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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홀 차 열세 뒤집은 연장 역전극' 방신실, ‘18번째 사인볼’의 주인공이 되다

두산 매치플레이가 또 하나의 ‘매치 퀸’을 만들었다

지이코노미 방제일 기자 | 스트로크플레이가 나흘 동안 자신과 싸우는 경기라면, 매치플레이는 눈앞의 상대와 매 홀 승부를 벌이는 심리전이다. 점수판의 숫자는 단순해진다. 이기거나, 비기거나, 지거나. 그러나 그 안에서 선수의 표정, 호흡, 선택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매치플레이 우승자는 단순히 샷이 좋은 선수가 아니라, 흔들리는 순간에도 무너지지 않는 선수다.

 

방신실이 바로 그 무대에서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방신실은 17일 강원도 춘천 라데나 골프클럽 네이처·가든 코스에서 열린 KLPGA 투어 ‘제18회 두산 매치플레이’ 결승에서 최은우를 상대로 연장 승부 끝에 승리했다. 총상금 10억 원, 우승상금 2억5000만 원이 걸린 이 대회에서 방신실은 시즌 첫 승이자 통산 6승째를 거두며 개인 첫 ‘매치 퀸’에 올랐다. KLPGA 공식 기록에 따르면 올해 대회는 64명이 출전해 7라운드 매치플레이 방식으로 치러졌고, 방신실은 18번째 우승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번 우승이 더 극적이었던 이유는 결승의 흐름 때문이다. 방신실은 결승 중반까지 최은우에게 끌려갔다. 전반 9개 홀까지 팽팽했던 승부는 11번홀과 12번홀에서 방신실이 연속 보기를 범하며 최은우 쪽으로 기울었다. 14번홀에서 최은우가 버디를 잡자 격차는 3홀 차까지 벌어졌다. 일반적인 스트로크플레이였다면 남은 홀이 적어도 만회할 기회가 더 있었겠지만, 매치플레이에서 ‘3홀 차’는 심리적으로 훨씬 크게 다가온다. 상대가 실수하지 않으면, 추격자는 매 홀 이겨야 한다.

 

그때부터 방신실의 골프가 달라졌다. 15번홀 파4에서 약 7m 버디 퍼트를 집어넣으며 추격의 불씨를 살렸다. 이어 17번홀에서 최은우의 보기가 나오며 격차는 1홀로 줄었다. 마지막 18번홀. 최은우의 파 퍼트가 홀을 외면했고, 방신실은 파를 지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14번홀까지 3홀 차 열세였던 경기가 마지막 홀에서 동률이 된 순간, 라데나의 공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연장도 18번홀 파5에서 이어졌다. 방신실은 약 3m 버디 퍼트를 놓쳤지만, 파를 확보할 수 있는 흐름을 만들었다. 반면 최은우는 3.3m 파 퍼트를 놓치며 보기로 홀아웃했다. 방신실의 대역전극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경기 후 방신실은 “3홀 차로 밀렸을 때는 마음을 내려놓고 하늘에 결과를 맡기겠다는 생각으로 임했다”며 “간절히 원하던 시즌 첫 승을 해 감사하다”고 말했다.

 

두산 매치플레이는 KLPGA 투어에서 보기 드문, 사실상 유일한 매치플레이 성격의 정규투어 대회다. 보통 투어 대회는 3~4라운드 스트로크플레이로 진행된다. 모든 선수가 같은 코스를 돌고, 최종 합계 타수가 가장 낮은 선수가 우승한다. 반면 두산 매치플레이는 다르다. 64명의 선수가 16개 조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치르고, 각 조 1위가 16강 토너먼트에 오른다. 이후 16강, 8강, 4강, 결승까지 한 명씩 상대를 꺾어야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 올해도 조별리그 3경기, 16강, 8강, 준결승, 결승까지 이어지는 7라운드 매치플레이 구조로 진행됐다. 

이 방식은 강자에게도 결코 쉽지 않다. 스트로크플레이에서는 한 홀의 실수를 남은 홀에서 만회할 수 있지만, 매치플레이에서는 한 홀의 실수가 곧바로 ‘패한 홀’이 된다. 반대로 더블보기 위기에서도 상대가 더 크게 흔들리면 홀을 따낼 수 있다. 그래서 매치플레이는 스코어보다 흐름, 기록보다 기세, 기술보다 멘털의 비중이 크다. ‘누가 더 잘 쳤느냐’ 못지않게 ‘누가 더 끝까지 버텼느냐’가 승부를 가른다.

