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인은 시장의 입이자 시민과 언론을 연결하는 창구다. 시정에 유리한 내용을 알리는 것만이 대변인의 역할은 아니다. 행정기관에 불편한 질문이 들어오면 사실관계를 확인해 설명하고, 보도가 잘못됐다면 근거를 갖고 반박하며, 답변이 어려운 사안이라면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까지가 대변인의 몫이다. 그래서 대변인의 능력은 좋은 이야기를 얼마나 잘 포장하느냐보다 불편한 질문을 어떻게 다루느냐에서 드러난다.
최근 구리시에서 벌어진 일은 이런 대변인의 역할을 다시 묻게 한다. 이도환 구리시 대변인은 공개 프로필상 보건신문과 경기신문, 데일리안, 중부일보, 프레시안 경기북부취재본부 등에서 기자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언론사의 취재 과정과 기자·데스크·발행인의 역할을 모를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 이 대변인이 본지의 비판 보도와 후속 취재 과정에서 정작 취재기자에게 직접 연락하지 않고 언론사 발행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대변인은 통화에서 본지 기자가 “과도한 요구를 많이 한다”는 취지로 설명한 뒤 “취재 기자에게 너무 과하게 하지 말아 달라고 좀 얘기 좀 해 주시면”이라고 요청했다. 통화 말미에도 “너무 과도하게 하지 말아라고 얘기 좀 해 주세요”라고 재차 말했다.
본지가 이번 일을 단순한 전화 한 통으로 보지 않는 이유다.
◇ 기자 출신 대변인은 왜 기자를 건너뛰었나
보도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면 반론하면 된다. 질문이 지나치게 많았다면 취재기자에게 연락해 중복되는 질문을 조정하거나 답변 시간을 더 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기사 내용에 오류가 있다면 정정보도를 요구하는 제도적 절차도 있다. 기자와 대변인이 취재 과정에서 부딪치고 논쟁하는 것 역시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과정이 생략됐다. 이 대변인은 취재기자에게 무엇이 과도한지 직접 설명하기보다 발행인을 찾았다. 그리고 해당 기자가 너무 과하게 하지 않도록 이야기해 달라는 취지의 요청을 했다.
이 차이는 작지 않다. 특히 이 대변인이 기자 출신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기자에게 발행인이 어떤 위치인지, 취재기자를 건너뛰어 언론사의 상급선과 접촉하는 행위가 당사자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를 충분히 알고 있을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사안을 단순히 ‘언론 대응에 익숙하지 않은 공무원의 실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언론의 구조를 몰랐다면 미숙함의 문제일 수 있지만, 알고 있었다면 판단의 문제가 된다.
◇ 기자 경력은 ‘소통의 자산’이어야 한다
기자 출신 인사가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홍보·대외협력 업무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는 적지 않다. 조직이 언론인을 영입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기자가 어떤 자료를 필요로 하는지 알고, 무엇이 기사에서 쟁점이 되는지 이해하며, 조직과 언론 사이에서 불필요한 충돌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경험을 제대로 활용하면 큰 자산이다. 비판적인 질문도 피하지 않고 질문의 취지를 정확히 파악해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잘못된 보도에는 감정이 아니라 사실과 논리로 대응할 수 있다. 언론을 경험했기에 가능한 소통이다.
그러나 언론사의 내부 구조를 잘 안다는 것이 다른 방향으로 작동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취재기자와 직접 소통하기보다 데스크나 경영진을 찾아 기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통로로 활용한다면 ‘언론을 잘 아는 대변인’이라는 경력은 오히려 논란의 이유가 된다.
물론 이 대변인이 발행인에게 전화한 목적 자체가 취재를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현재 단계에서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취재기자를 건너뛰어 발행인에게 연락했고, 그 자리에서 기자의 취재가 과도하다는 취지로 설명한 뒤 취재를 너무 과하게 하지 않도록 말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있다면 왜 그런 방식을 선택했는지 설명할 책임은 이 대변인에게 있다.
◇ “원활한 소통”이라면서 기자와는 왜 소통하지 않았나
구리시는 본지에 보낸 공식 회신에서 이 대변인이 지난 9일 지이코노미 발행인에게 연락한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후속 취재 과정에서 다수의 세부 질의가 짧은 기한 내 제시됨에 따라 취재 및 답변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원활한 소통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그렇다면 더 간단한 질문이 남는다. 원활한 소통이 목적이었다면 왜 취재기자에게 직접 연락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질문이 많았다면 기자에게 질문을 정리해 달라고 요청하면 된다. 답변 시간이 부족했다면 기한을 조정하면 되고, 중복된 질문이 있었다면 어떤 항목을 묶어 답하겠다고 협의하면 된다. 그런데 정작 기자와 이런 협의를 하지 않고 발행인에게 연락해 기자의 취재가 과도하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면 이를 단순히 ‘원활한 소통’이라고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구리시는 또 “취재 또는 보도를 중단시키거나 기사내용의 변경·삭제 등을 요구한 바 없다”고 밝혔다. 본지도 이 대변인이 기사 삭제를 직접 요구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쟁점은 ‘기사 삭제 요구가 있었느냐’가 아니라 ‘왜 발행인을 통해 기자의 취재 강도에 관한 말을 전달하려 했느냐’에 있다.
이 질문에 대한 구리시의 명확한 설명은 아직 부족하다.
◇ 39개 질문보다 중요한 것은 ‘왜 발행인이었나’다
구리시는 본지 질의가 8개 분야 39개 문항, 또 다른 질의가 7개 분야 35개 문항에 이르고 동일하거나 유사한 질문이 포함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확하고 일관된 답변을 위해 주요 쟁점별로 통합해 답변했다고도 했다.
