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정길종 기자 |기독교대한감리회 원로목회자인 임마누엘교회 김국도 원로목사가 지난 9일 밤 향년 82세로 소천했다.
평생 복음 전파와 선교, 교회 부흥에 헌신해온 고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감리교계를 비롯한 한국교회 안팎에서는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고인은 1944년 7월 평안남도 양덕군에서 故 김상혁 전도사와 故 이숙녀 전도사 사이에서 4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독실한 신앙의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깊은 신앙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특히 어머니인 故 이숙녀 전도사는 “아들을 주시면 목회자로 바치겠다”는 기도를 드렸고, 실제로 형제 모두가 목회의 길을 걷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목사는 해병대 복무 이후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체험하는 신앙적 전환점을 맞았고, 이후 본격적으로 목회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평소 가난한 이웃을 위해 헌신했던 하천풍언 선생의 삶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이를 목회의 중요한 가치로 삼았다.
고인은 1970년대 초 성남 광주단지에서 성남제일교회를 개척하며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했다. 극심한 가난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성도들을 돌보며 목회를 이어갔고, 이후 잠실 지역으로 사역지를 옮겨 강남제일교회(현 임마누엘교회)를 개척했다.
임마누엘교회는 처음 4평 남짓한 천막에서 출발했다. 김 목사는 어려운 환경과 수많은 시련 속에서도 기도로 교회를 일궈냈고, 이후 현재 약 4400평 규모의 교회로 성장시키며 한국 감리교계를 대표하는 목회자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그는 “오늘은 강남, 내일은 한국, 모레는 세계”라는 선교 표어 아래 국내외 선교에 헌신했다. 이를 바탕으로 해외 100여 개 지교회를 세우고 군선교를 통해 28개 교회 건축에도 힘쓴 것으로 전해졌다.
생전 김 목사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1973년 성남 광주단지 개척 당시를 자주 언급했다. 생활고로 자녀들이 영양실조를 겪고 끼니조차 해결하기 어려웠던 시절에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견뎌냈다고 간증해왔다.
고인이 평생 마음에 품고 목회했던 대표 성경 구절로는 디모데전서 2장 4절과 빌립보서 1장 6절, 빌립보서 2장 13절 등이 꼽힌다. 교계 인사들은 이 말씀들이 고인의 목회 철학과 삶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편 고인의 입관예배는 12일 오전 임마누엘교회 지하체육관에서 엄수됐다. 예배에는 수많은 성도와 교계 인사들이 참석해 유가족을 위로하고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이날 예배에서는 안복기 목사가 말씀을 전했고, 박헌덕 원로장로가 기도를 맡았다. 고인의 손녀 김혜명 양은 조가를 부르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고, 축도는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김정석 목사가 맡았다.
교계 관계자들은 “김국도 목사는 평생 복음과 기도, 선교의 길을 걸어온 목회자였다”며 “한국 감리교와 교회 부흥 역사 속에 남긴 헌신과 신앙의 유산은 오래 기억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김국도 원로목사의 소천은 단순히 한 원로 목회자의 별세를 넘어, 한국교회 성장기와 함께했던 한 세대 목회의 퇴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성남 광주단지 개척 시절의 극심한 가난과 천막교회에서 시작된 목회는 한국 산업화 과정 속 도시 빈민과 함께 성장했던 초기 교회사의 단면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이는 오늘날 대형교회 중심 이미지와는 다른, 한국교회 성장기의 원형적 목회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또한 “오늘은 강남, 내일은 한국, 모레는 세계”라는 선교 비전은 단순한 교세 확장이 아니라, 당시 한국교회가 세계선교를 국가적·교단적 사명으로 인식하던 시대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해외 지교회 설립과 군선교 활동 역시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고인의 삶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기도’와 ‘개척’은 한국 감리교 부흥세대 목회자들의 공통된 특징이기도 합니다. 교계가 이번 별세를 깊이 추모하는 이유 역시 단순한 교회 규모 때문이 아니라, 한 시대를 통과하며 형성된 신앙적 상징성과 헌신의 기억 때문으로 해석된다.
결국 김국도 목사의 삶은 한국교회 부흥기의 역사와 맞닿아 있으며, 이번 소천은 그 시대를 기억하는 교계에 하나의 세대적 전환점으로 남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