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 시선] 신뢰 잃은 증권사들…발행어음 인가, 왜 제동 걸렸나

  • 등록 2025.07.19 13: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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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5개 증권사 중 4곳에 ‘심사 중단’ 요청
잇단 전산사고·불완전매매·사법리스크가 발목
ETF 손실 은폐, 내부자 거래 등 고객 신뢰 타격
발행어음은 ‘돈’이 아니라 ‘신뢰’를 다루는 사업
인가 확대 앞서, 증권사 책임 기준 다시 묻는다

“우리 돈을 굴릴 자격이 있는가.”

 

금융소비자들의 이런 질문 앞에, 일부 대형 증권사는 대답을 못하고 있다. 전산 사고로 거래가 끊기고, 불완전 매매로 손실이 발생하며, 심지어 일부 임직원이 정보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수사까지 받고 있다. 그 와중에 이들은 고객 자산보다 몇 배 더 큰 돈을 굴리는 ‘발행어음’ 사업을 허락해달라며 금융당국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5곳 중 4곳이 문턱에서 멈췄다. 지난 17일 금융감독원은 삼성증권, 신한투자증권, 메리츠증권, 하나증권 등 4개 증권사에 대해 ‘심사 중단’을 요청했고, 금융위원회는 이 요청을, 받아들일지 다음 회의(8월 28일)에서 판단하기로 했다. 이대로라면 당초 올해 안에 대형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를 확대해 기업금융을 키우려던 정책은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 제동은, 정책이 아니라 결국 신뢰를 잃은 ‘증권사 자신들’이 만든 벽이다.

 

신한투자증권은 ETF 유동성공급자(LP) 운용 과정에서 임직원들이 장내 선물 거래를 벌여 손실을 본 뒤, 이를 숨기기 위해 허위 스왑 거래를 전산 시스템에 입력했다. 결과적으로 발생한 손실은 1300억 원에 달했고, 이 사건의 책임자는 최근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고객이 알 수 없는 구조에서 내부자가 손실을 은폐하고, 조직 전체가 이를 묵인한 결과였다.

 

메리츠증권은 올해 들어 전자금융사고를 가장 많이 기록한 증권사다. 5월에는 미국주식 매수·매도 주문 체결이 1시간 가까이 지연됐고, 2월엔 기업 합병비율을 잘못 적용해 주식을 과지급하는 사고까지 벌어졌다. 지난해에도 미국 주식 주문 오류로 고객들이 손실을 본 전력이 있다. 이 모든 일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메리츠증권은 올해 1분기 전체 증권사 전산 민원 중 3분의 1을 차지했다. 또한 내부 임직원들이 이화전기 거래정지 정보를 미리 알고 이익을 챙긴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삼성증권은 2017년 발행어음 인가를 추진했지만,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대주주 적격성 문제로 발목이 잡혔다. 대법원이 최근 이 회장에게 무죄를 확정하면서 해당 장애물은 사라졌지만, 2018년 ‘유령주식 배당 사고’로 한 차례 금융소비자 신뢰를 잃은 이력이 여전히 시장의 뇌리에 남아 있다.

 

하나증권은 그룹 차원의 채용비리 의혹이 사법 절차에 남아 있어 아직도 리스크 요인으로 분류된다. 고객이 체감하기 어려운 사건일 수 있지만, 금융회사의 윤리적 리스크는 시스템 신뢰에 직결된다.

 

한편 키움증권은 현재로선 심사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았지만, 최근 진행 중인 ‘집사게이트’ 수사에서 김익래 전 다우키움 회장이 참고인으로 소환되는 등 정치적 변수에 따라 향후 심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남아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발행어음 사업이 허용되면, 이들 증권사는 자기자본의 최대 200%까지 단기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된다. 그 규모는 수조 원대에 이르며, 규정상 50% 이상은 기업금융으로, 30% 이하는 부동산에 운용해야 한다. 또한 금융당국은 이 자금의 일부를 ‘국내 모험자본’에 의무적으로 공급하도록 계획하고 있다. 즉, 정책적으로는 기업과 스타트업에 돈이 돌게 하기 위해 대형 종투사의 역할을 키우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자금이 흘러가기 위해선, 누가 돈을 굴릴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자격 있는 자가 손에 쥐어야 돈도 살아난다. 반복되는 전산장애, 내부자의 이익 편취, 구조적 부실 등 이런 사건들이 일회성 문제가 아니라 ‘관리 능력의 부재’로 이어진다면, 고객 입장에선 “내 돈이 안전한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증권사는 고객의 위임을 받는 수탁자이며, 고객의 불안은 곧 시장의 신뢰 위기다.

 

금융당국은 기업금융을 키우겠다는 의지와 금융소비자의 신뢰 회복이라는 책무 사이에서 저울질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더는 ‘자본력’이나 ‘시장점유율’만으로 인가 자격을 말할 수는 없다.

 

사고는 반복되고, 책임은 모호하고, 신뢰는 무너졌다. 이런 현실을 묵과한 채, 대형 증권사에 더 큰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발행어음은 ‘돈’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맡기는 일이다. 그 신뢰에 값하지 못하는 자에게 인가를 내리는 순간, 시장은 소비자가 아니라, 불신에 굴복한 시스템을 보게 될 것이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문채형 기자 moon113@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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