질문이 많았고 답변에 시간이 필요했다는 설명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과 발행인 접촉의 적절성은 별개의 문제다.
39개의 질문 가운데 답할 수 있는 내용은 답하고, 중복되는 질문은 묶으면 된다. 확인이 필요한 사안은 확인 중이라고 설명하고, 공개할 수 없는 정보라면 그 이유를 밝히면 된다. 질문이 많다는 사실이 취재기자를 건너뛰어 발행인에게 연락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번 사건의 흐름을 보면 논란은 확대됐다. 최초 쟁점은 현장 공무원의 시민 응대 태도였다. 본지는 당시 공무원의 언행과 이에 대한 구리시의 판단, 사후 조치를 물었다. 그런데 그 후속 취재 과정에서 구리시의 공식 언론 창구인 대변인이 발행인에게 직접 연락하면서 이제는 대변인실의 언론 대응 방식까지 검증 대상이 됐다.
문제를 키운 것은 질문의 숫자가 아니라 대응 방식이었다.
◇ 이제 신동화 시장이 판단할 차례다
이번 사안은 더 이상 이도환 대변인 개인의 전화 한 통으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대변인은 시장과 시정의 입장을 외부에 전달하는 자리다. 때문에 대변인의 언행은 개인적인 행동을 넘어 지방정부의 언론관으로 읽힐 수 있다.
신동화 구리시장은 두 가지를 판단하면 된다. 비판적인 기사를 취재한 기자를 건너뛰고 발행인에게 직접 연락한 것이 구리시가 인정하는 언론 대응 방식인지, 또 발행인에게 해당 기자가 너무 과하게 하지 않도록 이야기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대변인의 적절한 직무 수행인지다.
적절했다고 판단한다면 그 이유를 시민과 언론에 설명하면 된다. 반대로 대변인으로서 지켜야 할 선을 넘었다고 판단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본지는 후자에 무게를 둔다.
사실관계 확인 결과 이번 접촉이 단순한 의사소통상의 실수가 아니라 취재기자를 우회해 언론사 상급선을 통해 취재 강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적절한 대응이었다고 판단된다면 신 시장은 이 대변인의 교체까지 검토해야 한다.
대변인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신뢰다. 언론이 ‘비판적인 기사를 쓰면 대변인이 기자에게 반론하는 대신 발행인부터 찾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갖기 시작하면 정상적인 공보 관계는 유지되기 어렵다. 그리고 대변인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수록 그 부담은 결국 시장과 시정 전체로 돌아간다.
시장에게 대변인은 논란을 관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대변인 때문에 시장이 새로운 논란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인사의 목적과 결과가 뒤바뀐 것이다.
◇ 이도환 대변인도 자신의 거취를 판단해야 한다
이 대변인에게도 묻고 싶다. 기자로 일했던 시절 자신이 취재하는 사안을 놓고 취재원 측 대변인이 자신에게는 연락하지 않은 채 소속 언론사 발행인을 찾아가 “그 기자가 너무 과하게 하지 않도록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겠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이번 사안을 판단하는 가장 간단한 기준일 수 있다.
이 대변인이 자신의 행동이 적절했다고 생각한다면 왜 기자가 아니라 발행인에게 연락했는지, ‘너무 과하게 하지 말라’는 요청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했는지 설명하면 된다. 반대로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면 이를 인정하고 책임지는 것이 공직자의 자세다.
특히 자신의 대응 때문에 신동화 시장과 구리시 전체의 언론관까지 의심받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스스로 거취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대변인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시장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자리가 아니라 자신의 판단과 행동으로 시장과 조직의 신뢰를 지켜야 하는 자리다. 그 역할을 더 이상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면 스스로 사표를 내는 것 역시 책임지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 기자였기에 책임은 더 무겁다
이번 사안이 더욱 씁쓸한 것은 이 대변인이 기자 출신이라는 점이다. 기자는 권력을 감시하고 대변인은 권력을 설명한다. 자리는 달라졌지만 사실과 질문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취재 현장을 경험한 사람이기에 책임은 더 무겁다. 취재권과 편집권이 얼마나 민감한 영역인지 알고 있고 기자와 데스크, 발행인의 관계 역시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은 기자와 더 잘 소통하기 위해 사용돼야 한다. 취재기자를 우회하는 데 사용됐다는 의심을 받는 순간 ‘기자 출신’이라는 이력은 장점이 아니라 더 큰 설명 책임으로 돌아온다.
신 시장도 이 문제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이번 일은 기자 한 명과 대변인 한 명의 감정싸움이 아니다. 시민의 질문에 공무원이 어떤 자세로 답해야 하는지, 지방정부가 자신에게 불편한 언론 보도를 어떤 방식으로 상대할 것인지, 그리고 시장을 대신해 언론과 소통하는 대변인에게 어디까지 책임을 물을 것인지에 관한 문제다.
구리시는 공식 회신에서 “언론의 정당한 취재와 비판·문제 제기를 존중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그 원칙을 행동으로 증명하면 된다. 질문이 불편하면 답하고, 보도가 틀렸다면 근거를 갖고 반박하면 된다. 그리고 공직자가 그 과정에서 지켜야 할 선을 넘었다면 그에 맞는 책임을 물으면 된다.
기자를 건너뛰고 발행인을 찾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
신동화 시장이 이번 사안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한 명의 대변인 거취를 넘어 구리시가 말하는 ‘소통’이 실제 행정의 원칙인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구호인지를 보여주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