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강매화 기자 |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 작업이 마지막 100일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예정대로 오는 12월 17일 통합 대한항공이 출범하면 국내 항공산업의 지형은 크게 바뀐다. 대한항공은 매출 기준 세계 20위권에서 단숨에 11위권으로 올라서고, 연 매출 23조원을 웃도는 ‘메가 캐리어’로 몸집을 키우게 된다.
외형 확대만 놓고 보면 통합 효과는 분명하다. 항공기와 노선, 여객 수송 능력이 동시에 커지면서 세계 초대형 항공사들과 경쟁할 체급을 갖추게 된다. 특히 화물 부문의 경쟁력 확대는 고유가와 지정학적 불확실성에 대응할 수 있는 버팀목으로 꼽힌다.
문제는 덩치가 커진 만큼 복잡해진 내부를 하나로 묶는 일이다. 서로 다른 인사·급여 체계와 조직문화, 항공기 운영 방식과 서비스 기준을 어떻게 통합할지가 남아 있다. 소비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지켜보는 마일리지 통합 방안도 아직 최종 관문을 넘지 못했다.
◇연 매출 23조원…세계 10위권 바라보는 ‘메가 캐리어’
7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2025년 실적을 단순 합산한 통합 대한항공의 연간 매출은 170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23조원을 웃돈다. 매출 기준 세계 항공사 순위로는 11위 수준으로, 10위권인 터키항공을 추격할 수 있는 규모다.
운영 항공기는 약 230대, 취항 도시는 120여곳으로 확대된다. 통합 전 약 2700만명 수준이던 연간 여객 수송 규모도 55% 이상 증가해 40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항공이 지금까지 싱가포르항공, 캐세이퍼시픽 등과 경쟁했다면 통합 이후에는 에미레이트항공이나 터키항공 등 세계적인 대형 항공사들과 직접 체급을 겨룰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셈이다.
통합의 의미는 단순한 회사 규모 확대에만 있지 않다. 국제선 네트워크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는 국내 여행객과 기업의 해외 접근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두 회사가 비슷한 시간대에 동일 노선을 운항했던 기존 구조를 조정하면 운항 시간과 요일을 다양화하고 남는 운항 자원을 신규 노선에 투입할 여지가 생긴다.
대한항공이 속한 글로벌 항공동맹 스카이팀 내 영향력 확대도 기대된다. 국제선 연결망이 촘촘해질 경우 해외 환승객을 인천으로 끌어들이는 효과까지 더해져 인천국제공항의 허브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노선 재편은 이미 시작됐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달 1일부터 인천~일본 고베 노선에 매일 1회 신규 취항했다. 기존 대형 노선에 집중됐던 공급을 세분화해 새로운 직항 수요를 발굴하려는 움직임이다.
향후 유럽과 미주 장거리 노선에서도 신규 취항지가 확대될 경우 인천공항을 중심으로 한 국제선 네트워크 역시 한층 촘촘해질 전망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통합 이후 합리적인 노선 운영과 스케줄 편성을 통해 고객 선택의 폭이 더욱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여객보다 먼저 존재감 키운 화물…FSC 세계 3위권
통합 대한항공의 또 다른 무기는 화물이다.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는 기업결합 승인 과정에서 매각됐지만 여객 노선 확대에 따라 여객기 하부 화물칸을 활용하는 ‘벨리 카고’ 공급 능력은 1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페덱스와 UPS 같은 글로벌 특송·물류기업을 제외한 대형항공사(FSC) 기준으로는 카타르항공과 에미레이트항공에 이어 세계 3위권 수준의 화물 경쟁력을 갖출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화물은 최근 대한항공 실적을 지탱하는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지정학적 충돌에 따른 유가 상승으로 글로벌 항공업계의 비용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도 대한항공은 올해 2분기 역대 2분기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특히 화물 매출은 1조541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6.1% 증가했다.
