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스토리] ‘더CJ컵 바이런 넬슨’ 개최 기념, 바이런 넬슨 골프 클래식을 아십니까

2024.05.03 08:12:27

한국 기업인 CJ그룹과 바이런 넬슨이라는 레전드의 이름을 딴 대회의 컬래버레이션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바이런 넬슨의 여러 가지 업적 중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그의 ‘대기록’을 소개하며 ‘뽕’을 채워보려 한다.

 

EDITOR 박준영

자료 박노승〈더 멀리 더 가까이〉 도서출판 충영

 

 

PGA 투어의 5월 중 가장 큰 이벤트는 단연 시즌 두 번째 메이저 대회인 PGA 챔피언십(올해는 5월 3주 차)이지만, 정규 투어에서 단 2개뿐인 선수의 이름을 건 대회 중 하나도 5월에 개최된다. ‘바이런 넬슨 골프클래식’이다. 주로 PGA 챔피언십 직전에 개최되는 이 대회는 2023년까지는 통신사인 AT&T가 후원했지만, 올해부터 한국 기업인 CJ그룹이 타이틀 스폰서 계약을 맺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따라서 올해 이 대회의 정식 명칭은 ‘더CJ컵 바이런 넬슨’이다.

 

선수 이름 붙인 단 2개의 정규 투어 대회
CJ는 2017년부터 대한민국 최초의 PGA투어 정규 대회인 더CJ컵을 개최해왔다. 첫 3년간은 클럽 나인브릿지 제주에서 개최했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는 미국에서 3년간 개최했다. 로리 매킬로이와 저스틴 토머스, 브룩스 켑카 등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인기 있는 선수들이 이 대회에서 우승하며 PGA 투어의 주요 대회로 자리 잡았다.


더CJ컵은 통상 가을 시즌에 개최되는 대회였는데 PGA 투어가 올해부터 단년제 시즌으로 다시 바뀌면서 1~8월까지는 정규 시즌과 플레이오프가 진행되고, 9~12월까지는 차년도 PGA 투어 출전 자격을 확정하는 ‘가을 시즌’을 진행하기로 했다.

 

다시 말해 정규 시즌은 메이저 대회와 시그니처 대회, 풀-필드 대회로 구성되고, 가을 시즌엔 페덱스컵 71위 이하 선수들의 시드권 경쟁이 치러지게 됐다는 얘기다. 이에 CJ는 기존의 가을 대신 매년 5월, 그것도 PGA 챔피언십 직전에 열리는 ‘바이런 넬슨 골프클래식’과 타이틀 스폰서 계약을 맺어 ‘더CJ컵 바이런 넬슨’으로 개최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 3월 LPGA 투어에서 한국 선수 박세리의 이름을 건 ‘퍼힐 박세리 챔피언십’을 개최한 것만큼이나 우리 기업이 ‘바이런 넬슨’의 이름이 붙은 대회의 스폰서가 됐다는 건 ‘국뽕’이 자극되는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PGA 투어에서 선수의 이름을 걸고 있는 건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과 ‘바이런 넬슨 골프클래식’, 즉 ‘더CJ컵 바이런 넬슨’ 뿐이고, 특히 ‘바이런 넬슨 대회’는 PGA 투어 역사에서도 최초로 선수 이름을 걸고 치러진 유서 깊은 대회이기 때문이다.


대기록의 전조, 1944년에 시작됐나?
PGA 투어의 ‘바이런 넬슨 골프클래식’은 1944년 시작된 미국 댈러스 지역의 대표적인 대회다. 처음부터 이 명칭은 아니었고, 1968년부터 바이런 넬슨의 이름이 걸렸다.


미국 텍사스주에 속한 댈러스 지역은 미국 4대 대도시 중 하나로 4대 주요 프로 스포츠 구단을 보유해 미국 내에서도 대표적인 스포츠 도시로 손꼽힌다. 따라서 이 대회도 매년 20만 명의 갤러리가 찾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대회의 초대 우승자가 바이런 넬슨이다.


이 대회가 시작되기 1년 전인 1943년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모든 프로골프 대회가 전면 중단된 해다. 골프 선수들도 속속 군에 입대하기 시작했다. 당시 벤 호건은 공군으로 샘 스니드는 해군으로 입대했는데, 바이런 넬슨은 신체검사에 두 차례나 불합격해 입대를 포기해야 했다. 대신 군인들을 위한 시범경기나 적십자 모금 운동을 위한 경기를 다니며 봉사 활동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이후 1944년 프로골프 대회가 재개됐는데,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선수보다 기량이 유지된 바이런 넬슨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바이런은 1944시즌 23개 중 21개 대회에 참가했고 우승 8회, 준우승 5회, 3위 5회, 4위 1회, 6위 2회 등 대단한 활약을 보였다. 그해 그가 벌어들인 총상금은 3만7천 달러로 사상 최고액이었다.


