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 시선] 강청희 이사장에게 묻는다…‘인간의 존엄’은 압류 앞에서 멈추는가

  • 등록 2026.08.25 18: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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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사에선 “인간다운 삶·존엄 지키는 공단”
현장에선 생계형 체납자 압류·징수 여전히 계속
지이코노미 문제 제기 이후에도 달라진 모습 없어
강청희표 ‘리부트 건강보험’, 구호 아닌 현장서 증명해야

“공단은 국민의 인간다운 삶과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강청희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취임하며 내놓은 말이다. ‘인간의 존엄’을 공단 혁신의 출발점이자 최종 지향점으로 삼고, 건강보험의 존재 이유를 다시 세우겠다며 ‘리부트 건강보험’을 선언했다.

 

좋은 말이다. 그래서 더 엄격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인간의 존엄’은 보험료를 제때 내지 못한 국민에게도 적용되고 있는가.

 

본지는 지난 7월 11일 [뉴스룸 시선]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복지기관인가, 채권추심회사인가’를 통해 경제적 어려움으로 건강보험료를 체납한 시민의 통장이 압류된 사례와 공단의 대응을 보도했다. 민원인은 보험료 납부를 거부한 것이 아니었다. “보험료를 안 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낼 형편이 안 된다”며 분할 납부 의사를 거듭 밝혔지만, 공단의 압류와 징수 절차는 계속됐다.

 

 

그러나 민원인이 공단에서 마주한 것은 회복을 돕는 사회보험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취재진이 확보한 상담 녹취에서 압류 해제 기준은 완납, 일부 납부, 일정 비율 납부 등으로 명확하지 않았고 결국 담당자의 판단이라는 취지의 설명까지 나왔다. 국민 입장에서는 무엇을 얼마나 납부해야 압류를 풀 수 있는지조차 명확히 알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문제의 본질은 공단의 보험료 징수 권한 자체가 아니다. 건강보험 재정을 유지하려면 보험료를 걷어야 하고 고의·상습 체납자에게는 엄정한 조치가 필요하다. 압류 역시 법이 허용한 체납처분 수단이다.

 

하지만 ‘할 수 있다’는 것과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다른 문제다.

 

더구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금융회사가 아니다. 채권추심회사도 아니다. 국민의 질병과 경제적 위험을 사회가 함께 부담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보험기관이다. 보험료 징수는 사회보험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 공단의 '존재 목적'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사회보험기관의 수준은 보험료를 잘 내는 국민을 상대할 때가 아니라, 보험료조차 낼 수 없을 만큼 어려워진 국민을 만났을 때 드러난다.

 

납부 능력이 있으면서 재산을 숨기는 고의 체납자와 생계가 어려워 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국민을 얼마나 정교하게 구분하는지, 압류에 앞서 분납과 상담 등 현실적인 회복의 통로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열어주는지, 국민이 자신의 상황에서 어떤 기준을 적용받는지 명확히 알 수 있도록 하는지가 사회보험 행정의 품격을 결정한다.

 

그런 점에서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은 보도 이후 공단의 태도다. 본지는 이미 구체적인 사례와 상담 녹취를 토대로 공단 행정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그런데 이후에도 해당 사안에서 민원인이 체감할 만한 해결책이나 변화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문제 제기 이전과 이후의 행정이 사실상 다르지 않다면 공단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언론 보도 한 줄에 행정기관이 무조건 결정을 뒤집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언론이 행정 위에 군림할 수도 없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국민이 겪는 불편과 제도의 허점이 드러났다면 이를 들여다보고 현행 절차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은 공공기관의 기본적인 책무다.

 

더욱이 지금 공단의 수장은 취임과 동시에 ‘인간의 존엄’을 전면에 내건 강청희 이사장이다. 강 이사장은 공단을 처음 경험하는 최고경영자도 아니다. 과거 공단 급여상임이사를 지냈다. 조직의 업무와 건강보험 제도의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위치에서 최고책임자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일선 지사의 징수 업무’ 정도로 치부하기 어렵다.

 

강 이사장은 공단을 ‘국민 중심 건강복지플랫폼’으로 발전시키겠다고 했다. 질병 치료비를 보장하는 것을 넘어 예방과 건강관리, 노후와 돌봄까지 책임지는 생애주기 건강보장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렇다면 그 거대한 청사진을 펼치기에 앞서 가장 가까운 곳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보험료를 내지 못할 만큼 어려워진 국민의 통장을 압류하면서 한편으로는 ‘인간의 존엄’을 말한다면 국민은 어느 쪽을 공단의 진짜 얼굴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국민 중심’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어려움에 처한 국민이 분할 납부와 압류 해제 기준조차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렵다면 무엇이 국민 중심인가.

 

‘리부트 건강보험’을 선언하면서 구체적인 문제 제기가 나온 뒤에도 현장에서 달라진 모습을 찾기 어렵다면 무엇을 리부트하겠다는 것인가.

 

거창한 혁신보다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국민 한 사람을 대하는 행정의 태도다. 전화 한 통의 상담, 독촉장 한 장, 압류 결정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행정 절차지만 생계가 어려운 국민에게는 일상을 흔드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재명 대통령의 최근 발언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이 대통령은 장기 연체 채무 문제를 언급하면서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다시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 당사자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도움이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금융채무 조정과 건강보험료 체납처분은 법적 성격도, 제도도 다르다. 둘을 같은 문제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 흐르는 질문은 닮아 있다.

 

국가는 경제적으로 무너진 국민을 어디까지 몰아붙여야 하는가. 그리고 공공제도는 그 사람을 끝까지 ‘채무자’와 ‘체납자’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다시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올 국민으로 바라볼 것인가. 오히려 이 질문은 금융기관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더 무겁게 다가올 수 있다. 이름 그대로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사회보험기관이기 때문이다.

 

강 이사장이 취임사에서 한 말도 결국 같은 곳을 향한다. “공단은 국민의 인간다운 삶과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제 그 문장을 취임식 단상에서 내려 현장에 세워야 한다.

 

강청희 이사장에게 묻는다. 공단이 말하는 ‘인간의 존엄’은 보험료를 정상적으로 납부하는 국민에게만 적용되는가. 삶이 어려워 보험료를 내지 못한 순간에는 압류와 징수의 대상이라는 이름으로 뒤로 밀려나는가.

 

본지가 이미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같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면 이제 일선 담당자에게만 답을 요구할 단계는 지났다. 생계형 체납자를 어떻게 구분하고 있는지, 압류에 앞서 어떤 구제 절차가 작동하는지, 분할 납부와 압류 해제 기준은 왜 국민에게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는지 최고책임자가 직접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답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겠다던 강청희의 건강보험공단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보험료를 걷는 일은 공단의 중요한 책무다. 그러나 그것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사회보험을 유지하는 수단이다. 수단이 목적을 삼키기 시작하는 순간 공단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라는 이름에서 가장 중요한 두 글자, ‘국민’을 잃게 된다.

 

강청희 이사장의 '리부트 건강보험'이 진짜 혁신이 될지, 한낱 구호에 그칠지는 거창한 청사진이 아닌 가장 취약한 국민 한 사람을 대하는 현장의 태도에서 판가름 난다.

 

취임사에서 외친 '인간의 존엄'은 바로 그 압류 통장의 문턱에서 증명되어야 한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문채형 기자 newsroom@g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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