁜 캐디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번 사건은 참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캐디가 티샷을 하는 참가자에게 8미터나 뒤에 떨어졌는데 그 작은 공이 어떻게 캐디를 맞힐 수 있었을까요. 이렇게 골프장에서는 뜻하지 않은 사건이 우연히 일어납니다. ‘언제나 주의하세요. 골퍼든 캐디든 말입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듯이 골프와 같은 개인 운동경기는 골퍼와 캐디 모두 주의의무를 기울여야 합니다. 특히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요소는 어디에든 도사리고 있으니 샷을 하는 골퍼는 더 각별히 신경 써야겠죠. 불행히도 모든 사고는 우연성에 바탕을 둔다는 점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주의! 주의! 주의! 제가 너무 주의만 강조하면 여러분 게임에 집중을 못하시려나요? 어쨌든...”

이번 사건은 피고인 박춘자 씨가 본의 아니게 이광미 씨에게 상해를 입혔다고 해도 8미터 뒤 골프공으로 피해자를 맞힌 사실은 인정됩니다. 그래서 과실치상죄가 성립해요. 더 따져보면, 캐디는 통상 공이 앞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뒤에 서 있어야 하는 기본적인 주의의무를 마친 상태였어요. 그리고 골프공에 맞을 것이라는 예견을 할 수 없기도 하죠. ‘설마... 8미터나 뒤에 떨어져 있었는데...’ 모든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시겠죠? 법원의 결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법관의 합리적인 자유심증에 따라서도 캐디의 위법성은 없었다고 봤습니다. 이에 피고인 박춘자 씨가 주장한 피해자의 채증법칙 위반이나 법리 오해 등의 위법은 없다고 판단한 것이죠. 억울한 사람에게 당연히 법원이 그의 손을 들어준 셈입니다. 이는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이었어요.

그리고 이 사건은 반의사불벌죄, 즉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인데, 1심 판결선고 전까지 고소취소가 되지 않은 사건이었습니다. 피고인 박춘자 씨는 이를 들어 상고했지만 법원은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양형이 부당하다는 상고 주장도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형사소송법에 의한 중대 범죄는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법원은 캐디 이광미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법원은 “골프와 같은 개인 운동경기에 참가하는 자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다칠 수도 있으므로, 경기 규칙을 준수하고 주위를 살펴 상해의 결과가 발생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 이러한 주의의무는 경기보조원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로 부담한다”며 “본 사건은 운동경기에 참가하는 자가 경기규칙을 준수하는 중에 또는 그 경기의 성격상 당연히 예상되는 정도의 경미한 규칙위반 속에 제3자에게 상해의 결과를 발생시킨 것이다. 사회적 상당성의 범위를 벗어나지 아니하는 행위라면 과실치상죄가 성립하지 않으나 골프경기를 하던 중 골프공을 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자신의 등 뒤편으로 보내어 등 뒤에 있던 경기보조원(캐디)에게 상해를 입힌 경우에는 주의의무를 현저히 위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하여 사회적 상당성의 범위를 벗어난 행위로서 과실치상죄가 성립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2008.10.23. 선고 2008도6940 판결)




골퍼가 라운드 도중 과실로 캐디나 동료 골퍼에게 상해를 가한 경우에는 민사적으로는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하고, 형사적으로는 과실치상죄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피해내용을 확인한 후 협의를 거쳐 합의를 하고 종결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고 판단됩니다. 만약 피해가 중대하여 합의금액을 정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법원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여 법원에서 지정한 병원에서 신체감정을 받는 등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합의금액을 결정하면 양 당사자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합의금액이 도출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과실치상죄는 고의가 아닌 순전히 과실로 발생한 것이므로 처벌가치는 낮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가능하면 형사고소 보다는 민사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서로 간에 앙금을 남기지 않는 현명한 선택이라고 사료됩니다.








정찬수 변호사 약력

사법시험 30회 합격 
사법연수원 20기 수료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 역임
골프회원권반환소송 카페(http://cafe.naver.com/golflawyer) 운영
현 법무법인 민우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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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초대로49길 5, 3층(서초동, 승보빌딩)

글 문신웅 기자 moonswn@naver.com 사진 김동우 기자 dw.kim@geconomy.co.kr 자문 정찬수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