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기획│다농마트 흑역사⑦] 권력은 어떻게 밥줄을 끊었나… 마포에서 가락까지, 우연이라기엔 너무 많은 흔적

  • 등록 2026.08.09 16:3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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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구정질의가 경고한 위험, 5년 뒤 현실이 되다
기부금 반환·규정 개정·공개입찰… 변화는 이미 시작 돼
회의록에 남은 질문, 현실이 된 최고가 입찰의 결말
문서는 서로 달랐지만, 시간표는 단 하나를 가리켰다

 

지이코노미 문채형 기자 |

 

◇ 회의록은 5년 뒤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평범한 공개입찰 잔혹사처럼 보였다. 20여 년간 마포농수산물시장의 터줏대감이었던 다농마트가 떠났고, 그 자리를 차지한 최고가 낙찰자는 끝내 계약을 이행하지 못했다. 이어 진행된 재입찰마저 줄줄이 무산되면서 시장은 장기간 핵심 집객시설을 잃었다. 상인들의 매출은 급감했고, 수십 년간 일터를 일궈온 임직원과 협력업체 종사자 수백 명은 길거리로 내몰렸다.

 

겉으로 보면 전형적인 행정의 '공개입찰 실패 사례'다. 하지만 본지가 2021년부터 수년간 추적해 온 지방의회 회의록, 공문, 입찰 데이터, 국민권익위원회 조사결과, 법원 제출 자료를 시간순으로 퍼즐처럼 맞추자 전혀 다른 판이 드러났다. 서로 다른 기관에서, 서로 다른 시기에 작성된 문서들이 마치 미리 짜인 시나리오처럼 정확히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보도는 특정인의 형사책임을 단정짓기 위함이 아니다. 본지가 추적한 것은 단 하나, '어떤 의도와 과정을 거쳐 정책이 수립되었으며, 그 행정 권력이 어떻게 시장 상인과 종사자들의 삶을 무너뜨렸는가'에 대한 치밀한 기록이다.

 

◇ 예고된 균열, 회의록보다 빨랐던 '이상 신호'

 

시장 상인들이 기억하는 사태의 출발점은 이춘기 전 마포시설관리공단 이사장의 부임 직후였다. 당시 시장 안팎에서는 "공단이 다농마트를 쫓아내려 한다"는 소문이 감돌았다. 처음에는 가벼운 구설로 치부됐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 징후들이 연이어 현실화됐다.

 

다농마트가 20년 이상 이어온 마포장학재단 기부금은 돌연 거부됐고, 이미 전달된 기부금마저 반환 처리됐다. 다농 측과 시장 상인들이 요청한 공단·마포구청 면담은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 사이 공단은 임대료 조정과 함께 시장 운영규정을 대폭 손질하며 제도 개편에 속도를 냈다.

 

개별 사안으로 보면 모두 행정기관의 '재량권' 범위 내 조치로 포장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변화가 짧은 기간에 연쇄적으로 일어났다는 점은 기존 운영체계를 강제로 해체하려는 정교한 신호였다.

 

취재 과정에서는 공단 임대 담당자가 다농 본사가 입주해 있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에 다농의 임대차 계약 현황을 직접 문의한 사실도 확인됐다. 당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관계자는 "주요 계약 현황은 구두가 아닌 공문으로 전달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 기관의 계약 상황을 파악하는 행위 자체가 위법은 아니다. 그러나 기존 사업자의 계약 만료 현황을 사전 탐색한 시점과, 이후 전격적으로 단행된 '최고가 공개입찰' 사이의 개연성은 지금도 공단이 해명해야 할 핵심 의문으로 남아 있다.

 

◇ "경보유통이 능력이 있습니까?" 5년 전 던져진 경고

 

시간을 2021년 3월로 되돌려보자. 훗날 시장을 파국으로 몰고 간 문제점들은 이미 마포구의회 본회의장에서 정확히 지적되고 있었다. 제247회 마포구의회 임시회에서 강명숙 당시 구의원은 자본금 1,000만 원에 불과한 '경보유통'이 대형 판매시설을 운영할 실질적 능력이 있는지를 집중 추궁했다. 수십억 원에 달하는 보증금 조달 능력, 유통업 운영 경험, 재무 건전성 등 공단의 검증 부실을 송곳처럼 파고들었다.

 

"최고가 낙찰 방식은 계약 불이행과 시장의 장기 공백을 부를 수밖에 없다. 운영 능력보다 가격만 앞세우는 구조는 매우 위험하다."

 

의회의 경고는 명확했다. 하지만 이춘기 전 이사장은 "공개경쟁입찰이 가장 공정한 방식이며, 자격 요건을 갖춘 이상 자본금 규모만으로 참여를 제한할 수는 없다"는 원론적인 답변으로 일축했다.

 

당시에는 흔한 구정 질의응답처럼 흘러갔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그날의 회의록은 섬뜩한 '예언서'가 되었다. 회의장에서 던져진 모든 우려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 최고가 뒤에 숨은 함정, 멈춰 선 마포시장

 

 

공단이 감행한 최고가 입찰에서 경보유통은 기존 임대료의 약 6배에 달하는 파격적인 금액을 써내며 낙찰받았다. 장부상으로만 보면 공단은 수십억 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대단한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현실은 신기루였다. 낙찰자는 약속한 보증금과 임대료를 끝내 내지 못했고, 공단은 뒤늦게 낙찰을 취소했다. 이어진 재입찰에서도 우선협상 대상업체들이 줄줄이 계약을 포기하면서 시장은 수개월간 거대한 빈집으로 방치됐다.

