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골 재개발의 본질은 단순하다. 조합원의 재산을 지키고,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정릉골 재개발은 이 원칙에서 점점 멀어져 왔다. 조합원 간 갈등이 잦아졌고, 불투명한 의사결정이 반복됐으며, 시공사와 특정 설계업체의 과도한 개입으로 조합원은 정보와 선택권을 충분히 행사하지 못했다. 그 사이 재개발의 주인인 조합원들의 재산은 불안정해졌고, 사업의 목적은 흐려졌다.
갈등의 시작은 2021년 12월 사업계획승인 이후였다. 2022년 5월 정비계획 변경 추진 과정에서 조합원 간 균열이 드러났고, 2024년 1월 관리처분인가 이후에도 중대 정비계획 변경 요구가 이어지면서 대립은 격화됐다. 관리처분안을 지지하는 조합원과 변경을 요구하는 세력 간의 갈등은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 조합 운영에 대한 신뢰 붕괴로 이어졌다.
시공사와의 계약 또한 조합원 부담을 키운 핵심 요인이었다. 포스코이앤씨와 2023년 4월 체결된 도급계약은 입찰 당시 제안서보다 불리한 조건을 담고 있었다. 계약이행금 700억 원 전액 반환, 사업경비대여금 금융이자 부담 등은 조합원들의 실질적 부담으로 직결됐다. 재개발의 목표가 조합원 재산 증대라면, 이러한 계약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정이었다.
문제의 핵심은 단순한 계약을 넘어선다. 정릉골 조합에는 10년 가까이 상근으로 자리를 지켜온 임원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조합장 부재 10개월 동안 조합 운영을 사실상 좌지우지하며, 조합원보다 시공사와 특정 정비업체의 이익을 우선시해왔다. 그 사이 조합원들은 투명한 정보와 선택권을 빼앗긴 채, 재산을 지키는 주체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특히 정비업체가 상주하며 임원들을 조정하고, 시공사와 결탁해 이권 카르텔을 형성한 구조는 명백한 문제다. 그 과정에서 새로 선임된 조합장에게 제대로 일할 기회를 주지 않고, 의사결정을 막은 것은 이 구조의 본질을 드러낸 결정적 증거다. 조합원보다 시공사와 업체의 이해를 우선한 ‘꼭두각시 놀음’이 지난 수년간 계속되어 왔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홈페이지 폐쇄, 소식지 단절, 소통창구 부재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의도적 통제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근본적 전환이다. 단순한 소통 강화나 제도 개선으로는 누적된 불신과 갈등을 해소할 수 없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처럼, 새로운 조합장과 독립된 리더십이 반드시 필요하다. 시공사나 특정 업체로부터 신세를 지지 않은 인물이 조합을 이끌어야만, 조합원 재산 보호라는 본질을 회복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도 지금은 중요한 분수령이다. 이재명 정부가 포스코이앤씨를 향해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상황에서, 정릉골 역시 시공사 교체를 포함한 모든 선택지를 열어두고 검토해야 한다. 이는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오직 조합원 재산을 지키기 위한 현실적 조치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조합을 운영해온 상근임원과 관계자들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시공사와 특정 업체의 이해를 우선하며, 조합원을 조정하고 정보를 차단한 과거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조합원들의 재산을 담보로 한 그간의 선택과 침묵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를 양심 앞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릉골 재개발이 다시 살아나는 길은 단 하나다. 기득권과 이권 카르텔을 내려놓고, 뽑아놓은 조합장을 제대로 활용해 조합원만을 위한 리더십을 세워야 한다. 현 집행부와 상근임원들은 이제라도 조합원 앞에 서서 책임을 고백하고 물러나는 용기를 보여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늦었지만, 조합원과 지역을 위한 마지막 양심의 길이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