AI 산업 확대로 전 세계 데이터센터 투자가 늘면서 반도체와 배터리 등 항공운송 의존도가 높은 고부가가치 제품의 물동량이 증가한 영향이 컸다. 대형 변압기를 비롯한 중량·특수화물과 K뷰티 확산에 따른 화장품 수송 증가도 화물 실적을 뒷받침했다.
대한항공은 화물 경쟁력 확대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온라인 판매 플랫폼 ‘웹카고’를 도입하는 한편 인천국제공항과 미국 뉴욕 존 F. 케네디(JFK)공항 화물터미널 현대화를 통해 처리 능력을 높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결국 통합 이후 화물 사업은 여객 경기와 유가 변동에 따른 실적 충격을 완충하는 역할까지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
◇230대 항공기보다 어려운 ‘사람의 통합’
그러나 숫자를 합치는 것과 회사를 하나로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통합 대한항공이 넘어야 할 가장 높은 산으로는 양사의 ‘화학적 결합’이 꼽힌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오랜 기간 경쟁사로 운영되면서 인사와 급여, 승진 체계는 물론 조직문화와 업무 관행까지 상당한 차이를 갖고 있다. 특히 운항·객실 승무원처럼 직급과 근속연수, 근무체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직군에서는 통합 과정의 작은 차이도 구성원 간 형평성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
항공기 운영체계 통합도 만만치 않다. 보잉 계열 항공기 비중이 높은 대한항공과 에어버스 기종을 폭넓게 운영해 온 아시아나항공의 기단을 효율적으로 재편해야 한다. 정비체계와 운항 매뉴얼, 승무원 교육, 기내 서비스 기준까지 하나로 맞추는 작업도 뒤따라야 한다.
대한항공은 이를 위해 올해 3월부터 새로운 기업 가치 체계인 ‘KE Way’를 중심으로 내부 교육과 소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인재개발원을 시작으로 정비본부와 종합통제본부, 해외운항지원센터 등 일부 조직의 업무 공간을 통합했으며 합동 사회공헌 활동 등을 통해 양사 직원 간 접점을 늘리고 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것과 구성원들이 하나의 회사라는 인식을 갖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통합 이후 인사와 보상 과정에서 어느 한쪽이 상대적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확산될 경우 조직 갈등은 오히려 수면 위로 올라올 가능성이 있다.
◇마일리지는 아직 ‘미완’…소비자가 체감할 통합의 시험대
소비자 입장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는 마일리지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각각 운영해 온 마일리지의 가치를 어떤 기준으로 환산할지, 통합 이후 보너스 좌석을 얼마나 공급할지, 기존 고객이 보유한 마일리지의 사용 기회를 어떻게 보장할지가 핵심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마일리지 전환과 보너스 좌석 공급, 소멸 마일리지 최소화 방안 등이 충분하지 않다고 보고 대한항공이 제출한 통합안을 두 차례 보완하도록 한 상태다.
마일리지 문제는 단순한 포인트 전환 문제가 아니다. 양사 통합으로 국내 대형항공사 시장이 사실상 하나의 거대 사업자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만큼 소비자들이 기존보다 불리한 조건을 떠안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기업결합의 중요한 전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은 이제 100일 뒤 회사 이름과 시스템을 하나로 만드는 단계에 들어간다. 항공기 230대와 120여개 도시, 연간 4000만명이 넘는 승객을 품는 대형 국적항공사의 탄생 자체는 국내 항공산업에 적지 않은 변화다.
그러나 ‘세계 11위’라는 숫자가 통합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외형을 합치는 작업이 지난 몇 년간의 과제였다면 앞으로의 승부는 사람과 시스템, 그리고 소비자의 신뢰를 하나로 묶는 데 달려 있다. 통합 대한항공의 진짜 경쟁력은 12월 17일 출범일의 덩치가 아니라, 그 이후 얼마나 매끄럽게 ‘하나의 항공사’로 날아오르느냐에서 판가름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