사실 바이런 넬슨의 1944시즌도 그의 ‘몬스터 시즌’임에 부족함이 없었다. 평균 타수는 69.67타였고, 총 라운드 중 오버 파를 기록한 건 3번에 불과했다. 그러나 바이런 넬슨의 ‘몬스터 시즌’은 1944년이 아니라 1945년으로 기억된다.


바이런 넬슨의 ‘To Do List’
1944시즌을 마무리한 바이런은 은퇴 전의 버킷리스트를 구상 중이었고, 2가지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다.


첫 번째는 우선 돈을 많이 벌어 큰 땅을 사 농장을 만들고, 소를 키우며 살아가자는 것이었다. 1944년 처음으로 큰돈을 번 바이런은 예산 계획을 짜봤다. 몇 년 안으로 목표 금액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번째 목표는 은퇴하기 전에 골프 역사에 남을 기록을 세우고 싶었다. 최저 평균 타수와 최저 토너먼트 우승 스코어를 갱신하고, 상금왕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연습해야 할지 자기 게임을 다시 분석했다. 칩 샷 실수가 잦았으므로 특히 이를 보완했고, 멘탈 문제로 부주의한 샷을 해 어이없는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발견했다.


바이런은 드라이브 샷을 페어웨이로 치고, 다음 샷은 쉽게 그린에 올리고, 퍼트하는 일련의 과정이 지루하게 느껴져 자기도 모르게 무성의하고 부주의한 샷을 치게 됐다고 분석했다.


이렇게 구체적인 목표를 세운 바이런은 매번 샷을 할 때마다 농장을 떠올리기로 했고, 즉시 효과가 나왔다. 부주의한 샷이 크게 줄었음은 물론 중요한 퍼트를 준비할 때는 ‘이 퍼트에 땅 몇 평이, 소 몇 마리가 달려 있다’는 식으로 생각했고, 그러면 그는 무서우리만치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준비한 그가 이듬해 어떤 퍼포먼스를 선보였는지는 알 사람은 알 것이다.
최근 자기계발 부문의 화두인 ‘구체적 목표 설정’의 중요성과 실효성이 명백히 증명된 사례가 아닐까. 이게 요즘 말하는 To do list가 아니고 뭔가.

 


1945시즌 PGA 투어는 ‘넬슨 천하’
KLPGA에서 한 시즌을 거의 씹어먹다시피 한 선수가 있을 때 그의 이름을 따 ‘○○천하’라고 부르는 것이 한때 유행이었던 적이 있다. 최근 가장 임팩트 있던 건 박민지의 ‘민지천하’였다. 2021년과 2022년 각각 6승을 거두고 11개 대회에서 톱10에 이름을 올리며 2년 연속 상금왕을 달성했다.

 

이는 신지애, 김하늘, 이정은6에 이어 역대 4번째 기록이었다. 이제 막 날갯짓을 시작한 KLPGA를 PGA의, 그것도 전설적인 인물의 사례와 비교하며 ‘억까’하려는 건 아니니 안심하자. 뒤에 나올 바이런 넬슨의 위업을 강조하기 위한 빌드업일 뿐이다.


자, 이제 1945년 바이런 넬슨의 성적을 나열해본다. 먼저 그는 총 30개 대회에 참가했고, 우승은 18회다. 아직 놀라긴 이르다. 18승과 더불어 그는 2위 7회, 3위 1회, 4위 2회, 6위 1회, 9위 1회를 기록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우승하지 못한 대회 수를 다 더해보자. 무릎을 탁 쳤나? 1년간 참가한 모든 대회에서 우승한 18개 대회를 포함해 전부 TOP10에 들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아직도 놀라긴 이르다. 이 해에 바이런 넬슨이 새로 쓴 기록을 보자. 최다 연속 우승이 있다. 11연승이다. 18승 기록도 역대 최다승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었다. 거기에 최저타 우승 기록도 있는데 합계 259타다. 이걸 4로 나눠보면 64.75타다. 4일간 매일 8언더파라는 얘기다.

