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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 장갑의 사나이 '애런 라이' 107년 침묵 깬 잉글랜드 골퍼의 아주 조용한 우승

지이코노미 방제일 기자 | 골프 장비에서 손에 끼는 장갑은 늘 아주 중요하지만, 늘 조연이었다. 스윙을 돕는 장비, 그립을 보조하는 소모품, 라운드가 끝나면 가방 한쪽에 구겨 넣는 물건. 하지만 애런 라이에게 장갑은 조금 다르다. 두 손을 감싼 흰 장갑은 그의 어린 시절이고, 아버지의 희생이며,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한 의식이다. 그리고 이제는 역사를 써내려간 한 선수의 상징이 됐다. 바로 애런 라이의 이야기다.

 

골프는 유난히 손의 감각에 예민한 스포츠다. 손끝에서 그립이 살아나고, 손바닥의 압력 하나가 페이스의 각도를 바꾸며, 임팩트 순간의 미세한 떨림이 공의 출발 방향을 결정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선수는 한쪽 손에만 장갑을 낀다. 오른손잡이 골퍼라면 왼손 장갑 하나. 그것이 오랫동안 투어의 표준처럼 여겨졌다.

 

모두가 한쪽 손에만 장갑을 낄 때 애런 라이는 달랐다. 그는 양손에 장갑을 낀다. 드라이버를 잡을 때도, 아이언을 휘두를 때도, 웨지를 컨트롤할 때도 두 손은 모두 흰 장갑 안에 있다. 국내 골프장에서는 여성 주말골퍼나 겨울 라운드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세계 최정상 무대의 남자 프로골퍼에게서는 흔치 않은 장면이다.

 

그 독특한 습관 때문에 그는 오래전부터 ‘두 장갑의 골퍼’로 불렸다. 그리고 이 양손 장갑을 낀 골퍼가 새로운 역사를 썼다. 라이는 5월 1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뉴타운 스퀘어의 애러니밍크 골프클럽에서 끝난 2026 PGA 챔피언십에서 최종 합계 9언더파 271타로 우승했다. 최종 라운드에서 5언더파 65타를 몰아친 그는 존 람과 알렉스 스몰리를 3타 차로 따돌렸다.

 

잉글랜드 선수가 PGA 챔피언십을 제패한 것은 1919년 짐 반스 이후 107년 만이다.  우승의 장면은 화려했지만, 라이의 골프는 시종 조용했다. 거대한 세리머니도, 과장된 몸짓도 없었다. 그는 양손 장갑을 낀 채 클럽을 쥐었고, 매 샷을 계산했으며, 버텼고, 끝내 무너뜨렸다. 실수도 있었다.

 

하지만 9번 홀 파5에서 긴 이글 퍼트를 집어넣으며 흐름을 바꿨다. 후반에는 11번, 13번, 16번 홀에서 버디를 보탰고, 17번 홀 파3에서는 약 68피트 거리의 장거리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며 사실상 우승에 쐐기를 박았다. 이날 애러니밍크의 그린 위에서 가장 크게 빛난 것은 라이의 퍼터였지만, 카메라가 자꾸 붙잡은 것은 그의 손이었다. 정확히는 양손의 장갑이었다.

 

라이는 어린 시절부터 두 손에 장갑을 끼고 골프를 쳤다. 잉글랜드 울버햄프턴의 넉넉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그는 8세 무렵 제조사로부터 장갑 한 켤레를 선물받은 뒤 양손 장갑에 익숙해졌다. 한 번은 아버지가 골프백에 한쪽 장갑만 챙긴 적이 있었는데, 그는 왼손 장갑만 끼고는 도무지 그립 감각을 찾지 못했다고 회상해왔다. 이후 두 장갑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몸에 밴 리듬이 됐다.

 

프로 골프에서 습관은 때로 기술보다 단단하다. 어떤 선수는 티를 꽂는 높이를 집착하고, 어떤 선수는 볼 마킹의 방향을 고집한다. 라이에게 그것은 양손 장갑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낯선 장면이지만, 그에게는 가장 익숙한 출발점이다. 양손의 감각을 균일하게 만들고, 그립에 대한 확신을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지탱해온 루틴이다.

 

여기에 라이는 아이언 커버를 씌우고 다니는 선수로도 유명하다. 프로골퍼들 사이에서 아이언 커버는 거의 농담의 소재처럼 취급된다. 투어 선수들은 클럽을 자주 교체하고, 용품사의 지원을 받으며, 장비는 경기력의 도구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라이는 여전히 아이언 하나하나에 커버를 씌운다.

 

그 이유 역시 아버지에게 닿아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아들에게 장비와 훈련비를 지원했다. 일곱 살 때 사준 타이틀리스트 아이언 세트는 단순한 클럽이 아니었다. 가족의 희생이 담긴 물건이었다. 아버지는 연습이 끝난 뒤 클럽을 솔로 닦고, 기름을 바르고, 커버를 씌워 보관했다. 라이는 지금도 그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아이언 커버를 사용한다고 말해왔다.

 

그래서 그의 양손 장갑과 아이언 커버는 기행이 아니다. 그것은 출신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투어의 화려함 속에서도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잊지 않으려는 태도다. 메이저 우승 트로피를 든 순간에도 라이는 ‘스타’라기보다 ‘자기 루틴을 끝까지 지킨 사람’에 가까웠다.

이번 우승이 더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라이의 골프에는 현대 투어가 요구하는 압도적 장타나 폭발적인 스타성이 먼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정교함, 인내, 절제, 반복이 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연습하고, 작은 습관을 버리지 않고, 하루하루 쌓아올린 선수의 시간이 있다.

 

동료들의 반응도 그래서 유난히 따뜻했다. 로리 맥길로이는 “이 골프장 안에서 라이의 우승을 싫어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라는 취지로 축하했다. 잰더 쇼플리 역시 라이의 성실함과 훈련 태도를 높이 평가하며, 메이저 챔피언이 되는 데 필요한 보이지 않는 노력을 언급했다. 라이의 우승은 단순한 이변이 아니라, 투어 안에서 오래 존중받아온 인물이 마침내 받은 응답처럼 받아들여졌다.

우승 뒤 라이는 골프가 겸손과 규율, 그리고 엄청난 노력을 가르쳐주는 스포츠라고 말했다. 그 말은 그의 손을 보면 더 선명해진다.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클럽을 잡았지만, 결국 가장 오래된 골프의 가치에 닿은 선수.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선수. 이제 그의 두 장갑은 이제 단순한 별명이 아니라, 한 골퍼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쥐고 정상에 오른 증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