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문채형 기자 | 재개발 사업의 출발점이자 정당성의 근거는 조합원 의사에 기반한 공개적 의사결정 구조다. 수천억 원 규모의 사업일수록 절차는 더욱 투명해야 하며, 정보는 소수가 아닌 전체 조합원과 공유되는 것이 원칙에 가깝다.
그러나 장위15구역 공사비 협상 과정에서는 이 기본 질서와 다른 흐름이 포착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건설과의 협상을 위해 구성된 9인 협상단의 운영 방식이 조합원 참여를 배제한 채 정보 접근을 제한하는 구조로 작동했다는 논란이다.
특히 협상단 내부 논의는 조합원에게 차단된 반면, 시공사 측 인사가 협상 과정에 관여한 정황이 공개되면서 문제는 단순 운영 논란을 넘어 재개발 의사결정 구조의 근본적 정당성을 묻는 단계로 확산되고 있다.
■ 협상단 9인 구성…선정 기준은 공개되지 않았다
조합 측 설명에 따르면 협상단은 현대건설 입찰제안서와 조합 제안서를 비교·검토해 수용·거부 사항을 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사실상 수천억 원 규모 사업 조건을 좌우하는 핵심 기구다.
그럼에도 협상단 구성 과정의 공개성, 전문성 검증, 조합원 대표성 확보 기준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일부 조합원은 “재개발·건설·회계 등 전문성을 갖춘 인물 중심으로 구성됐는지조차 알 수 없다”고 말했다.
■ 조합원에겐 ‘비밀’, 시공사엔 ‘동석’…뒤바뀐 정보 흐름
논란의 중심에는 비밀유지 서약서가 있다. 협상단 참여자들은 논의 내용을 조합원에게 사전 발설하지 않고, 이를 위반할 경우 즉시 사퇴와 보수 포기까지 감수한다는 강한 비밀 의무를 서약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조합이 발간한 소식지에는 협상단과 현대건설 임직원 2명이 함께 회의하는 장면이 사진과 함께 공개됐다. 협상단 운영의 투명성을 강조하는 취지로 소개된 이 장면은, 오히려 시공사가 협상 구조에 일정 부분 접근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정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만약 이러한 운영 방식이 사실이라면 정보 흐름은 근본적으로 뒤바뀐 셈이다. 협상의 최종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조합원들은 협상 내용에 접근하지 못하는 반면, 협상 상대방인 시공사는 협상단 구성과 논의 분위기를 인지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의미다. 이는 협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정보 비대칭 상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총회에서 제기된 관련 질문 역시 충분한 설명 없이 넘어갔다는 증언이 이어지면서, 비밀유지 서약서가 협상 보호 장치가 아니라 조합원 배제 장치로 작동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 비밀유지 서약서…보호 장치인가, 통제 장치인가
협상 과정에서 일정 수준의 비밀유지는 일반적이다. 그러나 비밀의 대상이 누구인가가 핵심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합원이 아니라 시공사로부터 지켜야 할 정보가 거꾸로 조합원에게 차단됐다면, 이는 단순한 운영상의 문제가 아니라 조합 민주주의 원칙과의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
정비사업 전문 법률가 나도연 변호사는 “협상 정보 보호는 필요하지만 그 보호 대상은 원칙적으로 협상 상대방인 시공사이지 조합원이 아니다”라며 “협상 정보가 조합원 의사결정 권리를 침해하는 수준으로 제한될 경우 총회 의결의 적법성이나 계약 체결의 절차적 정당성까지 다툼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표성과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중대한 계약이 체결됐다면, 민사상 무효 주장이나 총회 결의 취소 소송으로 확장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 반복되는 정보 통제 논란…권력 구조 문제로 확장
앞선 시리즈에서 드러난 △조합원 명부 유출 의혹 △서울시 실태조사 결과 충돌 △내부고발 이후 고소전 등은 모두 정보 통제와 의사결정 집중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번 협상단 논란 역시 단순한 운영 문제가 아니라 재개발 권력 구조 전반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평가다.
한 조합원은 “우리는 분담금을 내고 책임을 지는 사업 주체인데, 정작 중요한 결정 과정에서는 계속 배제되고 있다.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누가 무엇을 결정하는지 알 수 없는 구조에서 동의만 요구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조합이 조합원을 믿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조합원이 믿지 못할 결정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 “소통이 싫다면 물러나라”…조합장 책임론 확산
재개발 공사비 협상단은 시공사로부터 독립된 협상 기구여야 한다. 협상단 구성과 내부 논의는 최소한 시공사에는 철저히 차단돼야 하며, 이는 협상 공정성의 기본 원칙이다. 그럼에도 시공사 임직원이 협상단 회의에 동석한 정황이 공개됐다면, 이는 협상 기밀 구조 자체가 흔들린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정보 흐름이 거꾸로 작동했다면 이는 개인 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조합 운영 철학, 나아가 재개발 의사결정 구조의 방향성에 관한 문제다. 조합장은 권력을 가진 자리가 아니라 조합원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자리다. 그 전제는 소통과 투명성이다.
논란이 된 협상단을 해체하고 조합원 투표를 통해 대표성과 전문성을 갖춘 구조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협상 원칙과 기준 역시 조합원에게 설명 가능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결국 질문은 단순하다. 조합원과의 소통이 부담스럽고, 의사결정 공개가 불편하다면 그 자리는 개인의 자리가 될 수 없다. 재개발에서 소통을 거부하는 리더십은 결국 정당성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까지 나온다. “소통이 싫다면, 이제는 물러날 때다.”
※ 다음 편 예고
[재개발 비리 추적 | 장위15구역⑤] 반복된 고소의 끝은 어디인가…조합장 사법 리스크 전면 추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