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없는 정릉골 재개발 ②] 엉터리 감정평가, 새는 조합 자금…책임은 없고 변명만 남았다

  • 등록 2025.12.30 11: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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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만 원 연봉 임원들, 끝내 권한 내려놓지 않았다
세 차례 해임된 조합장…멈춘 공사, 불어난 조합원 부담
감정평가·공가 처리 곳곳서 드러난 구조적 허점
책임은 감정평가법인으로 떠넘기고, 구청은 감독 책임 회피
반복되는 비리, 이제 누가 책임질 것인가

지이코노미 문채형 기자 | 지이코노미는 서울 정릉골 재개발을 둘러싼 구조적 비리와 책임 회피의 실체를 추적하는 특별기획 ‘겁없는 정릉골 재개발’ 시리즈를 이어간다.

 

지난 십여 년간 수천만 원대 연봉을 받아온 일부 조합 임원들은 각종 이해관계의 중심에서 조합 운영을 좌우해 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들은 변화 요구 속에 선출된 임동하 조합장을 세 차례나 해임하며 사업 정상화를 가로막았고, 그 결과 공사는 멈췄고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들에게 전가됐다.

 

공가 처리와 감정평가, 조합 운영 전반에서 드러난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는 단순한 행정 착오 수준을 넘어선다. 이는 오랜 기간 누적된 권한 독점과 책임 회피가 빚어낸 구조적 병폐다. 지이코노미는 조합 자금을 잠식해 온 이 구조의 실체와, 그 끝에서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끝까지 추적한다.

 

■ “다른 땅을 같은 땅처럼”…의도적 왜곡에서 시작된 감정평가

 

 

정릉골 재개발을 둘러싼 감정평가 조작 의혹은 단순 실수를 넘어 구조적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조합이 서로 다른 토지를 하나의 필지처럼 묶어 감정평가를 의뢰했고, 그 결과 수억 원대 평가액이 부풀려졌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문제의 발단은 올해 4월 1일이다. 조합은 조합원 안 모 씨의 재감정을 요청하며 실제 대상 토지인 정릉동 760-29번지가 아닌, 전혀 다른 필지인 정릉동 산1-386의 항공사진을 함께 제출했다. 이로 인해 건물 면적은 49.58㎡에서 112.39㎡로 늘었고, 감정평가액 역시 약 3억2천만 원에서 5억2천만 원으로 1억9천여만 원 급증했다.

 

이는 단순 착오라 보기 어렵다. 서로 다른 지번을 하나의 토지처럼 둔갑시켜 대지 요건을 충족시킨 구조적 조작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 “오류였다”는 조합 해명…그러나 문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조합은 해당 사안을 두고 “지번 오기 및 항공사진 첨부 오류”라며 허위 자료 작성이나 감정평가 개입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본지가 확보한 감정평가 요청 공문에는 정릉동 760-29와 산1-386이 명확히 병기돼 있고, ‘대지로 재평가’라는 문구까지 포함돼 있다. 해당 문서에는 담당 직원은 물론 관리업무이사 박 모 씨, 총무이사 조 모 씨, 조합장 직무대행 김종호 씨까지 결재 라인이 명확히 남아 있다.

 

단순 실수였다면 결재라인 전체를 거쳐 문서로 공식화되기 어렵다. 조합의 ‘오기’ 해명은 문서 자체에 의해 설득력을 잃는다.

 

■ “우린 관여 안 했다”…책임을 감정평가법인에 떠넘긴 조합

 

 

조합은 책임 논란이 확산되자 “감정평가는 감정평가법인의 판단”이라며 선을 그었다. 동시에 태평양감정평가법인과 국토감정평가법인에 질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감정평가의 출발점이 되는 자료를 제공한 주체는 조합이다. 잘못된 자료를 제공해 놓고 결과만 문제 삼는 태도는, 책임의 출발선을 의도적으로 흐리는 행위라는 지적이 나온다.

 

■ 태평양감정평가법인 “조합에 문의하라”…책임 회피 논란

 

 

태평양감정평가법인은 본지 질의에 대해 “관계 법령과 계약에 따라 적법하게 업무를 수행했다”고만 밝히며 구체적인 설명을 피했다.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조합을 통해 확인하라”고 답했다.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감정평가법인이 책임 설명을 회피하고 조합 뒤로 숨는 모습은 또 다른 무책임이라는 비판을 낳고 있다.