 

2021년 의회 회의록에 남았던 질문이 현실을 직격한 순간이다. 공공 행정의 핵심은 '누가 가장 높은 액수를 지르는가'가 아니라 '누가 시장과 지역 경제를 안정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가'여야 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지금도 답을 얻지 못한 채 떠돌고 있다.

 

◇ 마포에서 가락시장으로… 확장되는 판도

 

취재가 깊어질수록 본지가 주목한 것은 개별 사건의 단면이 아닌 '시간의 연속성'이었다. 당초 마포농수산물시장의 입찰 파행에 집중했던 취재진은 공문과 데이터의 타임라인을 따라가다 충격적인 정황을 포착했다. 마포에서 시작된 거대한 파도가 서울 가락동 가락시장으로 옮겨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2023년을 전후해 다농산업 본사가 입주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락시장)를 상대로 다농과의 임대차 계약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민원이 폭주했다. 결국 국민권익위원회 조사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본지가 확보한 권익위 조사결과 통지서에 따르면, 권익위는 가락시장과 다농 간의 기존 수의계약을 '부패행위'로 보지 않았다. 임대료 특혜나 공용면적 편의 제공 등 제기된 핵심 의혹 모두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내렸다. 가락시장의 역사성과 도매시장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한 정당한 행정 행위라는 판단이었다.

 

권익위의 무혐의 결론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정책의 바퀴는 반대 방향으로 굴러갔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기다렸다는 듯 기존 계약을 공개입찰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마포를 흔들었던 '공개입찰 잔혹사'의 먹구름이 가락시장으로 그대로 이동한 것이다.

 

◇ 민원인과 이사장의 이상한 연결고리

 

가락시장을 흔든 민원 서류의 타임라인을 추적하던 취재진은 뜻밖의 이름을 발견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에 다농 관련 민원을 지속적으로 제기한 인물 중 한 명이 '위례시민연대' 소속 이 모 씨라는 사실이다.

 

시민단체의 민원 제기 자체는 정당한 권리다. 그러나 마포 지역 시민사회와 시장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 씨와 이춘기 전 마포시설관리공단 이사장의 '각별한 관계'에 대한 제보가 끊이지 않았다. 다농 측 역시 "마포와 가락동에서 동시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가 단순 민원을 넘어선 구조적 연계"라며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본지가 확보한 법원 제출 탄원서에도 정황은 드러난다. 해당 탄원서에는 이춘기 전 이사장의 선처를 호소하며 그의 업무 성과를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고, 문서 전반에 '이춘기 이사장님'이라는 친근한 호칭이 반복 등장했다.

 

물론 탄원서 한 장으로 두 사람의 음모론을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외부 민원 제기 ➔ 법원 탄원서 제출 ➔ 전격적인 공개입찰 전환 검토라는 일련의 흐름이 치밀하게 맞물려 돌아갔다는 점, 그리고 이 과정이 공공기관의 정책 전환 명분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행정 당국의 명확한 해명이 요구된다.

 

◇ 서로 다른 문서가 가리킨 단 하나의 진실

 

본 기획을 위해 본지가 확보한 수십 권의 문서들은 출처가 제각각이다. 마포구의회 회의록은 무모한 정책에 대한 경고를 남겼고, 공단의 입찰 서류는 그 무모함이 가져온 처참한 결과를 입증했다. 국민권익위 결정문은 기존 계약에 특혜가 없었음을 입증했으며, 법원 제출 자료와 공공기관 내부 문서들은 그 뒤에 숨은 인적 연결고리를 증언하고 있다.

 

작성 기관도, 시점도 달랐던 문서들을 하나의 타임라인에 늘어놓는 순간, 흩어져 있던 점들은 하나의 명확한 선으로 이어졌다.

 

2021년 제기된 경고를 무시한 결과 마포시장은 붕괴했다. 이어 동일한 논리와 민원을 무기 삼아 공격 타깃은 가락시장으로 확대됐다. 권익위가 특혜가 없다고 공인했음에도 '공개입찰'이라는 명분은 집요하게 추진됐다.

 

문서는 진실을 말하고 있다. 이제 설명해야 할 것은 행정 당국이다. 왜 의회의 경고를 무시했는가. 왜 최고가 낙찰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뒤에 숨었는가. 그리고 이 모든 파행이 과연 어떤 '공익'을 위해 단행된 것인가.

 

◇ 기록은 끝났다, 이제 해명하라

 

탐사보도의 본질은 소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분절된 기록을 연결해 '설명되지 않은 권력의 공백'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회의록은 우려를 기록했고, 입찰표는 실패를 증명했으며, 권익위는 무죄를 입증했다. 이 모든 문서가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우연이 아닌 '의도된 행정'이다.

 

5년 전 회의장에서 쏟아졌던 그 수많은 경고와 질문들은 왜 묵살되었는가. 그 결과로 무너져 내린 상인들의 삶과 텅 빈 시장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기록은 끝났다. 이제 행정이 답할 차례다.

 

◇ 다음 회 예고

 

문서는 행정의 궤적을 보여주지만, 그 뒤에 숨은 정치적 계산까지 모두 담지는 못한다. 이어지는 『다농마트 흑역사⑧』에서는 문서 뒤에 숨은 '사람들의 시간표'를 본격 추적한다. 수백 명의 지역 주민과 상인들의 생계가 위협받는 동안 지역 정치권은 무엇을 알고 있었는가. 

 

그들은 방관자인가, 아니면 공범인가. 객관적 취재 자료를 바탕으로, 주민들이 끝내 듣지 못했던 '지역 정치의 쌩얼'을 공개한다.

문채형 기자 newsroom@g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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