 

방신실에게 이번 우승은 약점을 지운 우승이기도 했다. 2023년 KLPGA 투어에 데뷔한 그는 장타력과 공격적인 플레이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지만, 두산 매치플레이에서는 그동안 조별리그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조별리그 3전 전승으로 4조 1위에 오른 뒤, 16강에서 신다인과 연장 접전 끝에 승리했다. 8강에서는 서교림을 2홀 차로 꺾었고, 준결승에서는 홍진영을 넘었다. 그리고 결승에서 최은우를 상대로 가장 어려운 방식의 승리, 즉 뒤집기 승리를 완성했다.

 

두산 매치플레이의 또 다른 매력은 ‘계보’다. 이 대회 우승자 명단은 KLPGA의 한 시대를 압축한다. 2008년 초대 챔피언 김보경을 시작으로 2009년 유소연, 2010년 이정민, 2011년 양수진, 2012년 김자영2, 2013년 장하나, 2014년 윤슬아, 2015년 전인지, 2016년 박성현, 2017년 김자영2, 2018년 박인비, 2019년 김지현이 정상에 올랐다. 2021년 박민지, 2022년 홍정민, 2023년 성유진, 2024년 박현경, 2025년 이예원에 이어 2026년 방신실이 그 뒤를 이었다. 김자영2는 현재까지 이 대회에서 두 차례 우승한 대표적인 다승 챔피언으로 남아 있다. 

라데나 골프클럽 클럽하우스 2층에는 이 대회의 역사가 또 다른 방식으로 남아 있다. 우승 트로피와 함께 역대 우승자들의 사인볼과 클럽이 전시돼 있다. 매년 새로운 챔피언이 탄생할 때마다 그 공간에는 또 하나의 사인볼이 더해진다. 올해 그 18번째 사인볼의 주인공은 방신실이다.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매치플레이라는 특수한 전장에서 살아남은 선수만이 남길 수 있는 증표다. 

 

최은우에게는 아쉬운 결승이었다. 준결승에서 박결을 꺾고 개인 첫 결승 무대에 오른 그는 14번홀까지 3홀 차 리드를 잡으며 우승에 가까이 다가섰다. 그러나 17번홀과 18번홀에서 연속 보기를 범했고, 연장 첫 홀에서도 파 퍼트를 놓치며 우승 문턱에서 멈췄다. 매치플레이가 얼마나 잔혹한 형식인지 보여준 장면이기도 했다. 거의 다 이긴 경기처럼 보였지만, 마지막 한 홀의 균열이 승부 전체를 바꿨다.

 

3·4위전에서는 홍진영이 박결을 1타 차로 제치고 3위 상금 9000만 원을 가져갔다. 방신실은 우승상금 2억5000만 원, 최은우는 준우승상금 1억3500만 원을 받았다. 하지만 이 대회에서 상금만큼 중요한 것은 이름이다. 두산 매치플레이 우승자는 한 시즌의 우승자 중에서도 조금 다른 표식을 얻는다. ‘그 주에 가장 낮은 타수를 친 선수’가 아니라, ‘만나는 상대를 모두 꺾은 선수’라는 타이틀이다.

 

방신실의 이번 우승은 그의 장타 이미지에 새로운 문장을 덧붙였다. 그는 멀리 치는 선수에서, 끝까지 버티는 선수로 진화했다. 3홀 차 열세에서도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고, 상대의 흔들림을 기다리며 자신의 파를 지켰다. 매치플레이에서 가장 강한 무기는 화려한 버디 쇼가 아니라, 상대가 흔들릴 때 끝내 무너지지 않는 침착함일 때가 있다.

 

라데나의 18번홀에서 방신실은 그 사실을 증명했다. 그리고 두산 매치플레이는 또 한 번 자신이 왜 KLPGA 투어에서 가장 특별한 대회 중 하나인지 보여줬다. 한 홀, 한 홀마다 승부가 뒤집히고, 마지막 퍼트 하나가 선수의 계절을 바꾼다. 올해 그 계절의 이름은 방신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