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문채형 기자 | 서울 마포농수산물시장 상인들이 결국 거리로 나섰다. 시장의 핵심 집객시설인 식자재마트가 장기간 비어 있으면서 고객 감소가 주변 점포의 매출 부진으로 번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개별 상인들의 민원과 호소에 머물렀던 문제가 시장 전체의 생존권 문제로 확산되자 상인회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마포구청과 정치권 등을 상대로 집단행동에 들어갔다.
1998년 문을 연 마포농수산물시장은 현재 마포구시설관리공단이 관리·운영하는 공공시장이다. 농수축산물과 식자재 등을 판매하며 지역 주민들의 생활시장 역할을 해왔지만, 최근 식자재마트 공실이 장기화하면서 시장의 핵심 집객 기능이 약화되고 있다는 게 상인들의 주장이다. 공단 자료에도 마포농수산물시장이 1998년 4월 개장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식자재마트는 단순한 대형 점포 하나가 아니다. 마트를 찾은 고객이 농산물과 수산물, 축산물, 식당 등 주변 점포까지 함께 이용하는 구조인 만큼 공실이 길어질수록 시장 전체의 고객 동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상인들이 “마트 하나가 아니라 시장 전체를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이유다.
◇73명 총회 참석…22명 비대위 꾸려 공동대응
마포농수산물시장상인회는 지난 18일 제26-3차 임시총회를 열고 마트 정상화와 상인 피해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총회원 106명 가운데 73명이 참석한 이날 총회에서는 ‘마트 조속 정상화 및 상인 피해대책 요구’,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및 권한 위임’, ‘집회 추진 및 공동대응’ 등 3개 안건이 의결됐다.
상인회는 마트 장기 공실을 일부 점포의 영업난이 아닌 시장 전체의 문제로 규정했다. 회의록에는 “마트 공실 장기화는 일부 점포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 전체의 상권과 생존권이 걸린 공동의 문제”라고 명시했다. 반복되는 입찰 실패와 입점 포기의 원인을 분석해 개선책을 마련하고, 마트가 정상화될 때까지 임대료 감면·면제 등 피해지원책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비상대책위원회에는 수산·농산·냉동·활어·젓갈·선어·패류·갑각류·건어물·채소·과일·식당·식자재·공산품·축산 등 사실상 시장 전 업종이 참여했다. 비대위원장 2명과 위원 20명 등 총 22명에게 관계기관과의 협의·면담을 비롯해 서명운동, 건의서 제출, 집회와 공동행동 등을 추진할 권한도 위임했다.
개별 점포의 어려움으로 여겨졌던 마트 공실 문제가 시장 전체 차원의 조직적인 대응으로 전환된 셈이다.
◇빗속에서도 거리로…“시장 상권 살려내라”
상인들의 위기감은 거리에서도 표출됐다. 상인회는 ‘마트공실 상권붕괴 마포구청장 상권회복 임대료 감면 촉구’를 내걸고 집회를 신고한 뒤 마포구청과 정치권 등을 상대로 집회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집회 현장에는 “마트공실 상권붕괴 시장상인 생존권 절단”, “마트공실 수수방관 책임기관 누구이냐”, “부실책임 책임지는 기관 없다”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등장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집회에 나선 상인들은 마트의 조속한 정상화와 상권 회복 대책을 요구했다.
정양호 마포농수산물시장상인회장은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시장 전체 점포가 무너질 수 있다”며 “상인들이 고통받고 있는데 이를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어 결국 거리로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상인들이 특히 우려하는 것은 장기 공실로 굳어지는 고객 이탈이다. 장보기 동선이 다른 대형마트나 시장으로 옮겨간 뒤에는 새로운 사업자가 입점하더라도 고객을 다시 불러들이는 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23년 계약연장 뒤 최고가 입찰…상인들이 지목한 ‘변곡점’
상인회는 현재 위기의 배경 가운데 하나로 입찰 방식의 변화를 꼽는다. 상인회에 따르면 시장 개장 이후 약 23년간 주요 점포는 계약연장 방식으로 운영됐지만 2020년을 전후해 최고가 공개입찰 방식이 적용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공공시설에 공개경쟁입찰을 적용하는 것은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문제는 가격 경쟁이 실제 사업자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경우다. 높은 금액을 제시해 낙찰받고도 계약이나 입점을 포기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최고가라는 숫자가 안정적인 시장 운영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식자재마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상인회 측에 따르면 과거 월 7000만원 수준이던 사용료는 최고가 입찰 과정에서 약 4억2000만원까지 올라갔지만 해당 사업자가 운영을 포기했다. 이후 2억6000만원과 1억8000만원 수준의 후순위 사업자들 역시 계약 또는 입점을 포기하면서 정상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높은 낙찰가는 나왔지만 실제 영업을 이어갈 사업자를 확보하지 못했고, 핵심 집객시설의 장기 공실이라는 결과를 낳았다는 게 상인회 측의 주장이다.
