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강매화 기자 | 9·11 테러와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세계적 위기 때나 발동되던 서킷브레이커가 올해 들어 벌써 여섯 차례 작동했다.
특히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출시된 이후에는 뚜렷한 대외 악재가 없는 상황에서도 네 차례나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면서 한국 증시가 외부 충격보다 시장 내부 구조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증시 안팎에서는 "시장을 지키기 위한 브레이크가 일상이 됐다"는 지적과 함께 변동성을 키우는 구조적 요인을 근본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유가증권시장에서 사이드카는 모두 34차례(매도 17회·매수 17회) 발동됐다. 이는 거래소가 공식 집계를 시작한 2002년 이후 지난해까지 연평균 발동 횟수인 2.5회의 13배를 웃도는 규모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기록했던 26회도 이미 넘어섰다.
코스닥 시장 역시 올해 19차례 사이드카가 발동되며 금융위기 수준의 변동성을 나타내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서킷브레이커다. 모든 종목의 거래를 20분간 중단시키는 서킷브레이커는 시장 전체가 정상적인 가격 형성을 하지 못할 정도의 충격이 발생했을 때만 발동되는 최후의 안전장치다.
하지만 올해 코스피에서는 이미 여섯 차례 발동됐다. 2000년 제도 도입 이후 전체 발동 횟수 12회의 절반이 올해에 집중된 것이다.
그동안 서킷브레이커는 2001년 미국 9·11 테러,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글로벌 금융위기 등 세계 경제를 뒤흔든 대형 사건이 발생했을 때 작동했다.
그러나 최근 네 차례는 상황이 달랐다. 시장에서는 지난 5월 말 도입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변동성을 증폭시키는 새로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출시 이후 한 달 만에 212조 원이 넘는 거래대금을 기록하며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을 대거 흡수했다.
문제는 상품 구조다. 레버리지 ETF는 목표 수익률을 유지하기 위해 장 마감 무렵 대규모 리밸런싱 거래를 실시한다. 주가가 급락하면 운용사는 목표 배율을 맞추기 위해 대량 매도에 나서고, 이는 다시 주가를 끌어내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달 23일에도 운용사들은 레버리지 ETF의 목표 수익률을 맞추기 위해 9조2천억 원 규모의 매도 물량을 시장에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신용거래 반대매매까지 겹치면서 하락폭은 더욱 커졌다. 주가 하락이 반대매매를 유발하고, 반대매매는 다시 주가를 떨어뜨리는 구조가 반복되면서 변동성이 증폭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하루 반대매매 규모가 1천억 원을 넘어선 여섯 거래일 가운데 다섯 차례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상장 이후 발생했다.
시장에서는 알고리즘 기반 프로그램 매매 역시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한다. 프로그램 매매와 ETF 리밸런싱, 반대매매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작은 충격도 순식간에 시장 전체로 확산되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변동성은 결국 기관투자가들의 시장 참여를 위축시키고 있다.
시장에서는 또 다른 구조적 문제도 제기된다. 거래가 늘어날수록 ETF 운용사는 운용보수를, 증권사는 거래 수수료와 신용이자 수익을 얻는다. 반면 높은 변동성에 가장 크게 노출되는 것은 개인투자자들이다.
초고위험 상품이 빠르게 확산되는 동안 시장 안전장치와 투자자 보호 장치가 충분히 마련됐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당국 역시 개인투자자 보호를 정책 기조로 내세우고 있는 만큼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시장 변동성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제도 개선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높은 변동성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시장 참여자들은 서킷브레이커와 사이드카가 반복적으로 발동되는 상황을 더 이상 일시적인 시장 현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시장 구조 전반을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킷브레이커는 시장을 멈추기 위한 마지막 안전장치다. 그러나 그 장치가 일상이 된다면 문제는 브레이크가 아니라 자동차 자체에 있다. 지금 한국 증시에 필요한 것은 거래를 멈추는 일이 아니라 변동성을 키우는 구조적 원인을 면밀히 진단하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제도적 해법을 마련하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