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지킨 美 우량주 자리 내준다…‘스우시 제국’ 나이키, AI 시대에 밀렸다

  • 등록 2026.09.08 05:5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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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2021년 고점 대비 약 80% 추락…시총 2200억달러 증발
S&P 100서 나이키 빠지고 델·팔로알토·아리스타·샌디스크 진입
온라인 직판 승부수 되레 독 됐나…도매망 약화·中 부진 겹쳐
‘온·호카’ 러닝시장 약진…엘리엇 힐, 다시 제품·스포츠로 승부

지이코노미 강매화 기자 | 한때 운동화 한 켤레로 세계 소비 트렌드를 움직였던 나이키가 미국 증시를 대표하는 ‘100대 우량주’ 자리에서 내려온다. 18년 동안 지켜온 S&P 100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나이키가 비운 자리는 공교롭게도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네트워크, 사이버보안, 데이터 저장장치를 앞세운 기술기업들이 채운다.

 

 

단순한 지수 정기변경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2021년 정점을 찍은 뒤 나이키의 시가총액은 2200억달러 넘게 증발했다. 세계 스포츠 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했던 ‘스우시 제국’의 후퇴와 AI를 등에 업은 기술기업의 부상이 미국 증시 대표지수의 구성 변화에 그대로 투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18년 만에 S&P 100 퇴장…그 자리 모두 기술기업

 

S&P 다우존스 인디시즈의 분기 정기변경에 따라 나이키는 오는 21일 미국 증시 개장 전 S&P 100 지수에서 제외된다. 약 18년 만의 퇴장이다. 다만 미국 대표 500개 기업으로 구성된 S&P 500에는 계속 남는다.

 

S&P 100은 S&P 500 구성 기업 가운데 시가총액과 유동성 등을 고려해 미국을 대표하는 초대형 우량기업을 추린 지수다. 이번 개편에서는 나이키와 함께 허니웰 에어로스페이스, 사이먼 프로퍼티 그룹, 콜게이트-팜올리브가 빠진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빈자리를 차지하는 기업들이다. 델 테크놀로지스, 팔로알토 네트웍스, 아리스타 네트웍스, 샌디스크가 새로 이름을 올린다. 4곳 모두 정보기술 기업이다.

 

델은 AI 서버와 데이터센터 인프라, 아리스타는 AI 데이터센터용 네트워크 장비, 팔로알토 네트웍스는 사이버보안, 샌디스크는 데이터 저장장치에 경쟁력을 갖고 있다. 소비재와 부동산 등 전통산업 기업이 빠진 자리를 AI 시대의 인프라 기업들이 채우는 모양새다.

 

◇2810억달러→570억달러…‘스우시 프리미엄’ 무너졌다

 

나이키가 지수에서 밀려난 배경에는 급격하게 쪼그라든 기업가치가 있다.

 

나이키 주가는 지난 4일 38.40달러에 거래를 마치며 약 12년 만의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시가총액은 약 570억달러로 줄었다. 2021년 11월 고점 당시 약 2810억달러와 비교하면 2200억달러 이상이 사라진 셈이다. 고점 대비 감소폭은 약 80%에 달한다.

 

주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성장 엔진 자체가 좀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나이키의 2026회계연도 매출은 464억달러로 전년 463억달러와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다. 환율 영향을 제외하면 오히려 2% 감소했다.

 

특히 나이키가 한때 미래 성장동력으로 내세웠던 직접판매 채널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나이키 다이렉트 매출은 177억달러로 6% 감소했고, 이 가운데 디지털 매출은 12% 줄었다. 반대로 도매 매출은 275억달러로 6% 증가했다. 컨버스 매출은 12억달러로 31% 급감했다.

 

◇온라인에 베팅한 나이키…매장에서 경쟁자 키웠다

 

시장에서는 나이키가 수년간 밀어붙였던 ‘DTC(소비자 직접판매)’ 전략의 후유증을 주목한다.

 

존 도나호 전 최고경영자(CEO) 체제에서 나이키는 온라인 직접판매와 데이터 기반 마케팅을 강화했다. 자사 온라인몰과 직영점을 키우는 대신 기존 스포츠용품 유통업체와 도매 채널에 대한 의존도를 낮췄다.

 

당시에는 유통단계를 줄이고 소비자 데이터를 직접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 전환’의 모범 사례처럼 평가됐다. 하지만 나이키가 전통 유통망에서 한발 물러선 사이 매장 진열대에는 경쟁 브랜드들이 들어왔다.

 

특히 러닝 시장의 변화가 뼈아팠다.

 

‘온(On)’과 ‘호카(Hoka)’ 같은 신흥 브랜드가 기능성과 전문성을 앞세워 러닝 소비자를 빠르게 흡수했다. 나이키가 디지털 판매와 기존 인기 모델 관리에 집중하는 동안 경쟁업체들이 러닝화 시장의 빈틈을 파고들었다는 평가다.

 

결국 온라인에서 소비자를 직접 잡겠다던 전략이 오프라인 접점을 경쟁사에 내주는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중국서도 흔들…토종 브랜드까지 추격

 

세계 최대 스포츠 소비시장 가운데 하나인 중국의 부진도 나이키에는 부담이다.

 

2026회계연도 중화권 매출은 환율 영향을 제외한 기준으로 전년보다 크게 감소했다. 회사는 중국 시장의 부진을 전체 매출 감소의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했다.

 

소비 둔화뿐 아니라 경쟁 구도도 달라졌다. 과거 중국 소비자들에게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가 갖는 상징성이 컸다면 최근에는 안타스포츠와 리닝 등 현지 브랜드의 제품 경쟁력과 브랜드 인지도가 빠르게 올라오고 있다.

 

할인 경쟁과 재고 부담까지 겹치면서 나이키가 과거처럼 브랜드 이름만으로 높은 가격과 점유율을 동시에 지키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시 ‘스포츠의 나이키’로…엘리엇 힐의 역주행 승부수

 

나이키는 결국 방향을 틀었다.

 

2024년 10월 CEO에 오른 엘리엇 힐은 기존 도매 파트너와 관계를 복원하고 제품 혁신과 스포츠 중심 마케팅을 다시 강화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디지털 채널 역시 할인 판매처가 아니라 정상가격 제품과 신제품을 판매하는 플랫폼으로 재정비하고 있다.

 

과도하게 쌓인 재고를 줄이고 신제품 출시 속도를 높이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북미 러닝화 시장에서는 일부 회복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잃어버린 성장세를 단기간에 되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2026회계연도 매출 464억달러는 2024회계연도 514억달러에 여전히 크게 못 미친다.

 

나이키의 S&P 100 퇴장은 한 기업의 부진을 넘어 미국 증시의 주도권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18년 전 나이키가 S&P 100의 한 자리를 차지했을 때 시장이 높게 평가했던 것은 세계인의 소비를 움직이는 브랜드 파워였다. 이제 그 자리를 차지하는 기업들은 AI 서버와 네트워크, 사이버보안, 데이터 저장장치를 판다.

 

세계인의 발을 지배했던 기업이 빠지고 AI 시대의 데이터 흐름을 지배하는 기업들이 들어왔다. 나이키가 다시 뛰어야 할 상대는 이제 스포츠 브랜드만이 아니다.

강매화 기자 newsroom@g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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