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3세 경영인 김동원 사장이 주도한 한화생명의 ‘공격적 확장’이 위태로운 궤적을 그리고 있다. ‘글로벌 도약’이라는 구호 아래 속도전을 벌였지만, 남은 것은 급감한 순이익과 부실 인수의 후폭풍이다. 지표로 포장된 성장 뒤에는 내부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었다.
한화생명의 올해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전년 대비 30.8% 줄었다. 별도 기준으로는 무려 48.3% 급감했다. 보험손익은 35.9%, 투자손익은 12% 각각 감소했다. 그럼에도 회사는 신계약보험마진(CSM) 증가를 내세우며 성장세를 강조했다.
하지만 숫자만 부풀린다고 체력이 회복되지는 않는다. 신계약이 늘어도 현금이 빠져나가면 내실은 무너진다. 한화생명금융서비스(GA)의 단기납 종신보험 확대와 설계사 리크루팅을 위한 사업비 증가는, 결국 단기 지표를 위해 장기 수익성을 희생한 전형적인 ‘엑셀 경영’의 그림자다.
김 사장은 해외 M&A를 ‘종합금융그룹 도약’의 발판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인수 한 달 만에 드러난 결과는 냉혹했다. 한화생명이 인수한 미국 증권사 벨로시티(Velocity)는 최근 미국 금융산업규제국(FINRA)으로부터 100만 달러(약 14억 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사유는 내부통제의 총체적 부실이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발생한 시장조작 의심 경보 약 15만 건 중, 98%에 달하는 14만7,000건을 단 한 명의 직원이 조사 없이 종결 처리했다. 이것은 단순한 관리 미숙이 아니라, 리스크 통제 시스템 자체의 부재를 의미한다.
더 큰 문제는 타이밍이다. 한화생명이 인수를 마무리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벌금이 확정됐다. 이는 인수 실사가 부실했거나, 오너 3세의 ‘성과 쌓기’에 몰두한 나머지 리스크를 의도적으로 외면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한화생명의 일반 지급여력비율(K-ICS)은 160.6%로 겉보기엔 안정적이다. 그러나 기본자본 비율은 59.5%로 국내 대형 생보사 중 유일하게 100% 미만이다. 즉, 외형 확장은 계속되지만, 기초 체력은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김동원 사장의 확장은 한화생명을 글로벌 브랜드로 키운 것이 아니라, 단기 리스크를 키운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재무 건전성이 불안한 상황에서 위험성이 높은 해외 증권사 인수는, ‘도약’이 아니라 ‘도박’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지표는 일시적으로 웃을 수 있다. 그러나 신뢰의 결손은 복구가 어렵다. 성과를 위한 확장은 잠시 환호를 얻지만, 리스크를 통제하지 못한 경영은 오래가지 못한다.
김동원 사장이 이제 계산해야 할 것은 성장률이 아니라 신뢰율이다. 엑셀 위의 성장률이 아닌, 사람 위의 경영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속 가능한 생명보험사의 길은 화려한 성과표가 아니라, 책임과 원칙에서 열린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엑셀 경영”은? 숫자 놀음에 치중한 단기 성과주의 경영, 현장의 리스크와 지속 가능성을 외면한 오너식 경영을 비판하는 언론적 은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