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을 굴복시키는 방식은 변했다. 그러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1970년대 군부독재가 총칼 대신 광고를 끊어 동아일보의 숨통을 조였듯, 2026년의 거대 금융자본은 광고 배정과 중단이라는 ‘합법의 외피’를 쓰고 언론을 길들이고 있다.
1974년 동아일보 광고 탄압 사태는 한국 언론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다. 정권은 폐간이나 노골적 검열 대신 기업 광고를 끊게 했고, 지면은 백지로 채워졌다. 언론 자유를 외친 대가는 경제적 질식이었다. 권력은 총을 들지 않았다. 대신 광고를 쥐고 있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이 장면은 다시 반복되고 있다. 주체만 바뀌었을 뿐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오늘의 권력은 군부가 아니라 거대 금융자본, 그리고 그 중심에 우리금융그룹(회장 임종룡)이 있다.
우리금융그룹은 자신들에게 부정적인 기사를 게재한 언론사를 선별해 광고를 중단하거나, 아예 배정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언론을 관리하고 있다. 이것이 단발적 판단이 아니라 내부에서 공유되는 ‘방침’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안의 성격은 분명하다. 비판하면 배제되고, 침묵하면 유지되는 구조. 이는 광고 집행이 아니라 언론에 대한 통제다.
광고는 기업의 권리일 수 있다. 그러나 특정 기사, 특정 논조, 특정 기자를 기준으로 광고를 차단하는 순간, 그것은 경영 판단을 넘어 언론 자유에 대한 개입이 된다. 특히 금융지주라는 공공적 성격의 기업이 이런 방식으로 언론을 선별한다면, 이는 사적 선택이 아니라 공적 책임의 일탈이다.
과거 군부독재는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들었다.
오늘의 금융권력은 ‘브랜드 관리’와 ‘광고 효율’을 내세운다. 명분은 세련돼졌지만, 효과는 같다. 비판 언론은 고사되고, 자기검열은 언론 내부에서 먼저 작동한다.
광고를 끊는 순간, 기사는 사라진다. 그리고 기사보다 먼저 사라지는 것은 질문이다. 이 질문의 실종이야말로 민주주의를 갉아먹는 가장 은밀한 방식의 폭력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금융그룹의 최고 책임자를 떠올리게 된다. 조직의 문화는 회장의 언어와 선택을 닮기 마련이다. 과거 관료 조직과 금융 시스템의 한복판을 거쳐온 인물이 보여온 행보와 태도는, 오늘 우리금융의 의사결정 방식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문제는 개인의 이력이 아니다. 그 이력이 어떤 가치관과 권력 인식을 형성했는가다. 비판을 관리의 대상으로 보고, 통제를 효율로 착각하며, 질문을 불편함으로 여기는 사고방식. 이것이 조직에 이식된다면, 그 기업은 필연적으로 언론을 파트너가 아닌 조정 대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렇다면 질문은 하나로 수렴된다. 이런 인식과 방식으로 과연 우리금융의 회장을 다시 맡겠다고 나서는 것이 정당한가. 더 나아가, 그것을 용인하는 구조 자체가 대한민국 사회의 성숙을 말할 수 있는가.
언론을 관리 대상으로 삼는 금융권력, 비판을 비용으로 계산하는 경영 철학, 침묵을 거래의 전제로 삼는 광고 집행.
이 모든 것은 과거로부터 우리가 벗어났다고 믿어온 장면들이다. 그런데 지금, 그 장면들이 다시 재현되고 있다. 단지 군복 대신 사복을 입었을 뿐이다.
지이코노미는 이 사안을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광고를 무기로 삼아 언론을 길들이는 행태, 비판을 배제의 기준으로 삼는 기업 문화, 그리고 그 책임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끝까지 추적하고 고발할 것이다.
동아일보 광고 탄압 사태는 역사로 기록됐다. 지금 벌어지는 이 ‘신(新) 언론탄압’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기록하지 않으면 반복된다. 침묵하면 구조가 된다.
총칼 없는 탄압이 더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합리와 효율의 언어로 포장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포장을 벗겨내는 것, 그것이 지금 언론이 해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