 

최저 평균 타수 기록도 68.33타로, 최다 상금액도 6만337달러로 그간의 기록을 새로 썼다. 이 정도면 추가로 기록을 찾아보지 않더라도 ‘전관왕’이었을 것 같다. 특히 상금액 60,337달러는 현재 가치로 천만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되는데, 한화로는 약 140억 원이다. 골프 역사상 바이런 넬슨처럼 한 시즌을 독식하며 지배한 선수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미스터 골프’가 된 바이런 넬슨
1945년 이러한 성과가 바이런 넬슨의 경쟁자들이 아직 군대에 있었던 덕분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반대로 샘 스니드가 26개 대회에 참가했고 벤 호건도 18개 대회에 참가했기 때문에 쉽게 독식할 수 있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물론 경쟁상대 면에서 샘 스니드와 벤 호건이 대회에 나왔다지만 그들도 전쟁에 나갔다 온 것이기에 내심 전자의 의견에 마음이 가기는 한다. 아주 없는 얘기도 아닐 거고.

 

그러나 평균 타수 68.33이라는 기록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이 기록은 2000년 타이거 우즈가 67.79타를 기록하기 전까지 55년간 깨지지 않았다. 바이런의 우승 비결에는 다른 선수보다 먼저 스틸 샤프트의 특성에 맞는 스윙을 개발해 실전에 적용한 선구자적 기질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새로운 스윙을 처음 봤던 진 사라센은 “임팩트 때 왼쪽 하체를 펴지 않기 때문에 땅을 파게 되니 위대한 선수가 될 수 있는 스윙이 아니다”라고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연습벌레의 정점인 사라센의 말이었고, 반은 맞았다. 바이런은 반대로 생각했다. 왼쪽 다리를 굽힌 채로 공을 치기 때문에 헤드를 스퀘어 상태로 오래 유지할 수 있고, 땅을 파지 않는 스윙이라고 믿었다.

 

이유가 뭐든 당시 US오픈과 디 오픈 챔피언 경력의 Tommy Armour의 증언이 바이런 넬슨의 1945년을 더욱 빛나게 한다. “바이런 넬슨은 골프의 최고 명인이었다. 높은 샷, 낮은 샷, 드로우, 페이드를 완벽하게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는 내가 본 골퍼 중 최고다. 나는 보비 존스의 전성기 플레이도 직접 봤지만, 넬슨은 존스를 능가한다.”

그리고 언론에서는 바이런을 ‘미스터 골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Can Nelson win again?”
1945년 바이런 넬슨은 시즌 개막 후 꼭 우승하고 싶었던 개막전인 LA 오픈에서 아쉽게 우승을 놓쳤지만 첫 9개 대회에서 3번의 우승과 5번의 준우승을 하며 순조롭게 시즌을 시작했다.


이후 4개 대회 연속 우승을 하게 되면서 Johnny Farrell의 연승 기록과 타이를 이뤘고, 다음 대회인 애틀랜타 오픈에서 합계 263타로 대회 레코드를 1타 차로 갱신하며 5연승을 만들었다. 미디어와 골프 팬의 관심은 이제 ‘연승 행진이 어디까지 가는지’가 됐다. 신문의 헤드라인은 언제나 같았다.

 

“Can Nelson win again?”


관심이 과도하게 집중되자 바이런은 연습 라운드를 포기하고 경기에 나서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코스라도 상관없었다. 코스가 어떻든 페어웨이 가운데를 목표로 스윙하면 되니까. 5연승을 달성한 후 2달 동안은 정규 대회가 열리지 않았고 6월 몬트리올 오픈으로 투어가 다시 시작됐다.

 

“다들 뭐해, 저 새끼 막아!”
좋은 감을 유지하기 위해 그간 열심히 시범경기를 다니던 바이런 넬슨이 여섯 번째 우승을 기록했을까? 무려 10타 차 우승으로 6연승마저 기록해버렸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바로 다음 주 필라델피아 인비테이셔널에서는 2타 차로 뒤지다가 마지막 6홀에서 5버디를 몰아쳐 역전승을 거뒀고, 이어진 시카고 빅토리 오픈에서 7타 차로 8연승까지 달성한다.


다음 대회는 PGA 챔피언십이었다. 예선 통과자 32인이 36홀 매치플레이를 벌여 5번을 이겨야 우승할 수 있었다. 이때 1회전에서 상대로 나선 것이 진 사라센이었다. 결과는 바이런의 3대 2 승리였는데 후문에 따르면 사라센이 주최측에 바이런과 매칭시켜달라고 했다고 전해졌다. 바이런의 연승가도를 저지하려는 작은 거인 다운 도전장이다.

 

2회전에서는 Mike Turnesa를 맞아 탈락 위기도 있었다. 마지막 4개 홀을 남기고 있었는데 Turnesa가 2홀 앞선 상태였다. Turnesa는 남은 4개 홀에서 파 3개, 버디 1개로 좋은 플레이를 했지만, 바이런의 몰아치기가 또 발동한다. 무려 버디-버디-이글-파였다. 결과는 1홀 차 바이런의 역전승이었다. 합계 7언더파를 치고도 패배한 Turnesa는 “아무도 바이런을 막을 수 없다”고 힘없이 말했다고 전해진다.

