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강매화 기자 |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베네수엘라가 미국의 공습 대상이 되면서 국제 석유시장에 미칠 영향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공급 차질은 제한적이지만, 정치적 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수출 구조와 가격 형성에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를 체포한 이후, 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에 “매우 깊이 개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의 석유 인프라가 심각하게 붕괴된 상태라며 복구를 위해 수십억 달러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언급하는 한편, 기존 제재 기조는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따르면 2025년 기준 베네수엘라의 원유 매장량은 3,032억 배럴로 전 세계의 약 20%를 차지한다. 그러나 실제 글로벌 공급에서 베네수엘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1% 수준에 불과하다.
베네수엘라는 1970년대 석유 산업 국유화를 통해 국영 석유회사 페트롤레오스 데 베네수엘라(PDVSA)를 설립했다. 리포우 오일 어소시에이츠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량은 1997년 하루 약 350만 배럴로 정점을 찍은 이후 급감했다. 현재 생산량은 하루 약 95만 배럴로 추산되며, 이 중 약 55만 배럴이 수출되고 있다. 국영 기업인 PDVSA가 생산과 매장량 대부분을 통제하고 있다는 점도 구조적 한계로 지적된다.
미국 셰브론은 자체 생산과 PDVSA와의 합작 사업을 통해 베네수엘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러시아와 중국 기업들도 파트너 형태로 참여하고 있다. 다만 지배 지분은 여전히 PDVSA가 보유하고 있다.
리포우는 셰브론이 이번 사태 이후에도 하루 약 15만 배럴의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계속 수출할 것으로 전망하며, 단기적인 공급 충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지정학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배럴당 약 3달러 수준의 위험 프리미엄이 단기적으로 유가에 반영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제유가가 이미 공급 과잉 압력을 받아온 만큼 당장의 시장 반응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라피단 에너지 그룹의 밥 맥널리는 “현재 석유시장은 공급 과잉 국면에 가깝다”며 이번 사태의 단기 영향은 “거의 미미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중장기 유가 흐름의 핵심 변수로 베네수엘라의 정권 교체 가능성을 꼽고 있다. MST 파이낸셜의 사울 카보닉 에너지 리서치 책임자는 미국에 우호적이고 투자 친화적인 정부가 들어설 경우 셰브론이 가장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레프솔, 에니 등 기존에 베네수엘라에 진출한 유럽 기업들도 수혜를 볼 수 있다는 전망이다.
반면 정권 교체 과정에서 기존 공급망이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리포우는 권력 주체가 불분명해질 경우 원유 대금 지급 주체를 둘러싼 혼란으로 수출이 일시적으로 중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미국이 마두로 정권과 연계된 ‘그림자 선단’ 유조선에 제재를 가한 점도 베네수엘라의 생산 감소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는 중질유로 황 함량이 높아 채굴이 까다롭지만, 미국의 복합 정유시설에서는 선호도가 높다. 다만 업계에서는 지난 20년간 방치된 인프라를 복구해 생산을 정상화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과제로 꼽힌다.
RBC의 헬리마 크로프트 애널리스트는 베네수엘라 원유 산업 회복을 위해 매년 최소 100억 달러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추산하며, 안정적인 치안과 정치 환경이 전제되지 않으면 모든 시나리오가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리포우는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가 조기에 대통령에 취임할 경우 제재 완화와 함께 단기적으로 원유 수출이 빠르게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이러한 공급 급증이 오히려 국제유가에 하방 압력을 가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