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역삼구역 도시개발사업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정상화’라는 말이 유독 자주 등장한다. 조합 집행부가 바뀔 때도, 법적 분쟁에 변화가 생길 때도 정상화에 대한 기대가 나왔다. 그만큼 사업이 제 궤도를 찾지 못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사업은 2009년 도시개발구역 지정과 개발계획 수립을 시작으로 2011년 실시계획인가, 2017년 환지계획인가까지 주요 행정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이후에도 사업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용인시는 2023년 보도자료에서 이를 ‘14년 표류한 용인 역삼도시개발사업’이라고 표현했다. 올해로 구역 지정 이후 17년째다.
사업이 여기까지 온 배경에는 여러 사정이 얽혀 있다. 사업 여건의 변화뿐 아니라 조합 내부 갈등과 집행부를 둘러싼 법적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사업을 추진하는 데 써야 할 시간과 비용이 갈등과 소송에 소모되는 일이 되풀이됐다.
◇ 17년째 되풀이되는 ‘정상화’
2023년 조합은 법원이 선임한 조합장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됐다. 새 집행부 구성을 위한 선거관리위원회가 꾸려지자 용인시는 이를 ‘조합 정상화의 기틀’이라고 평가했다. 같은 해 임시총회가 추진되면서 장기간 멈춰 있던 사업이 다시 움직일 것이라는 기대도 나왔다.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집행부 구성과 총회 효력을 둘러싼 법적 다툼이 이어졌고 2025년에는 새 집행부 구성을 위한 임시총회가 또 열렸다. ‘정상화’가 여러 차례 등장했지만 조합원들이 체감할 만한 사업 진척으로 이어졌는지는 따져볼 일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비용도 불어났다. 용인시는 역삼구역 내 기반시설 부지와 체비지 등에 부과된 세금으로 조합이 체납액을 안고 있으며 각종 분쟁에 따른 비용 부담도 커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개발사업이 늦어지면 세금과 금융비용이 늘고 소송비용도 쌓인다. 사업 관계가 복잡해질수록 정상 궤도로 되돌리는 비용도 커진다. 이 과정에서 가장 오래 기다리는 사람은 조합원이다.
그래서 이제 용인역삼에서 ‘정상화’는 집행부 교체나 총회 개최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조합원들이 원하는 것은 누가 조합장이 되느냐보다 사업이 실제로 움직이는지, 자신의 재산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에 가깝다.
◇ 이번에는 조합의 돈을 둘러싼 의혹
최근에는 조합 운영 과정에서 업무상배임 등이 있었다는 내용의 고발장이 수사기관에 접수됐다. 사건은 경기남부경찰청으로 이관돼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고발인 측이 제기한 쟁점은 조합 관계자와 거래 상대방 사이의 이해관계, 토지매매대금 미수금과 체비지 이전, 업무대행사의 자격, 신탁계좌를 거치지 않은 자금 집행 의혹 등이다. 경찰은 고발인 조사를 진행하고 관련 자료를 제출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은 수사 단계다. 고발 내용이 사실로 확인된 것도 아니고 피고발인들의 혐의가 인정된 것도 아니다. 배임 여부와 조합의 손해 발생 여부는 경찰 수사를 거쳐 판단될 사안이다.
그렇다고 수사가 끝날 때까지 조합 운영에 관한 모든 질문을 미뤄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체비지를 어떤 조건으로 처분했는지, 토지매매대금은 제대로 회수됐는지, 업무대행사는 계약 당시 필요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는지 등은 조합원 재산 관리와 맞닿아 있다.
◇ 체비지와 미수금, 자료로 설명할 사안
체비지 처분을 둘러싼 의혹은 처분가격과 평가 근거, 의결 과정, 대금 지급 내역을 확인하면 상당 부분 사실관계를 가릴 수 있다. 토지매매대금 미수금 역시 현재 남아 있는 금액과 발생 경위, 조합이 취한 채권보전 조치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업무대행사의 자격도 계약 당시의 자본금과 기술인력 등 관련 자료로 확인할 수 있다. 신탁계좌 밖에서 집행된 자금이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해당 거래의 금액과 사용처, 승인 절차를 살펴봐야 한다.
이런 내용은 수사기관만 확인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조합이 보유한 계약서와 회의록, 회계자료 등에 기록돼 있어야 할 사안이다. 조합원들이 그 경위를 묻는 것도 자연스럽다.
◇ 조합장에게 물었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
본지는 고발인의 주장만으로 기사를 구성하지 않기 위해 조합장 측에 공식 질의서를 보냈다. 토지매매대금 미수금과 체비지 이전 과정, 업무대행사 자격, 자금 집행 방식 등을 묻고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다면 관련 자료와 함께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기사 작성 시점까지 답변은 없었다.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조합이 형사사건에 대한 언급을 조심스러워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계약과 체비지 처분, 미수금 관리, 자금 집행은 조합의 일상적인 운영과 회계에 관한 일이기도 하다.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과 조합원에게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을 가려 설명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용인역삼이 다른 사업장이라면 조합의 무응답이 이처럼 무겁게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은 2009년 이후 17년을 지나왔다. 그 사이 집행부가 바뀌고 법원의 직무대행 체제를 거쳤으며 ‘정상화’를 내건 총회도 여러 차례 열렸다.
◇ 장부에 잡히지 않는 17년의 비용
사업이 시작될 무렵 40대였던 조합원은 이제 50대 후반이 됐고, 50대였던 사람은 60대를 넘어섰다. 세금과 이자, 소송비용은 장부에 남지만 사업을 기다리며 보낸 세월은 어디에도 비용으로 기록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오래 지연된 사업일수록 집행부는 조합원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현재 자산과 부채가 얼마나 되는지, 주요 계약은 어떤 절차를 거쳤는지, 사업비는 어디에 쓰였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신뢰가 무너지면 집행부가 몇 번 바뀌어도 사업은 다시 갈등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이번 고발 사건의 형사책임은 경찰과 사법기관이 가릴 일이다. 수사 결과 혐의가 없다면 그 역시 존중돼야 한다. 다만 수사 결과와 관계없이 조합 운영에 관한 기록과 설명은 남아야 한다.
용인역삼은 이미 여러 번 정상화를 이야기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구호보다 사업이 어디까지 왔고 조합원의 재산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본지가 조합장에게 던진 질문도 그 지점에 있다. 체비지는 어떤 절차로 처분됐는가. 받아야 할 돈은 얼마나 남아 있는가. 업무대행 계약과 자금 집행에는 문제가 없었는가.
수사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조합이 가진 자료를 근거로 조합원에게 사업의 현주소를 설명하는 일까지 미룰 이유는 없다.
17년 동안 여러 차례 ‘정상화’를 거론해온 용인역삼이다. 이제 그 말의 무게를 보여줄 차례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