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라운드 무려 6시간, 아마추어보다 더 걸려
-선수들 경각심 없고, 협회도 대응 미진
[골프가이드=소순명기자] 아마추어이건 프로건, 골프를 하다 보면 유난히 늑장 플레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티박스 드라이버샷에 앞서 과도한 빈 스윙을 해대거나, 긴 시간 동안 그린을 빙빙돌며 퍼팅 라인을 살피는 등 동반자들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골퍼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늑장 플레이는 동반자들의 경기 리듬을 잃게 만들며, 심지어 성질 급한 골퍼의 분노를 폭발시키기도 한다. 골프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할 비 매너에 해당된다.
6일 박세리, 최나연, 유소연 등 미 LPGA투어에서 활약 중인 ‘톱스타’들이 참가한 한화금융클래식 1라운드도 늑장 플레이로 빈축을 샀다. 무려 6시간이나 경기가 늘어져 선수, 갤러리 모두 힘든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국내 대회에 오랜만에 출전한 맏언니 박세리는 “경기 진행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6시간 이상 걸린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아마추어와 라운드해도 이 정도는 아닌데, 선수 보호 차원에서라도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날 오전 9시15분 티업 예정이던 박세리는 9분 늦은 9시24분에 경기를 시작했고, 오후 3시 30분 겨우 1라운드를 끝냈다. 무려 6시간15분이 걸린 셈이다.
이에 대해 박세리는 “LPGA투어의 경기 시간은 대부분 4시간30분 정도이며 악천후 상황에도 4시간50분, 늦어도 5시간 안에는 경기가 끝난다”고 말했다. 또 그는 “경기 시간이 길어지면 선수도 힘들지만 지켜보는 갤러리들도 재미없어한다”며 아쉬워했다.
그동안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는 많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수차례 “지나치게 경기가 루즈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은 대회 관계자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올해 몇몇 KLPGA투어 경기에서도 늑장 플레이가 문제가 됐다. KLPGA선수권, 대우증권클래식 등에서는 라운드 당 5시간30분 이상 걸렸고, 심지어 한 홀 이상을 비어놓고 경기가 진행되기도 해 빈축을 샀다.
이런 상황을 경기위원들도 알고 있다. 골프 규칙에는 18홀 경기의 시간 규정이 없다. 하지만 늑장 플레이로 경기가 지연되었을 경우, 그 원인을 파악해 벌타를 부과할 수 있는 규칙이 있다.
우승권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선수들일지라도 경기 규칙은 지켜야 한다. 경기위원은 선수들이 확실하게 경기 지연에 대한 규칙을 위반했다면 벌타를 부과해야 마땅하다.
특히 KLPGA투어의 늑장 플레이는 일종의 ‘고질병’적인 것이어서 반드시 추방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날 대회를 관람하기 위해 부산에서 먼 길을 왔다는 한 갤러리는 “생동감 넘치는 경기를 기대했는데 선수들이 너무 루즈하게 플레이를 펼쳐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고 말했다. 선수나 경기위원 공히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골프대회는 스폰서, 주관협회, 선수들이 하모니를 이뤄 팬들에게 보여주는 이벤트다. 스폰서와 협회는 매끄러운 경기 운영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고, 선수들은 갤러리를 위해 리듬감과 생동감 넘치는 샷으로 멋진 승부를 펼쳐야 한다.
영국왕립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는 늑장 플레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보다 박진감 넘치고 스피드한 경기로 팬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다.
남자골프 세계랭킹 1위인 루크 도널드(잉글랜드)는 PGA투어 올 시즌 개막전을 마치고 자신의 트위터 “늑장 플레이가 골프 경기를 죽이고 있다”는 의미심장한 글을 올리기도 했다.
수년간 되풀이 돼온 늑장 플레이 논란에도 별 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고 있는 KLPGA의 행정력에 실망을 금할 길이 없다. 늑장 플레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 마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