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범 칼럼] 훈민정음, 음악으로 읽다 (10)

  • 등록 2026.09.09 11:44:44
크게보기

 

(편집자 주) 저자는 KPGA 프로로,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를 골프에 적용한 이론서 『한글골프』(2018)를 약 5년간 본지에 연재한 바 있다. 훈민정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13년 한 블로그에서 접한 어느 교수의 문제 제기였다고 한다. 『훈민정음해례본』(1446)에 담긴 음악적 원리를 풀어달라는 내용이었다. 

 

1. 혀가 오그라드는 정도(舌縮)는 상하 관계다

 

        “‘•’는 혀가 오그라들어서 소리가 가장 깊으며(深), ‘ㅡ’는 혀가 조금 오그라들어 깊지도          얕지도 않고(不深不淺), ‘ㅣ’는 혀가 오그라들지 않아서 소리가 얕다(淺).”

 

 

   『훈민정음해례본』은 기본 모음을 모양과 소리로 나누어 설명한다. 소리의 경우에는 혀가 오그라드는(舌縮) 정도에 따라 깊고 얕음, 즉 심천(深淺)으로 구분한다.

 

   「현대 언어학 관점」

 

 

   현대 음성학에서는 『해례본』의 “혀가 오그라든다(舌縮)”라는 표현을 혀의 전후 위치, 즉 전설모음과 후설모음을 구분하는 관점에서 해석해 왔다. 이에 따라 “소리의 깊고 얕음(深淺)” 역시 혀의 전후 관계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이해한다. 현대 한국어의 모음 위치도 이러한 현대 음성학의 분류 체계에 따라 설명된다.

 

   그러나 『해례본』의 설명을 그대로 따르면, 훈민정음의 모음 체계는 이러한 해석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현대 음성학의 모음 체계만으로는 하늘 오(•)의 소리와 위치는 물론, 하늘 오(•)가 여러 모음에 반복적으로 결합하는 원리까지 소리로 설명하기 어렵다.

 

   「세종대왕 관점」

   먼저, 한자 심천(深淺)의 의미부터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깊고 얕다”는 말은 어떤 기준점으로부터 수직적인 깊이 차이를 나타낸다. 그렇다면 『해례본』에서 말하는 소리의 깊고 얕음 역시 전후가 아니라 상하의 위치 관계로 해석할 수 있다. 더욱이 앞서 살펴본 자음 ‘ㅎ’의 가획 원리에서도 심천(深淺)는 소리의 상하 관계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해례본』에 혀의 오그라듦과 소리의 깊이를 직접 연결한다는 점이다. 혀가 오그라들면 혀 뒷부분의 형태와 위치가 변하면서 위쪽으로 올라간다. 따라서 『해례본』에서 말하는 “소리의 깊고 얕음”은 혀 뒷부분의 높낮이와 관련된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소리가 깊다는 것은 혀 뒷부분의 위치가 높다는 것을, 소리가 얕다는 것은 혀 뒷부분의 위치가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우물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다. 우물 바닥을 혀가 펴진 상태의 기준점으로 생각해보자. 물이 깊어질수록 바닥에서 수면의 위치는 높아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혀가 오그라들수록 혀 뒷부분은 위로 올라가고 소리는 깊어진다. 따라서 깊고 얕음(深淺)은 혀 뒷부분의 가장 낮은 지점을 기준으로 그 정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원리를 세 기본 모음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다.

   하늘 오(•)는 성대를 진동시키면서 혀 뒷부분이 가장 높이 올라간다. 이에 따라 공명 위치도 가장 높으며(深), 소리는 성대의 수직선상 위, 즉 여린입천장 아래에서 공명한다.

 

   ‘ㅡ’는 구강을 진동시키면서 혀 뒷부분이 약간 올라간다. 이에 따라 공명 위치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중간에 놓이며(不深不淺), 하늘 오(•)보다 오른쪽 아래에서 공명한다.

 

   ‘ㅣ’는 인두의 아랫부분에서 윗부분으로 소리를 진동시키면서 혀 뒷부분이 펴진다. 이에 따라 공명 위치는 가장 낮아지며(淺), ‘ㅡ’보다 다시 오른쪽 아래에서 공명한다.