 

준결승에선 Claude Harmon을 만났다. 해외 티칭 프로의 레슨을 좀 본 골퍼라면 눈에 띄는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맞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교습가, 지구상의 최고 골프 코치 부치 하먼의 아버지다. 부치 하먼의 아버지 Claude는 68타를 치며 선전했지만, 바이런이 65타를 치는데 도리가 있나. 바이런의 승리였다.

 

대망의 결승전 상대는Sam Byrd였는데 강풍이 부는 날씨였기에 바람이 많은 텍사스 출신 바이런에게 유리한 경기가 됐다. 32번째 홀에서 승리한 바이런은 이제 9연승을 달리게 됐다. 바이런의 5번째이자 마지막 메이저 우승기록이다.

 

9연승째를 거두자 몸에 무리가 왔다. 바이런은 등과 허리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병원을 찾았다. 당연히 의사는 휴식을 권했지만, 바이런은 2주 뒤 시카고에서 열린 태머섄터 오픈에 출전을 강행한다. 합계 269타를 친 바이런은 2위 벤 호건과 진 사라센에게 무려 11타 차 우승을 거둔다. 이제 10연승째였다.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바이런의 연승 행진은 다시 바로 다음 주에 열렸던 멤피스 오픈에서 드디어 멎었다. 아마추어 선수인 Fred Haas가 우승했고, 바이런은 4위를 기록했다. 연승가도가 끊기면서 오히려 마음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났지만, 한편으론 만족스럽지 못한 플레이에 화가 나기도 했다.


연승도 연승이지만 꽤 많은 대회에서 압도적 기량으로 대승을 거둔 바이런 넬슨인 만큼 오랫동안 유지하던 긴장이 풀리며 그래도 ‘이만하면 다 이뤘다’고 할 만도 한데, 연승이 깨진다음 참가한 2개 대회에서 다시 트로피를 들어 올린다.

 

여기까지 오자 바이런도 잠시 걸음을 멈췄다. 2개 대회 우승 후 1주의 휴식기를 가졌다. 그렇게 1945년을 마무리했냐고? 휴식기 후 참가한 에스메랄다 오픈에서 다시 7타 차 우승을 했다.


그리고 다음 주에 열린 포틀랜드 오픈에서는 벤 호건이 261타 27언더파를 써냈고, PGA 최저 타수 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바이런은? 2위였다. 이제까지의 여정을 보면 이마저도 놀랠 노자다. 그러나 14타 차라는 큰 차이가 바이런 넬슨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게다가 다음 시합인 타코마에서는 시즌 중 가장 저조한 성적, 9위에 머물렀다. 여기까지만으로도 대단한 시즌을 보낸 바이런이었다.

 

끝이 아니었다. 다음 시애틀 대회에서 앞서 벤 호건이 세운 최저 타수 기록인 261타에 2타 앞선 259타로 우승하며 PGA 신기록을 다시 한번 갈아치웠고, 자존심을 회복했다. 참고로 여기까지가 시즌 17승째다. 아직 한 발 더 남았다는 얘기다.


‘마지막’ 18번째 우승은 포트워스 오픈이다. 본인이 캐디로 일했던, 자신의 홈 코스 글렌 가든에서 열린 대회에서 바이런 넬슨의 1945년 커리어 하이 스토리는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바이런 넬슨은 이듬해인 1946년에도 좋은 활약을 펼치며 8승을 거두고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후 귀농한 그는 여전히 상징적인 대회에는 나섰지만, 우승에 대한 열정이 사라졌음을 스스로 깨달았다. 이제는 농장 일이 자신의 새로운 천직임도 확인했다. 은퇴 후에도 골프계에 위대한 영향력을 끼치며 레전드의 풍모를 지켰다.


2024년 5월, 더CJ컵 바이런 넬슨
역사에 길이 남아 2024년 오늘까지도 ‘PGA 최다 연속 우승자’로 추앙받는 존 바이런 넬슨. 1974년 존 바이런 넬슨은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오른 그의 이름을 건 대회가 바로 이달인 5월, 더CJ컵을 타이틀 스폰서로 맞은 첫 번째 대회로 찾아온다. 한국 선수와도 인연이 깊은 이번 더CJ컵 바이런 넬슨이 어떤 스토리를 이어나갈지 설렘 포인트가 하나 더 늘었다.


그리고 은퇴를 앞두고 자신의 To do list를 세우고, 구체적 목표를 실행했으며, 성과를 얻었고, 끝내 버킷리스트를 이룬 바이런 넬슨이 시사하는 바는 단순히 골프에만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박준영 기자 901fguid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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