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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고려인마을, 폭탄 반입·항일무장투쟁 이끈 ‘김정하 선생’ 재조명

- 연해주·만주·상하이·모스크바 오가며 비밀 연락망과 청년교육까지
- 1938년 스탈린 대숙청으로 순국…2008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지이코노미 김정훈 기자 | 폭탄을 국내로 반입하고 일본군과 친일 세력의 동향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전달한 비밀 연락원. 항일무장투쟁을 이끈 사령관이자 독립운동의 다음 세대를 길러낸 교육자. 연해주와 만주, 상하이, 모스크바를 오가며 독립운동의 여러 전선을 지킨 김정하 선생의 삶이 다시 조명된다.

 

‘역사마을 1번지’ 전남광주 고려인마을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고려신문과 함께 추진하는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 및 지원사업’의 스물일곱 번째 인물로 독립운동가 김정하(金鼎夏·1897~1938) 선생을 선정했다고 20일 밝혔다.

 

함경남도 이원에서 태어난 김 선생은 김정하(金正夏), 김정하(金政夏), 이성범(李成範) 등 여러 이름을 사용하며 일제의 감시를 피해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그의 활동 무대는 연해주와 만주를 거쳐 상하이와 모스크바까지 뻗었다. 무장투쟁과 정보수집, 조직 운영, 자금 모집, 청년교육을 넘나든 행적은 독립운동에 바친 그의 넓은 보폭을 보여준다.

 

국가보훈부 공훈록에 따르면 김 선생은 1920년 9월 연해주 포조에서 폭탄 6개를 함경북도 청진으로 반입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해 11월부터는 일본군과 친일 세력의 움직임을 수집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전달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공채 모집에도 참여했다. 국내외 항일 세력을 잇는 비밀 연락망의 핵심 역할을 맡은 것이다.

 

활동 무대는 항일운동 조직의 중심부로 넓어졌다. 1923년 상하이에서 열린 국민대표회의에 상해파 고려공산청년회 대표로 참가해 창조파 위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고려혁명군 제3대 사령관을 맡아 항일무장투쟁을 이끌었으며, 단지동맹암살대 대장과 대한통의부 군정위원 등 독립운동 조직의 핵심 직책도 두루 거쳤다.

 

총과 폭탄에만 머문 투쟁은 아니었다. 김 선생은 1924년 간도지역 중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별동선전대 ‘세우단’의 집행간부를 맡아 청년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대동회 모연대에서는 간도와 북선 지역을 무대로 독립운동 자금을 모았다.

 

이듬해에는 연해주 니콜리스크에서 적기단 극동청년공산당 연락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 세력 간 협력체계 구축에도 힘을 보탰다.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을 졸업한 뒤 1929년 서울에서 조선공산당조직준비위원회 결성에 참여하는 등 국내 조직 활동에도 발을 디뎠다.

 

독립운동의 경험은 후학 양성으로도 이어졌다. 김 선생은 1932년부터 1934년까지 모스크바 공산대학 조선민족부 교관으로 재직하며 청년교육과 민족의식 고취에 힘을 쏟았다. 폭탄 반입 임무에서 무장조직 지휘와 비밀 연락, 교육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활동 무대에 따라 투쟁의 영역을 넓혀갔다.

 

그러나 일제에 맞서 이어온 삶은 스탈린 정권의 고려인 탄압으로 멈췄다. 소련 전역에서 고려인 강제이주와 대숙청이 시작된 1937년 8월 체포됐고, 이듬해 1월 18일 총살됐다.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한 채 타국에서 생을 마감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김 선생의 공훈을 인정해 200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순국한 지 88년이 흘렀지만 묘소의 정확한 위치와 직계 후손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광주 고려인마을과 고려신문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국내외에 흩어진 고려인 독립운동가의 후손과 관련 자료를 찾고 있다. 발굴된 자료를 토대로 독립유공자의 공적을 재조명하고, 역사 속에 묻힌 후손을 찾아 지원하는 작업도 함께 이어간다.

 

고려인마을 관계자는 “김정하 선생은 폭탄 반입과 정보수집, 무장투쟁, 조직 운영, 청년교육에 이르기까지 독립운동의 여러 분야에서 헌신한 지도자였다”며 “앞으로도 고려신문과 협력해 연해주와 중앙아시아에서 활동한 고려인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후손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잊혀진 역사를 국민에게 널리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