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홍콩 상공에 내려앉기 시작했을 때, 창밖에는 빼곡한 빌딩 숲과 흐린 바다가 함께 보였다. 도시라기보다는 거대한 야경이 낮에도 살아 숨 쉬는 느낌이었다. 처음 홍콩에 도착한 사람은 누구나 공기의 밀도를 기억하게 된다. 습기 어린 바람, 빠른 걸음의 사람들, 네온사인이 아직 켜지지 않았는데도 이미 반짝이는 거리.



홍콩은 이상한 도시다. 좁고 복잡한데 묘하게 낭만적이다. 낡은 간판 아래로 최신 금융 빌딩이 솟아 있고, 트램은 느리게 지나가는데 사람들의 하루는 누구보다 빠르게 흘러간다. 도시 전체가 오래된 영화 세트장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센트럴 거리를 걷던 저녁이었다. 고층 빌딩 유리창에는 노을빛이 번지고, 골목 안 작은 식당에서는 광둥어가 음악처럼 흘러나왔다. 어디선가 새어나오는 완탕면 냄새와 젖은 아스팔트의 냄새가 뒤섞였다. 홍콩은 시각보다 후각과 소리로 먼저 기억되는 도시였다.


트램 2층 맨 앞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을 좋아했다. 느리게 흔들리는 창문 너머로 사람들의 표정이 지나가고, 오래된 아파트 베란다에는 빨래가 바람에 흔들렸다. 화려한 도시라고만 생각했던 홍콩에는 예상보다 생활의 체온이 많았다. 작은 찻집에서 신문을 읽는 노인들, 시장에서 흥정하는 사람들, 퇴근길에 이어폰을 낀 젊은이들. 여행자는 결국 랜드마크보다 그런 장면들을 오래 기억하게 된다.


밤이 되면 홍콩은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빅토리아 하버의 불빛은 물 위에 부서지고, 높은 빌딩들은 마치 서로 경쟁하듯 빛을 밝힌다. 하지만 그 화려함 속에서도 이상하게 외로운 순간이 있다. 혼자 야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 도시가 가진 고독까지 함께 보이는 듯했다. 그래서 홍콩의 밤은 아름답지만 조금 쓸쓸하다.
어느 날은 비가 내렸다. 침사추이 거리를 우산 하나 들고 걸었다. 네온사인이 젖은 도로 위에 번져 마치 수채화처럼 흔들렸다. 그 순간 문득 오래전 홍콩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었다. 빠르게 스쳐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잠시 멈춰 서 있는 기분. 여행은 어쩌면 그런 순간 하나를 만나기 위해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홍콩은 완벽하게 정돈된 도시가 아니다. 좁고, 시끄럽고, 때로는 숨이 찰 만큼 복잡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다시 생각난다. 아마 이 도시에는 사람의 감정을 흔드는 어떤 습도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이 끝난 뒤에도 기억에 남는 것은 야경보다 골목이었다. 화려한 전망대보다 늦은 밤 켜져 있던 작은 국숫집의 불빛이었다. 그리고 그 빛 아래를 천천히 걷던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김용길 여행작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하고 대기업 홍보실을 거쳐 중앙일간지에서 카피라이터로 활동했다. 이후 편집회사 헤드컴을 운영하며 공공기관과 기업체 사보 등 수천 권을 제작했다. 현재는 광화문스토리란 닉네임으로 세계 여행기를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는 강원도 문화유적 여행 가이드북, 강원도 관광 권역별 가이드북 발간, 평창동계올림픽 화보집 편찬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