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난 참 행복했네!

  • 등록 2025.08.20 18:5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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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LPGA 투어 프로들과 얘기도 나누고 연습 장면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꿈같은 특별한 경험

*편집자 주=다음 글은 지난 주 경기도 포천 몽베르C.C.에서 열렸던 KLPGA 투어 '메디힐ㆍ한국일보 챔피언십' 기간 중 대회에 출전한 투어 프로들이 공식연습장으로 사용했던 태봉골프연습장에서 근무하는 이용훈 씨가 프로들을 맞이하고 연습하는 모습 등을 직접 지켜보고 느낀 점 등을 진솔하게 쓴 것입니다. 

이용훈 씨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77에 있는 태봉골프연습장. 이곳은 명성산 줄기가 이어져 주변 경관이 수려하고 쾌적하다. 시골이라 소음도 적어 골프 연습을 하기에는 딱이다.

주변엔 고석정과 주상절리길, 물윗길 걷기 등 관광지가 있다. 대로변 길목에 있어 차량이 드나들기도 쉽다.  연습장은 1, 2층 24타석이다. 전장 135m에 150m까지 거리 측정이 가능하다. 프로들이 연습하기에도 모자람이 없다.

 

태봉골프연습장 입구에 서 있는 이번 대회 공식연습장 입간판

 

지난 13일 오전 6시40분. 이른 시간이다. 조용하던 연습장이 시끌벅적하다. 이튿날부터 포천 몽베르C.C.에서 열리는 메디힐.한국일보 참피언십에 참가하는 프로들이 연습하러 온 것이다.

가장 먼저 임희정 프로가 들어왔다.  운동복 차림에 화장기 없는 모습이 한결 청순하다. 그를 보니 가슴이 설렌다. 그의 찐팬인 탓이다. 그가 스윙하는 모습을 보니 말그대로 '교과서'다.  완벽함 그 자체다. 아마추어라면 누구나 닮고 싶은 스윙, 그 스윙을 내 눈 앞에서 바로 보고 있다니...쉽게 믿기지 않는다. 

그에게 정중히 양해를 구했다. 스윙 장면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었다. 나도 모르게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다.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을까 싶다. 

 

대회 참가 선수들이 연습장에서 샷 연습을 하고 있다

 

박지혜 프로도 왔다.  그는 어릴 때 각광을 받았다. 마침 박 프로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함께 오셨다. 손녀에게 각별히 애정을 쏟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찡하다. 이 세상의 모든 할아버지와 할머니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김수빈 선수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그는 16세 아마추어로 이번 대회에 특별히 초대 선수로 왔다. 

왕고참 최혜용 프로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이번 대회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한다. 10년 넘게 대회를 뛰었다. 예쁜 얼굴에 스윙도 아직은 너무 멋진데 왜 은퇴를 해야하는지 궁금했다. 

 

선수들을 보니 저마다 제각각이다. 코칭을 받는 사람도 있고, 스윙 동작을 반복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한 번을 쳐도 아주 신중하다. 역시 프로는 프로다. 아마추어와는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아마추어들은 연습장에서 연습을 하고 나면 볼 몇 개를 쳤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연습을 질적으로 따지는 게 아니라 양적으로 측정하는 습관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들은 역시 질적인 측면에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연습도 실전처럼, 정성을 다해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 절로 감탄할 수 밖에 없다. 

어드레스부터 하프 스윙,  피니시 동작 등을 반복해서 연습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나 자신 느끼는 게 많다. 

 

우리 연습장에 많은 선수들이 다녀갔다. 그 선수들을 일일이 다 언급할 수는 없지만 스윙이 기억나는 프로들을 떠올려 본다.

먼저 김민별 프로다. 무엇보다 스윙이 참 부드럽다. 백스윙도 그렇게 커지 않은 것 같다. 체격이 큰데 스윙 동작이 물 흐르듯 매끄럽다. 

때마침 노승희 프로가 들어온다. 직전 대회에서 준우승을 했고, 올 시즌 우승을 기록한 선수다. 아우라가 느껴진다. 곁에 있던 연습장 회원 한 분이 그의 찐팬인가 보다. 사진 한 장을 찍을 수 있느냐고 그에게 물어본다. 노 프로는 기꺼이 응한다. 포즈를 취할 때도 환하게 웃는 모습이다. 역시 프로는 다르다.  그는 웃는 모습이 특히 예쁘다. 곁에서 지켜보니 나도 괜히 즐겁다.

 

유현조 선수도 왔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준우승을 했다. 물론 그가 연습하는 장면도 사진으로 찍었다. 그가 이번에 잘 쳤지만 홍정민 프로가 너무 잘 치는 바람에 준우승에 그쳤다.  나도 속으로 아쉬웠다. 

장하나 프로는 역시 쾌활하고 발랄했다. 화끈한 모습 그대로였다. 목소리도 시원했다. 그는 연습장에 있는 고양이를 보곤 친구가 되주었다. 한때 누구나 알아주던 일류 선수였는데 최근 슬럼프에 빠져 컷 탈락을 하는 모습을 보면 참 안됐다. 하루빨리 그가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으면 싶다. 

 

장하나 선수가 연습장에서 기르는 고양이를 돌보며 포즈를 취했다

 

한진선 프로의 스윙도 멋지다. 일품이다. 이예원, 최민경, 정윤지 프로의 스윙도 마찬가지다.  누구랄 것도 없이 투어 프로들의 스윙은 그 자체가 예술이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절로 감탄이 나온다. 도대체 나는 언제 저런 스윙을 한번이라고 해 볼 수 있을까 싶다. 

