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 시선] 오천피가 정치의 품격을 묻다

  • 등록 2026.01.23 15:5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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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받던 ‘코스피 5000’, 현실이 되다
비웃던 말은 기록으로, 침묵은 태도로 남다
예측의 실패보다 더 큰 문제는 뻔뻔함
숫자가 던진 질문, 정치의 품격을 묻다

“코스피 5000포인트 시대를 열겠습니다.”

 

지난해 대선 기간, 주식시장 활성화 공약을 설명하던 자리에서 이재명 당시 후보가 꺼낸 이 한 문장은 곧바로 논쟁의 중심에 섰다. 숫자가 과도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 발언의 본뜻은 지수 자체라기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구조적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한 문제 제기에 가까웠다. 자본시장 제도를 손보고, 기업 가치가 정당하게 평가받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방향성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정치권의 반응은 냉소로 기울었다. 이준석 의원은 이를 “표몰이용 수치 공약”, “시장을 가볍게 보는 선거용 숫자”라고 평가절하했다. 나경원 의원은 “허황된 구호”, “신기루”, “모래 위의 성”이라는 표현을 동원했다. 김문수 전 장관 역시 “기업을 도와야 주식이 오르지, 5000 같은 허황된 말은 의미 없다”고 했다.

 

자칭 진보 논객 진중권 씨도 비판 대열에 섰다. 그는 “숫자놀음”, “비과학적 허풍”이라는 표현과 함께 “코스피가 1000에서 2000 가는 데 18년, 2000에서 3000 가는 데 12년이 걸렸다”며 5000은 불가능하다고 단정했다. 이 공약은 정책이 아니라 ‘말’로 취급됐다.

 

취임 이후에도 기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준석 의원은 “개업빨 정부”, “신참자의 운”을 언급했고,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민주노총에 사로잡힌 이재명 정부는 절대 코스피 5000을 달성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비판의 초점은 정책의 성패가 아니라, 애초에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데 맞춰져 있었다.

 

이 발언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선 과정과 취임 이후 공개 석상에서 쏟아진 말들은 기사와 영상, 기록으로 남아 있다. 누가 어떤 표현으로 무엇을 단정했는지도 분명하다. 문제는 그 말들이 남긴 흔적이 아니라, 현실이 그 단정을 넘어선 뒤의 태도다. 설명도, 재평가도 없이 다음 국면으로 넘어가는 침묵은 정치의 선택이자 메시지다.

 

그리고 7개월이 지났다. 22일 오전, 코스피는 장중 5000을 넘어섰다. 외국인 자금은 대규모로 유입됐고, ‘한국 증시는 싸다’는 오래된 인식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본시장 제도 개선과 기업 가치 제고 정책이 축적된 결과였다. 오천피는 선언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현실로 도착했다.

 

이제 논쟁의 초점은 이동한다. 관심사는 전망이 맞았는지가 아니라, 그 전망이 현실과 어긋났을 때 어떤 태도를 보였는가다. 공개적으로 던진 단정과 조롱은 기록으로 남았지만, 그 이후의 설명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침묵은 선택이다. 그리고 정치에서 선택된 침묵은 언제나 하나의 태도로 읽힌다.

 

더 아이러니한 장면도 있다. 일부는 코스피 하락에 베팅했다. 민주당 정부 아래에서 경제가 성장하는 그림을 받아들이지 못한 시선이다. 나라 경제가 잘되기보다, ‘저쪽’이 실패하길 바라는 정파적 감정이 투자 판단을 대신했다. 결과는 손실이었고, 그 손실은 정치적 확신의 대가였다.

 

비판은 필요하다. 그러나 비판에는 책임이 따른다. 정책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결과가 나온 뒤에도 침묵하거나 말을 덧대며 서사를 다시 꿰매려 한다면 그것은 비판이 아니라 회피다. 더 나아가, 나라 경제가 잘되는 장면 자체를 불편해하는 태도라면 그 자체가 문제다.

 

이 지점에서 오천피는 더 이상 숫자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의 태도를 묻는다. 말은 이렇게 가벼웠는데, 책임은 어디로 갔는가.

 

정치의 문제는 예측이 빗나가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그 이후다. 확신에 찬 조롱이 기록으로 남았음에도, 아무 설명 없이 다음 논쟁으로 넘어가는 뻔뻔함이 반복된다는 데 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태도가 정치의 일상이 되는 순간, 비판은 감시가 아니라 소음으로 전락한다.

 

오천피가 남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정책은 논쟁할 수 있어도, 말은 지워지지 않는다. 특히 숫자와 확신으로 상대를 비웃었다면, 그 말의 무게만큼 자신 역시 평가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고개를 들 수 있다면, 그것은 강단이 아니라 뻔뻔함에 가깝다.

 

정치가 귀감이 되려면, 맞혔을 때 박수받는 능력보다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이 있다. 자신의 언어 앞에서 멈춰 설 줄 아는 감각, 부끄러움을 아는 태도다. 그 감각이 사라진 정치에서 남는 것은 책임 없는 언어와 반복되는 분열뿐이다.

 

그래서 오천피는 이렇게 묻는다. 사과를 요구하지도, 변명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정치가 다시 말하기 전에, 자신이 했던 말을 한 번쯤 돌아볼 수 있는 최소한의 품격을 갖추고 있는지를.

 

그것이 지금, 오천피가 정치의 품격을 묻는 이유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문채형 기자 newsroom@g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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