과거에도 마포농수산물시장의 최고가 경쟁입찰과 임대료 문제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2016년 서울시가 시장 운영 문제에 개입하는 방안을 발표했을 당시에도 시장 상인들은 최고가 경쟁입찰에 따른 임대료 문제와 시장 침체 해결을 요구했다.
◇5평 점포 월 70만원→504만원…고가 낙찰 부담 어디로
고가 낙찰을 둘러싼 우려는 식자재마트에 그치지 않는다. 상인회에 따르면 지난 2월 시장 내 약 5평 규모 패류 점포 공개입찰에서는 기존 월 70만원 수준이던 사용료가 월 504만원에 낙찰됐다. 기존 수준의 7배가 넘는다.
상인들이 문제 삼는 것은 높은 낙찰가격이 영업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흡수되느냐다. 급격히 늘어난 고정비가 상품가격 등에 반영되면 시장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이는 소비자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최고가 입찰이 절차적으로 명확한 방식이라 하더라도 낙찰자가 실제 영업을 지속하지 못하거나 급증한 고정비가 소비자 가격에 반영된다면 시장 전체로서는 또 다른 비용을 치를 수 있다. 결국 ‘얼마에 낙찰됐느냐’뿐 아니라 ‘그 가격으로 지속적인 영업이 가능한가’까지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다.
◇상인들 “특정 업체 위한 요구 아니다”
상인회는 이번 집단행동이 특정 사업자에게 마트 운영권을 주거나 과거 사업자를 다시 입점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반복되는 입찰 실패의 원인을 분석해 실제 입점과 장기 운영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고 핵심 집객시설을 조속히 정상화해 달라는 것이 요구의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마트 정상화까지 주변 점포의 피해가 계속될 가능성이 큰 만큼 임대료 감면이나 면제 등 한시적인 지원책도 요구하고 있다. 상인들은 장기 공실의 원인을 제공하지 않은 주변 점포들이 상권 침체에 따른 피해까지 고스란히 떠안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번 사태는 공공시장을 어떤 기준으로 운영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이어진다. 공개입찰에는 공정성과 투명성이 필요하지만 가장 높은 가격을 받는 것이 반드시 가장 안정적인 시장 운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낙찰자가 입점을 포기하면 임대수익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 데다 공실이 길어질수록 주변 상권이 치러야 할 비용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 어느 사업자가 옳았는지를 다시 따지는 데 있지 않다. 반복되는 고가 낙찰과 입점 포기가 왜 발생했는지, 현행 입찰 방식이 시장의 안정적인 운영과 양립하고 있는지, 장기 공실로 피해를 입은 주변 상인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해법을 찾는 일이다.
◇상인 집단행동 확산…마포구·유동균 구청장 역할도 도마
상인들이 비대위를 구성하고 거리로 나오면서 시장 정상화 과정에서 마포구가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앞으로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를 묻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핵심 집객시설의 공실이 장기화하고 상인들이 임대료 감면과 상권 회복 대책까지 요구하는 상황인 만큼 시장 관리·운영과 관련한 마포구의 정책적 판단과 대응 과정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공단은 지방공기업법과 마포구 관련 조례에 따라 설립됐으며, 마포구가 위탁하는 시설과 사업을 효율적으로 관리·운영해 구민의 생활편익과 복리 증진에 기여하는 것을 설립 목적으로 두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의 마트 장기 공실과 시장 침체를 둘러싸고 마포구와 마포구시설관리공단이 각각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시장 정상화를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가 향후 책임 소재를 가르는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본지는 이와 관련해 마포구에 공식 취재 질의서를 전달하고 답변을 요청한 상태다. 질의서에는 마트 후속 공개입찰 및 정상화 계획, 상인 피해대책과 함께 마포구와 마포구시설관리공단의 역할 및 권한 관계 등에 대한 질문을 담았다.
특히 유동균 마포구청장이 현재의 시장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으며 장기 공실과 상권 침체를 해소하기 위해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지도 공식적으로 물었다.
마포구의 답변이 도착하는 대로 구청 측 입장과 관련 사실관계를 추가 확인해 후속 보도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