 

한편 공동으로 감정평가에 참여한 국토감정평가법인은 기사 마감 시점까지 본지 질의에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의혹의 한 축을 담당한 기관의 침묵은 사안의 중대성을 더욱 키운다.

 

■ 성북구청도 “위법 없다”…감독 포기 선언과 다름없는 태도

 

 

관리·감독 기관인 성북구청은 이번 사안에 대해 “위법 사항을 확인할 수 없다”며 사실상 책임에서 한발 물러섰다. 감정평가 과정 전반에서 다수의 의문이 제기됐음에도, 구청은 “감정평가는 감정평가법인의 영역”이라는 말만 반복하며 실질적인 검증이나 조사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이는 행정기관이 스스로 부여받은 감독 권한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조합이 제출한 자료의 적정성, 감정평가 과정의 합법성, 조합원 재산권 침해 여부에 대해 최소한의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책임을 외부로 밀어낸 것이다. 관리·감독 기관이 사실상 ‘보는 척만 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성북구청의 이러한 태도는 조합의 위법·편법 논란에 면죄부를 주는 결과로 이어졌다. 행정이 제 역할을 하지 않는 사이, 조합의 일탈은 견제 없이 방치됐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들에게 전가됐다. 이는 단순한 소극 행정이 아니라, 공적 책임을 저버린 구조적 방조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 언론에 재갈 물리기…비판 대신 압박

 

조합은 제보자의 실명과 취재 경위, 기자의 소속까지 요구하며 사실상 언론에 압박을 가했다. 이는 사실 확인을 넘어 비판을 위축시키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공공성이 강한 재개발 사업에서 언론 감시를 적대시하는 태도는 민주적 통제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 법적 책임, 수사 대상 될 가능성도…감정평가법인·성북구청 책임론 부상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안이 단순한 행정 착오나 내부 혼선의 수준을 넘어, 업무상 배임·허위 공문서 작성·감정평가 관련 법 위반은 물론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위반 가능성까지 내포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조합이 사실과 다른 자료를 토대로 감정평가를 의뢰하고, 그 결과 조합원 재산에 직접적인 손해가 발생했다면 이는 단순 실수가 아닌 의도적 행위로 평가될 여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도정법은 조합 임원에게 조합원의 재산을 보호하고 사업을 공정하게 집행할 법적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합이 허위 또는 왜곡된 자료를 토대로 감정평가를 진행했다면, 이는 ‘부정한 방법에 의한 사업 수행’에 해당할 수 있으며 형사처벌 및 임원 해임 사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해석이다. 특히 감정평가 결과가 조합원 분담금과 직결되는 구조인 만큼, 고의성 여부에 따라 업무상 배임 혐의까지 적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감정평가법인의 책임 또한 가볍지 않다. 전문가로서 감정평가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기초자료의 적정성과 일관성을 검증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거나 사실상 조합이 제공한 자료를 그대로 반영했다면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 위반 소지가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평양감정평가법인은 “조합을 통해 확인하라”는 입장만 되풀이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고, 공동 참여한 국토감정평가법인은 끝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관리·감독 기관인 성북구청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조합의 감정평가 과정에서 다수의 의혹이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구청은 “위법 사항을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만 반복하며 사실상 감독 권한 행사를 포기했다. 이는 행정기관이 법이 부여한 감시·통제 역할을 스스로 내려놓은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감정평가의 적정성과 절차를 확인할 권한이 있음에도 이를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은 점은 직무유기 논란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이번 사안은 조합, 감정평가법인, 행정기관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 속에서 발생한 전형적인 공공성 붕괴 사례”라며 “사실관계가 명확히 드러날 경우, 형사 책임은 물론 행정적·민사적 책임까지 함께 논의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사안은 단순한 감정평가 논란이 아니라, 재개발이라는 공적 사업에서 권한을 쥔 주체들이 어떻게 책임을 방기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구조적 문제다. 조합·감정평가법인·행정기관 모두가 자유로울 수 없으며, 사법적 판단을 통해 책임의 경계가 명확히 가려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 끝까지 추적한다

 

지이코노미는 조합·감정평가법인·행정기관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 속에서 피해를 떠안아야 했던 조합원들의 현실을 끝까지 추적한다.

 

누가, 왜, 어떤 구조 속에서 이 사태를 만들었는지.

정릉골 재개발의 민낯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문채형 기자 moon113@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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