 

이예원 선수가 타고 온 자동차 트렁크에 가지런히 정돈된 가방과 각종 골프 용품

 

드디어 오늘의 백미(白眉)다.

'메디힐' 유소년팀 레슨시간.  소속 13명의 프로가 이들을 지도하는 것이다. 

어린 선수들이 투어 프로들의 레슨을 받는다. 이들에게는 꿈같은 시간일 것이다. 최고의 무대에서 뛰는 현역 선수들이 자신들을 가르쳐 주니 이보다 더 좋고 알찬 시간이 어디 있을까 싶다. 

이들은 프로들이 하는 소리를 귀를 쫑긋 세워 듣는다.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표정이다. 그 모습이 귀엽다 못해 경건하다.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그렇다. 

연습장 2층 타석을 꽉 채워 레슨하는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다. 언제 연습장이 이처럼 진지하고 엄숙할 때가 있었을까. 우리 연습장으로서 참 영광스런 순간이다. 

현재 한국 여자 골프를 이끌어가는 선수들과 미래의 꿈나무들이 한 자리에서 골프를 가르치고 배우는 그 터를 잠시나마 제공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오른다. 

이런 경험이 쌓여 한국 여자골프가 세계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메디힐 유소년팀이 선수들의 레슨을 받고 있다

 

대회 개막일, 이른 새벽 4시 30분. 벌써부터 연습장을 찾는 선수들이 있다. 첫날 경기에 앞서 몸을 풀러 온 것이다. 그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출전 직전의 장수들 모습 그대로다. 

감히 어떤 말도 하기 어렵다. 그저 경기를 잘 치르라고 격려하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오후가 되면 경기를 끝내 선수들이 연습장을 찾기도 한다. 그날 성적이 좋은 선수들은 선수대로, 또 성적이 좋지 않은 선수들은 또 그들대로 표정이 다 다르다.

TV 중계 방송을 지켜본 터라 나도 그들의 성적을 거의 파악하고 있다. 특히 성적이 좋지 않은 선수들에게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성적에 관계없이 선수들은 또 연습에 매진한다. 그게 프로다. 직업이니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선수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아이스커피 한잔을 주면서 힘을 내라고 격려도 해줬다. 선수들은 고마워한다. 

1라운드에서 성적이 좋지 않은 방신실 프로는 연습은 커녕 차에서 내리지 않고 귀가했다. 잘은 모르지만 기분이 썩 내키지 않은 모양이다. 한편으론 이해가 가면서도 내 마음도 영 편치 않다. 그의 찐팬이 나로서는 그가 연습하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였는데 말이다. 

 

선수들을 케어하는 마사지팀도 연습장 2층에 마련된 프로실에 둘째날 오겠다고 예약하고 갔지만 함흥차사다. 컷탈락 때문일까, 아니면 좀 늦을까 기다렸는데 결국 짐을 가지러 온 매니저가 미안해 한다. 자기 잘못도 아닌데..."첫날 잘 쳤는데 둘째날 망쳤다"며 푸념을 한다. 

인생살이가 그런 것이다. 

 

연습장에 온 선수들이 한데 모여 있다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게 인생 아닌가.

그렇게 꿈같은 날이 어느새 지나갔다. 아직도 머릿속은 온통 선수들의 멋진 연습 장면 뿐이다. 누군 부드럽게, 또 누군 힘이 넘치게 스윙하는 모습. 

어떤 선수는 유쾌하고, 또 어떤 선수는 수줍어 했다. 새내기 선수들이 대개 수줍어 했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할 것이다. 누구든 경험이 쌓이기 전에는 낯설고 조심스러운 법이니까.

그러나 선수들은 하나같이 연습할 때만큼은 진지했다. 동작은 조금씩 달라도 기본 자세는 확고했다. 보디턴 동작은 한결 같았다. 

 

 

선수들은 늘 일정하게 스윙을 한다. 그러니 방향성이 좋다. 좌우 편차가 적다. 아마추어가 꼭 배워야 할 점이다. 무작정 거리에만 신경을 쓰는 아마추어와는 근본부터가 다르다. 선수들은 바로 그 일정한 샷을 위해 날마다 고민하고 연습을 한다. 그래야 우승도 가능하다.

이번 대회에서 KLPGA 투어 72홀 최저타 기록을 새로 세운 홍정민 프로의 스윙을 보면서도 느낀 점이 많다.

그의 스윙 동작은 특별하지 않다. 아주 쉽게 치는 것 같은 데도 비거리고 많이 나고 페어웨이 안착율도 높다. 아이언 샷으로 공을 홀에 아주 가깝게 붙인다. 어프로치 샷도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혼자서만 다른 코스에서 치는 것처럼 스코어를 줄여 나갔다. 그러니 다른 선수들이 도저히 따라 잡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 그를 쫓는 선수들 입장에선 허탈하기 그지 없다. 

물론 홍정민 선수도 긴장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엔 평온한 것 같았지만 내심 얼마나 떨렸을까. 그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어떻든 그 경지에 이르기까지 본인은 얼마나 많은 연습과 훈련을 했을까. 나로선 도저히 상상하기 어렵다.

 

연습장에 온 선수들이 한 사인 

 

잠시나마 투어 프로들의 연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대회가 끝난 지 며칠이 지났지만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나도 스윙을 해본다. 부드럽고 간결하게. 그러나 그 선수들의 스윙폼을 그대로 해내지는 못한다. 그게 하루 아침에 할 수 있는 게 아님을 나도 잘 안다. 그래도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아서 기쁘기도 하다.

다시 생각해도 선수들을 지켜본 며칠 간의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 그것만으로 난 행복하다. 

 

이예원 선수가 모자에 멋지게 사인을 해줬다

 

 

김대진 기자 djkim987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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