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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범 칼럼] 훈민정음, 음악으로 읽다 (7)

 

(편집자 주) 저자는 KPGA 프로로,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를 골프에 적용한 이론서 『한글골프』(2018)를 약 5년간 본지에 연재한 바 있다. 훈민정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13년 한 블로그에서 접한 어느 교수의 문제 제기였다고 한다. 『훈민정음해례본』(1446)에 담긴 음악적 원리를 풀어달라는 내용이었다. 

 

 

1. 조음 방식이 다르다!

 

   “상감(세종)께서 우리나라 음운(音韻)이 중국어(華語)와 비록 다르나 그 아설순치후(牙舌     脣齒喉), 소리의 청탁(淸濁), 성조(聲調)가 중국어와 마찬가지로 다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고 하셨다.”

 

  이 구절은 신숙주의 『보한재집』에 실린 내용이다. 여기에서 세종대왕은 우리나라의 음운 체계가 중국어와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또한 중국어의 음운 개념을 갖추라고 한 것이지, 중국의 음운 체계를 그대로 따르라 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중국어와 훈민정음의 청탁(淸濁)을 비교하면 차이가 더욱 분명해진다. 중국어에서 청탁은 성조(聲調)이지만, 『훈민정음해례본』에서는 청탁을 자음의 조음 방식으로 설명하며, 성조는 방점(傍點)으로 따로 구분하였다. 즉 훈민정음에서 청탁은 성조와 독립된 개념으로 제시된다.

 

  반면 현대 언어학에서는 자음의 변별적 특징을 주로 성대의 울림(voicing)과 기식(aspiration)의 유무와 정도로 설명한다. 하지만 『훈민정음해례본』에는 자음을 성대의 울림이나 기식의 세기로 구분한다는 직접적인 설명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해례본의 설명을 따르면, 성대의 울림은 모음에, 기식의 세기는 방점에 더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훈민정음의 청탁은 단순한 이분법적 구분이라기보다 연속적인 조음의 변화를 나타낸다. 이러한 점은 청탁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중국 음운론이나 현대 언어학의 변별 체계와는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따라서 『훈민정음해례본』을 현대 언어학이나 중국 음운론의 개념을 그대로 적용하기보다, 훈민정음이 제시하는 독자적인 음운 체계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훈민정음해례본』에는 현대 언어학에서 사용하는 조음 방식인 마찰음, 파찰음, 파열음, 유음, 비음 등으로 분류하지 않았다. 단지 소리의 청탁으로 조음 방식을 모두 설명하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2. 엉길 응(凝) 한자의 재해석!

 

   “전청(全淸)을 나란히 쓰면 전탁(全濁)이 되는 것은 전청의 소리가 엉기면(凝) 전탁이 되       기  때문이다.”

 

  『훈민정음해례본』에서 청한 소리가 탁한 소리로 전이되는 조음 방식을 “엉길 응(凝)”이라는 한자로 설명하고 있다. “응(凝)”은 본래 서로 달라붙거나 단단히 접촉한 상태를 뜻한다. 따라서 소리를 조율하는 기관이 혀라는 점을 고려하면, 청탁은 혀가 조음위치에 더 밀착되고 단단히 눌리면서 나타나는 조음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소리가 엉긴다는 말은 혀가 조음위치에 강하게 밀착되어 나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불청불탁(不淸不濁)​은 청탁의 정도를 나타내는 개념이라기보다, 기본적인 조음위치를 나타낸 글자로만 이해할 수 있다. 이 경우 혀는 조음위치에 닿아 있을 뿐, 강하게 밀착되거나 접촉한 상태는 아니다.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훈민정음의 청탁은 혀가 조음위치에 밀착되는 정도에 따른 연속적인 조음 특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현대 언어학에서 자음의 변별적 특징으로 설명하는 성대의 울림이나 기식의 유무와는 다른 관점에서 청탁을 설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3. 갈려(厲) 한자의 재해석!

 

   “정음(正音)을 만들면서 그 모양을 본뜨되 소리의 려(厲)에 따라 획을 더했네.”

 

 

「현대 언어학 관점」

  현대 한국어에서는 ‘갈려(厲)’ 한자를 주로 “소리의 세기”로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은 현대 언어학에서 거센소리를 기식(호흡)의 세기로 설명하는 관점과 연결된다. 그러나 소리의 세기만으로는 『훈민정음해례본』이 설명하는 가획(加劃)의 원리를 설명할 수 없다.

 

「세종대왕 관점」

  『훈민정음해례본』은 기본 자음뿐만 아니라, 획이 더해진 자음 역시 모두 발성기관의 모양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자음은 입술소리를 제외하면 모두 혀의 모양을 본뜬 것이므로, ‘ㄱ’에서 ‘ㅋ’, ‘ㄷ’에서 ‘ㅌ’ 등으로 획이 더해지는 변화도 혀의 형태와 움직임을 나타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가획이 자음마다 서로 다른 위치에 더해진다는 점은 혀가 움직이거나 힘을 주는 부위가 서로 다름을 시사한다.

 

  또한 『훈민정음해례본』은 소리의 “려(厲)”에 따라 획을 더한다고 하였는데, 한자 려(厲)는 “갈다”, “문지르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를 조음 방식에 적용하면, 혀가 조음위치를 더욱 강하게 누르거나 밀착시키면서 위로 움직이는 상태를 나타낸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때 입안의 부피가 점차 줄어들고, 그에 따라 음향적 특성, 청탁이 변화하게 된다.

 

  따라서 가획의 원리는 단순히 소리의 세기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혀의 움직임에 따른 입안의 부피 변화를 고려한 음색 차이에 기반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원리는 황종율관을 제작할 때 관의 길이와 더불어 관의 부피를 함께 고려하여 음을 조율하는 방식과도 유사하다. 또한 거문고에서 현의 굵기를 달리하여 음색을 변화시키는 원리와도 상통한다.

 

  훈민정음의 가획 원리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악보의 음표(note) 체계에서 찾을 수 있다. 정간보는 부수(附手)를 더하여 옥타브의 높낮이를 구분하고, 정간(井間)의 수에 따라 음의 길이를 달리 표기한다. 서양 오선보 역시 동일한 음계 내에서 음표에 추가되는 획, 즉 줄기와 꼬리의 수를 통해 음의 길이를 구분한다.

 

 

  이처럼 훈민정음의 가획은 동일한 조음위치에서 획을 추가하여 음향적 성질의 변화를 표기한다는 점에서, 악보의 음표가 음의 높이(note pitch)와 음의 길이(note duration)를 변화시키는 방식과 구조적 유사성을 지닌다.

 

  특히 세종대왕은 음의 높이와 음의 길이를 함께 기록할 수 있는 동양 최초의 유량악보인 정간보(井間普)를 직접 창안했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면,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에도 음악적 사고와 음향적 감각이 구조적으로 반영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훈민정음해례본』을 철저하게 세종대왕 관점에서 해석해야 하는 이유다.

 

  다음 8화에서는 기본 자음의 가획 원리를 실제 발성기관에서 그 모양과 소리를 구현한다.

 

강상범 프로필 

성균관대학교 화학공학과 졸업

현 한글골프연구소 소장

 

저서

『한글 골프』(2018)

『궁상각치우: 훈민정음을 연주하다』(2023)

『세종대왕의 언어 척도: 음악』(2025)

『The Linguistic Scale of King Sejong』(2025)

논문

「세종대왕 관점에서 바라본 훈민정음해례본 재해석: 궁상각치우를 고려한 음악적 고찰」(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