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김정훈 기자 | 역사의 빈칸을 채우는 작업이 마지막 고비에 들어섰다. 제적등본에서 희생자의 흔적을 찾고, 흩어진 유족과 참고인을 만나 사건의 조각을 맞추는 여순사건 사실조사가 법정기한을 앞두고 막판 속도를 내고 있다.
전남과 광주가 하나의 행정체계로 묶인 뒤 시민과 공무원의 권리를 다룰 제도적 틀도 새로 짠다. 시민의 행정처분을 심리하는 행정심판위원회와 공무원의 불이익 처분을 다루는 지방소청심사위원회가 통합특별시 출범 이후 처음 구성된다.
17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여순사건지원단은 최근 진상규명 신고 점검회의를 열고 여수·순천·광양·고흥·보성·구례 등 주요 6개 시군의 사실조사 상황을 살폈다.
지금까지 접수된 진상규명 신고는 모두 2610건이다. 이 가운데 63%인 1651건이 6개 시군에 몰려 있다. 지역별로는 여수 479건과 순천 459건, 고흥 379건, 보성 177건, 광양 98건, 구례 59건이다.
현재 이들 지역의 조사 진척도는 80% 안팎이다. 조사의 큰 줄기는 잡혔지만 서울과 경기, 충청 등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유족과 참고인을 찾아야 하는 원거리 조사가 막판 변수로 남았다. 조사 대상은 넓게 흩어져 있고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는 게 점검회의에서 확인된 가장 큰 어려움이다.
이에 따라 여순사건지원단은 앞으로 한 달여 동안 소속 조사관과 조사원을 6개 시군에 집중 배치한다. 시군의 손이 닿기 어려운 원거리 조사를 함께 맡아 오는 8월 14일까지 현장 조사를 끝내겠다는 구상이다.
사실조사는 서류 몇 장만으로 마침표를 찍기 어렵다. 희생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제적등본을 살피고, 유족을 찾아 신고 내용을 대조해야 한다. 여기에 마을 탐문과 참고인 면담까지 거쳐야 비로소 사건의 윤곽이 드러난다.
무엇보다 이번 조사 결과는 2027년 4월 완성되는 국가 차원의 여순사건진상조사보고서를 떠받칠 기초자료다. 법정 조사기한은 오는 10월 4일이지만 통합특별시는 8월 말까지 사실조사와 실무위원회 소위원회 심의를 마치고, 9월 전체회의 의결을 거쳐 중앙위원회에 결과를 제출할 계획이다.
주요 6개 시군을 제외한 전남지역 13개 시군과 광주 5개 자치구, 통합시 밖 지역에서 접수된 268건은 사실조사를 마쳤다. 이들 사건은 여순사건 실무위원회 소위원회 심의를 이미 거쳤거나 8월 초순까지 심의를 끝낼 예정이다.
진상규명 신고는 1·2차 접수 기간인 2022년 1월 21일부터 2023년 12월 31일까지 191건이 들어왔다. 2025년 3월 18일부터 8월 31일까지 이어진 3차 접수에서는 2천419건으로 크게 늘었다.
피해자 지역을 기준으로 보면 통합특별시 19개 시군이 2031건, 광주 5개 자치구가 311건, 통합시 밖 지역 등이 268건이다. 진도·신안·강진에서는 신고가 접수되지 않았다.
배성진 여순사건지원단장은 “법정 조사기한 이전인 8월 말까지 사실조사를 마치고, 한 분의 피해도 역사 속에 묻히지 않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과거의 피해를 기록하는 작업이 막바지로 향하는 사이, 통합 행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권리 침해를 다룰 두 개의 안전판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먼저 통합특별시는 오는 27일까지 행정심판위원회 위촉위원 48명 이내를 공개 모집한다. 행정심판위원회는 행정청의 위법하거나 부당한 처분, 아무런 처분을 하지 않는 부작위로 권익을 침해받은 시민의 사건을 심리·의결하는 준사법적 권익구제기구다.
이번 공모는 통합특별시 출범 이후 첫 행정심판위원회를 구성하는 절차다. 모집 규모는 변호사 31∼33명, 교수 등 전문가 10명, 전문의 5∼7명이며 임기는 오는 8월부터 2년이다.
지원하려면 변호사 자격 취득 후 5년 이상 실무 경험이 있거나 대학 조교수 이상으로 재직한 경력, 박사학위 취득 후 해당 분야에서 5년 이상 근무한 경험 등 행정심판법상 요건을 갖춰야 한다.
이와 맞물려 지방소청심사위원회 위촉위원도 16명 이내로 선발한다. 지방소청심사위원회는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 소속 공무원이 받은 징계와 강임, 휴직, 직위해제, 면직 등 불이익 처분과 부작위에 관한 소청을 심사·의결한다.
지원 자격은 현직 법관·검사·변호사와 대학에서 법률학을 담당하는 부교수 이상 재직자 등이다. 임기는 오는 8월부터 2029년 7월까지 3년이며 한 차례 연임할 수 있다.
두 위원회 모두 오는 27일까지 지원서를 받는다. 행정심판위원 지원 서류는 무안청사 법무담당관실에, 지방소청심사위원 지원 서류는 광주청사 법제담당관실에 방문이나 등기우편, 전자우편으로 제출하면 된다.
전자우편 이용자는 전화로 접수 여부를 확인해야 하며 세부 자격과 제출 서류는 통합특별시 누리집 고시·공고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순사건 사실조사는 남겨진 피해를 국가 기록으로 옮기는 일이고, 두 위원회의 구성은 통합 이후 권리구제의 기준을 세우는 절차다. 통합특별시는 8월을 기점으로 과거사의 미완 과제를 매듭짓는 동시에 시민과 공무원을 위한 권익구제 체계를 가동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