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방제일 기자 | 18세 신인 골퍼 제시카 방(Jessica Bang)은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할 때만 해도 자신의 이름이 호주 골프계에 얼마나 강렬하게 각인될지 알지 못했다. 버디 8개와 이글 1개. 최종 라운드에서 8언더파 65타를 몰아친 그는 합계 13언더파로 2위를 5타 차로 따돌렸다. 코스 레코드였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그 대회가 프로 전향 후 불과 다섯 번째 출전이었다는 점이다. 우승이 확정되자 제시카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너무 기뻐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예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아요.”
당시 그의 골프백을 멘 사람은 어머니였다. 이제 막 프로 세계로 뛰어든 딸과 그 곁을 지킨 어머니가 함께 만들어낸 첫 우승이었다. 사람들은 그때부터 제시카를 ‘루키 방(Rookie Bang)’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 첫 우승이 제시카 방의 긴 성공담을 여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불과 반년 만에 이루지 못한 꿈으로 끝났다.
제시카가 다음 무대로 선택한 곳 가운데 하나는 한국이었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는 8월 11일부터 14일까지 태국 방콕의 피닉스 골드 골프 방콕에서 국제퀄리파잉토너먼트(IQT)를 개최했다. 세계 각국 선수들이 KLPGA 투어 진출권을 놓고 경쟁하는 관문이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호주 골프 무대에서 성장한 제시카에게는 특별한 도전이었다.

그는 대회를 앞두고 방콕에서 준비에 한창이었다. 그러나 8월 1일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제시카가 갑자기 쓰러졌다. 뇌출혈이었다. 곧바로 방콕의 병원으로 옮겨져 긴급 뇌수술을 받았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후 중환자실에서 생명유지장치에 의존한 채 치료가 이어졌다. 가족은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다. 사촌들은 제시카를 호주로 데려오기 위한 모금에 나섰다.
중환자실 수준의 의료장비를 갖춘 특수 항공편이 필요했고 막대한 의료비와 이송비가 예상됐다. 온라인에는 제시카의 회복을 바라는 응원이 이어졌다. 하지만 가족이 그토록 바라던 귀국은 이뤄지지 못했다. 제시카 방은 8월 13일 오전 7시20분 태국 방콕의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18세였다. 프로골퍼로 살아간 시간은 채 1년도 되지 않았다.
이제 막 시작됐기에 더 아픈 이름
스포츠에서 ‘유망주’라는 표현에는 아직 기록되지 않은 미래가 담겨 있다. 우승 횟수도, 상금도, 세계랭킹도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은 그 선수가 앞으로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바라본다. 제시카 방이 남긴 기록 역시 많지 않다. 그러나 프로 5번째 출전 만에 우승했고, 마지막 날 65타라는 코스 레코드를 만들었다. 프로 무대에 적응하기도 전에 자신의 가능성을 결과로 보여준 셈이다. 그래서 그의 죽음을 접한 골프계가 애도한 것은 단순히 한 선수의 현재만이 아니었다. 앞으로 펼쳐질 것이라고 믿었던 수많은 내일이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다. 호주 골프계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WPGA 투어 오브 오스트랄라시아는 그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애도를 전했고, Golf NSW도 제시카를 밝은 미래를 지닌 재능 있는 선수로 기억했다.
22세에 멈춘 또 하나의 골프 인생
골프계에는 제시카 방에 앞서 너무 일찍 멈춰버린 또 하나의 유망주가 있었다. 스페인의 셀리아 바르킨 아로사메나다. 바르킨은 2018년 유럽여자아마추어선수권 정상에 오른 유럽 최고의 아마추어 가운데 한 명이었다. 미국 아이오와주립대에서 활약하며 학교 올해의 여자선수로 선정됐고, US여자오픈에도 출전했다.

LPGA 퀄리파잉스쿨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던 그의 나이는 불과 22세였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미국 아이오와주의 한 골프장에서 연습하던 바르킨은 범죄의 희생자가 돼 숨졌다.
불과 두 달 전 유럽 정상에 섰던 선수였다. 골프계는 그를 잊지 않았다. 그해 라이더컵에서는 미국과 유럽 선수들이 바르킨을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달았다. 그의 이름을 딴 추모와 기념사업도 이어졌다. 제시카 방과 바르킨의 죽음에 이르게 된 사정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잔인할 만큼 닮은 점이 하나 있다. 세계 무대를 향한 문이 막 열리려던 순간이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미완’을 기억하는 이유
다른 종목에서도 비슷한 아픔은 반복됐다. 2007년 스페인 축구 세비야FC의 안토니오 푸에르타는 리그 경기 도중 쓰러졌다. 한 차례 의식을 되찾아 걸어서 경기장을 빠져나왔지만 다시 상태가 악화됐고 사흘 뒤 세상을 떠났다. 향년 22세였다. 세비야 유소년팀에서 성장한 푸에르타는 이미 스페인 국가대표에 선발됐고 소속팀의 UEFA컵 연속 우승 등에 기여하며 유럽이 주목하는 선수로 성장하고 있었다. 2004년 포르투갈 명문 벤피카에서 뛰던 헝가리 국가대표 공격수 미클로시 페헤르 역시 경기 도중 심정지로 쓰러져 24세에 사망했다. 벤피카는 이후 그가 달았던 등번호 29번을 영구결번했다.
제시카 방의 뇌출혈과 이들의 사망 원인은 서로 다르다. 하나의 원인이나 ‘젊은 운동선수의 돌연사’라는 단순한 틀로 묶어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이들의 이야기가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이유는 같다. 우리는 이미 완성된 전설을 잃었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완성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재능의 죽음을 애도한다.
기록보다 오래 남는 것
스포츠 선수의 삶은 흔히 숫자로 기록된다. 몇 승을 거뒀는지, 몇 타를 쳤는지, 세계랭킹 몇 위까지 올랐는지가 선수의 경력을 설명한다. 그 기준으로 보면 제시카 방의 프로 경력은 한없이 짧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기억까지 기록의 길이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 남긴 글에서도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우승이나 스코어가 아니었다. 제시카의 사촌들은 모금 페이지를 통해 그의 골프에 대한 열정과 헌신을 기억하겠다고 했다. 동시에 유머 감각과 밝고 활기찬 성격을 가족들이 영원히 간직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 말은 어쩌면 ‘루키 방’이 남긴 가장 중요한 기록일지도 모른다. 프로 다섯 번째 대회에서 우승한 골퍼.어머니와 함께 첫 트로피를 들어 올린 딸. 한국과 호주, 그리고 더 큰 골프 무대를 향해 이제 막 걸음을 떼려던 열여덟 살. 제시카 방에게는 아직 써 내려가야 할 페이지가 훨씬 많았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우승 횟수 ‘1’이라는 숫자로 끝나지 않는다.
지난 2월 첫 우승 직후 그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불과 6개월. 이번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제시카 방의 스윙은 너무 일찍 멈췄다. 그러나 ‘앞으로 얼마나 잘할까’라는 기대를 단 한 번이라도 품게 했던 선수는, 그 가능성 자체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루키 방’의 프로 첫 우승은 결국 마지막 우승이 됐다. 하지만 열여덟 살 골퍼가 보여준 짧고도 눈부셨던 가능성까지 마지막이 된 것은 아니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미처 이어가지 못한 그의 이야기도 골프 코스 어딘가에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