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문채형 기자 |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공권력 개혁은 국가 개혁 과제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검찰뿐 아니라 경찰도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 △권한 남용 방지 △피의자 인권 보호 △언론 자유 보장 등 다양한 원칙 아래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하지만 일선 수사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실은 여전히 이런 원칙과 충돌하고 있다. 최근 서울 종암경찰서(서장 류경숙 총경)에서 벌어진 장위15구역 재개발조합 관련 언론사 취재기자 명예훼손 고소 사건은 이런 개혁의 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수사기관, 피고소인 아닌 회사부터 찾았다
지난달 1일 장위15구역 재개발조합 지종원 조합장이 본지 취재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종암경찰서에 고소했다. 본지는 장위15구역 재개발조합의 비리와 내부 갈등을 수개월 간 취재해 보도해왔다. 해당 조합과 관련해 다수 제보자들은 지 조합장과 종암경찰서 간 유착 의혹을 반복해 제기했지만, 구체적인 물증 부족으로 신중하게 접근해왔다.
그런데 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의 초기 대응은 상식을 벗어났다. 담당 수사관은 피고소인인 기자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자에게 직접 연락하지 않고 언론사 사무실로 전화해 직원에게 고소 사실을 알리고 기자에게 연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통상적 수사 절차와는 확연히 다른, 부적절한 조치였다.
▲ 조사 협의 이후에도 회사에 반복 연락
기자는 이후 담당 수사관과 직접 통화하며 변호인 조력을 받아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뜻을 전했고, 관할 경찰서 이관 방안도 협의해 경찰관도 이를 받아들였다. 문제는 그 다음 날부터 벌어졌다. 담당 수사관은 다시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이번에는 회사 사장과의 통화를 요구했다. 사장이 부재중이자 직원에게 “이 사건은 사장도 알아야 한다”는 취지로 고소 사실을 거론했다.
여기서 더 의심스러운 대목이 등장한다. 지난달 23일 회사로 처음 전화했을 때에도, 또 기자와 직접 통화해 조사 방식을 협의한 직후에도 담당 수사관은 단 한 번도 사장도 고소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회사로 두 번째 전화를 건 시점에서 돌연 “사장도 고소됐다”고 알려왔다. 이 돌발적인 발언은 지 조합장과 경찰 간의 사전 교감이나 정보 공유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피고소인과 조사 일정을 협의한지 하루만에 회사에 반복 연락하고, 경영진까지 거론하는 방식은 수사기관이 언론사 내부에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결과를 낳았다.
▲ 수사 중립성 논란, 유착 의혹 불붙어
장위15구역 재개발조합 취재 과정에서 이미 제기된 지 조합장과 종암경찰서와의 유착 의혹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더욱 짙어지고 있다. 본지 기자는 이번 담당 경찰관의 행위가 △명예훼손 △직권남용 △헌법상 언론자유 침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경찰청 감찰실과 서울경찰청 청문감사담당관실에 감찰 민원을 제출할 계획이다.
▲ 이재명 정부 개혁의 현장 시험대
이번 사건은 단순히 수사기관 내부 통제 문제를 넘어서,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공권력 개혁 기조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공권력 남용 방지, 수사기관 권한 절제, 국민 기본권 보호를 주요 개혁 방향으로 내걸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언론 보도에 대한 공권력의 자의적 평가 위험과 이로 인한 언론 자유 침해의 위험이 현실화되고 있다면, 이는 개혁의 근본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언론은 공적 감시자로서의 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재개발 조합의 비리 의혹과 공권력의 불투명한 행태를 감시·보도하는 것은 민주사회를 지탱하는 기본적 역할이다. 언론의 정당한 취재와 보도를 위축시키는 공권력의 압박은 단지 한 언론사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언론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 류경숙 서장의 책임론도 피할 수 없다
특히 종암경찰서 류경숙 서장은 수사관의 부적절한 언론사 접촉 방식과 반복적 심리적 압박 행위가 지속되는 동안 관리·감독 책임을 다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피할 수 없다. 수사기관의 중립성과 적법절차 준수는 서장의 지휘 책임 아래 작동하는 기본 원칙이다. 지휘부가 이 사안에 대한 적절한 통제와 시정을 하지 않았다면 이는 조직 차원의 책임론으로 비화될 수 있다.
개혁은 원칙이 아니라 현장에서 실현될 때 그 진정성을 갖는다. 장위15구역 사건은 단순 고소 사건을 넘어 언론 보도에 대한 공권력의 자의적 평가 위험과 언론 자유 침해 위험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사건이 이재명 정부 공권력 개혁의 시험대가 된 이유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