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 시선] 이재명 대통령이 표창한 실버영화관의 눈물

  • 등록 2026.05.09 19: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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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이어온 문화복지 모델, 무료정책과 정면 충돌
“관객 줄면 혁신이 먼저”…세금 무료화의 역설 논란
AI 더빙·트로트 공연까지 확장한 민간 공익생태계
“복지의 본질은 공짜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 호소

어버이날을 지나 서울 종로의 한 극장이 존폐의 갈림길에 서 있다. 그러나 이번 논란은 오래된 극장 하나의 생존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지난 17년 동안 어르신들의 외로움과 추억, 삶의 시간을 함께 견뎌온 문화공간이자,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이 어떤 방식의 노년 문화복지를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의 이야기다.

 

 

실버영화관은 오랜 시간 노인 문화복지의 사각지대를 메워왔다. 큰 자막과 선명한 화면, 고령층 맞춤형 상영 환경, 그리고 2,000원의 부담 없는 관람료까지. 이곳은 영화를 보는 장소를 넘어 홀로 집에 머물던 어르신들이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보내는 생활형 문화공간 역할을 해왔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모델이 세금 지원에만 의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민간이 직접 운영하면서도 공익성과 지속 가능성을 함께 고민해왔다. 무료가 아니라 ‘누구나 감당 가능한 가격’을 유지하며 스스로 생태계를 만들고 지켜온 것이다.

 

실버영화관은 과거의 향수에만 기대지도 않았다. 최근에는 AI 기술을 활용한 고전영화 더빙 사업까지 준비해왔다. 청력이 약한 고령층도 오래된 영화를 보다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모정의 세월」, 「청춘을 돌려다오」, 「굳세어라 금순아」 같은 트로트 쇼뮤지컬도 기획했다. 일회성 어버이날 이벤트가 아니라 자녀들이 부모에게 평소에도 문화공연을 선물할 수 있는 ‘일상형 효도 문화’를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극장 로비에 마련된 1960~80년대 생활용품 전시관 역시 의미가 남다르다. 어르신들에게는 추억을, 젊은 세대에게는 부모 세대의 시간을 이해하게 만드는 세대공감 공간으로 기능해왔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김은주 대표는 올해 1월 이재명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국민 추천 방식으로 선정된 표창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직후부터 시작됐다. 실버영화관 인근의 서울시 운영 청춘극장이 갑작스럽게 전면 무료화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노인 문화복지 확대라는 명분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서울시 역시 관객 감소 문제와 노년층 문화 접근권 확대를 고민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실버영화관 측 설명은 다르다. 청춘극장 역시 불과 몇 달 전까지는 실버영화관과 같은 2,000원 체계로 운영됐지만, 운영 주체가 바뀐 이후 관객 수가 급감했고 이후 서울시가 서비스 혁신이나 콘텐츠 경쟁력 강화보다 무료화를 먼저 선택했다는 주장이다.

 

핵심은 무료냐 유료냐의 단순한 선택이 아니다. 관객이 줄었다면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은 왜 시민들이 발길을 끊었는가다. 콘텐츠 경쟁력이 떨어졌는지, 운영 품질에 문제가 있었는지, 서비스 구조에 한계가 있었는지를 우선 점검하는 것이 행정의 정상적인 순서다.

 

그런데 세금을 기반으로 한 무료화 정책이 먼저 등장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시장은 왜곡되고, 오랜 시간 자생력을 키워온 민간 공익모델은 버티기 어려워진다. 결국 경쟁의 기준이 콘텐츠와 서비스가 아니라 ‘누가 세금 지원을 받느냐’로 바뀌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방식이 장기적으로 공공생태계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나 지자체가 언제든 세금을 투입해 무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누가 장기간 적정 가격과 품질을 유지하며 공익사업을 지속하려 하겠는가. 혁신과 품질 경쟁보다 행정 지원 여부가 생존을 좌우하게 된다면, 민간 기반 공익생태계는 성장하기도 전에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정부는 최근 사회적경제와 민간 기반 공익모델 육성을 강조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행정안전부 역시 지역 특성을 살린 사회적 연대와 지속 가능한 공익생태계를 정책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묘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중앙정부는 현장에서 검증된 민간 공익모델을 표창하며 장려하고 있지만, 지방행정은 같은 모델을 무료정책으로 시장 밖으로 밀어내는 듯한 모양새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표창으로 공로를 인정받은 공간이 불과 몇 달 만에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 공공정책의 철학이 과연 일관성을 갖고 있는지 되묻게 만든다.

 

김은주 대표는 현재 극장을 찾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실버영화관을 지켜달라”는 서명을 받고 있다. 그의 싸움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2012년 서대문아트홀 폐관 당시에도 김 대표는 어르신 문화공간을 지켜달라며 삭발까지 감행했다. 당시에는 재개발 논리와 싸워야 했고, 지금은 행정 논리와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안은 결국 우리 사회가 어떤 노년 복지를 지향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복지는 공짜로 제공하는 행정 서비스에 그쳐서는 안 된다. 지속 가능해야 하고, 품격이 있어야 하며, 현장의 경험과 축적된 노하우가 존중받아야 한다.

 

어버이날이 지나간 지금도 서울 한복판의 풍경은 여전히 많은 생각을 남긴다. 대통령은 표창으로 그 공로를 인정했지만, 정작 현장은 여전히 생존을 걱정하고 있다.

 

과연 우리 사회는 노년의 문화를 ‘존중’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무료 제공’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이제는 서울시와 정책 당국이 답해야 할 시간이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문채형 기자 moon113@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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