 

   따라서 세 기본 모음은 소리를 진동시키는 목표 위치와 혀 뒷부분의 오그라드는 정도가 서로 다르다. 그 결과 공명 위치 역시 ‘• → ㅡ → ㅣ’의 순서로 위에서 아래로 이동하는 구조로 설명할 수 있다.

 

2. 모음 모양과 모음 소리는 다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모음 모양과 실제 모음 소리가 서로 다른 위치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모음의 모양은 소리를 진동시키는 목표 위치를 본뜬 것이다. 이때 진동시키는 목표 위치에 따라 혀 뒷부분이 오그라드는 정도가 달라진다. 이로 인해 실제 모음 소리의 공명 위치가 결정된다.

 

   예를 들어, 하늘 오(•)는 성대를 진동시키는 목표 위치를 형상화한 것이지만, 실제 소리는 여린입천장 아래에서 공명한다. 즉 모음의 모양과 혀가 오그라드는 정도는 소리를 만드는 원인이라면, 실제 모음 소리의 깊고 얕음(深淺)은 그에 따라 형성된 공명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3. 성리학에 숨겨진 발성 원리

 

      “‘•’은 하늘이 자시(子時)에 열리는(開) 것과 같고, ‘ㅡ’는 땅이 축시(丑時)에 열리는(闢) 것       과 같으며, ‘ㅣ’는 사람이 인시(寅時)에 생기는(生) 것과 같다.”

 

   「현대 언어학 관점」

   『해례본』의 자시, 축시, 인시는 일반적으로 성리학의 시간 개념으로 해석된다. 중국 『성리대전(1415)』에 수록된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에 근거하여, 하늘과 땅, 사람이 자회(子會)-축회-(丑會)-인회(寅會)의 순서로 생성되는 우주론적 개념과 연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에서는 시간의 순서가 실제 소리의 생성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세종대왕 관점」

   세종대왕은 1430년부터 1437년까지 천문·역법과 시간 측정 체계를 정비하였다. 따라서 『해례본』의 자시, 축시, 인시는 성리학적 용어인 동시에 기본 모음의 발성 위치를 암시하는 단서로도 해석해 볼 수 있다.

 

   당시 조선의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는 밤낮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천문 기구였다. 그 원반에서 북쪽은 자(子), 북동쪽은 축(丑), 동쪽은 인(寅)의 방향으로 이어진다. 이를 발성기관의 공간에 대응하면 앞서 살펴본 기본 모음의 공명 위치인 “• → ㅡ → ㅣ”의 방향과 연결된다.

 

 

   여기에 『해례본』의 표현인 개(開)-벽(闢)-생(生)을 함께 살펴보면 더욱 흥미롭다. “하늘(•)이 열린다”는 성대의 열림, “땅(ㅡ)이 열린다”는 구강의 열림, “사람(ㅣ)에서 생긴다”는 인두에서의 소리 생성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자시, 축시, 인시는 기본 모음의 위치를, 개-벽-생은 그 위치에서 이루어지는 발성의 원리를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즉, 『해례본』의 성리학적 표현은 철학적 상징에 그치지 않고 기본 모음의 발성 구조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장치였을 가능성이 있다.

 

   다음 11화에서는 초출자(ㅏ, ㅓ, ㅗ, ㅜ)의 모양과 실제 소리를 구현한다.

 

강상범 프로필 

 

성균관대학교 화학공학과 졸업

현 한글골프연구소 소장

 

저서

『한글 골프』(2018)

『궁상각치우: 훈민정음을 연주하다』(2023)

『세종대왕의 언어 척도: 음악』(2025)

『The Linguistic Scale of King Sejong』(2025)

논문

「세종대왕 관점에서 바라본 훈민정음해례본 재해석: 궁상각치우를 고려한 음악적 고찰」(2024)

 

 

 

 

 

 

 

 

 

 

 

김대진 기자 djkim9876@naver.com
Copyright @G.ECONOMY(지이코노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특별시 서초구 언남5길 8(양재동, 설빌딩) 2층 | 대표전화 : 02-417-0030 | 팩스 : 02-417-9965 지이코노미(주) G.ECONOMY / 골프가이드 | 등록번호 : 서울, 아52989 서울, 아52559 | 등록(발행)일 : 2020-04-03 | 발행인·편집인 : 강영자, 회장 : 이성용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 방제일) G.ECONOMY의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2 G.ECONOMY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olf0030@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