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 시선] 전남도 도민인권센터, ‘숨은 선행방’ 칭찬글 뒤엔 두 보호관 있었다

  • 등록 2025.05.14 15: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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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이코노미 김정훈 기자 | "직장에서 인간답게 대우받는 건 당연한 권리다. 그 권리가 무너졌을 때, 단단하게 손 내밀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지난 5월 9일, 전라남도 누리집 ‘우리동네 숨은 선행방’에 올라온 한 칭찬글의 도입부다. 글을 쓴 이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통받다가 인권침해 진정을 제기한 박주연 씨. 3년간의 복직 투쟁과 민사소송을 거쳐 마침내 명예를 회복한 그는, 이 긴 싸움의 길목마다 곁을 지켜준 두 사람의 이름을 또렷이 남겼다. 도민인권센터의 박현정, 민소담 보호관이다.

 

직장 내 괴롭힘은 이제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은 여전히 '불이익'과 '2차 피해'를 우려해 고통을 참거나 침묵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 내 인권침해 문제를 공론화하고, 공식적인 진정을 제기하는 것은 아직도 쉽지 않은 일이다. 박주연 씨 역시 그러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려운 길을 걸어가던 중, 그의 곁에서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도민인권센터의 두 보호관, 박현정과 민소담이다.

 

박씨는 "누군가 손을 내밀어준 순간이 있었기에 끝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손이 바로 보호관들이었다.

 

전라남도 인권센터는 2016년 개소 이후, 도민이 겪는 다양한 인권침해 문제를 보호하고 구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들은 행정기관 내 인권침해·차별, 괴롭힘, 사회복지시설 종사자의 노동권 침해, 장애인 이동권 제한, 지역차별·성차별 등 여러 분야에서 도민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신고 접수와 초기 상담을 시작으로, 사실관계 조사, 관련 기관 협의, 시정권고까지 전 과정을 다룬다.

 

업무는 행정처리나 법률 검토를 넘어선다. 피해자와 직접 대면하여 진술을 이끌어내고, 관련 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매우 힘든 일이다. 특히나 감정적으로 소진되기 쉬운 업무인 만큼, 보호관은 상담심리학적 소양까지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보호관이 독립적인 조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와 관계기관(시군, 출자출연기관, 민간위탁기관, 복지시설 등)을 상대로 독립적으로 조사를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실질적이고 중요한 내부 견제 역할을 한다. 감시가 아닌, 회복과 예방을 위한 공적 개입이 바로 보호관의 주요 임무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의 취지와 달리, 보호관은 대부분 비정규직 형태의 한시 계약직으로 채용된다. 이로 인해 부족한 인원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수많은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전남도 도민인권센터에는 지난 수년간 보호관 두 명이 1,800건이 넘는 상담과 수십 건의 진정 사안을 분담해왔다. 매년 증가하는 진정 건수에 비해 보호관 인력이나 시스템의 확충은 부족한 상태다.

 

박현정 보호관은 센터 개소 초기부터 지금까지 6년 넘게 한 자리를 지켜온 인물이다. 그는 "감정노동이라는 말을 꺼내는 게 사치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일상은 정신적, 정서적 소진의 연속이었다. 몇 차례 피진정인으로부터 모욕을 들었고, 진정인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루에도 수십 통의 항의 전화를 받는 일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보호관은 "누군가는 계속 해야 한다"며 묵묵히 자리를 지켜왔다. 특히 피해자 중심 접근을 원칙으로 삼고 있는 그의 태도는 인상 깊다. 그는 “처음 센터에 왔을 때 울던 분이 몇 달 뒤 밝게 웃으며 인사하러 오신 적이 있어요. 그 한 번의 웃음이, 수십 건의 비난보다 오래 남더라고요”라며, 그 일을 해나가는 데 있어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민소담 보호관은 박 보호관과 함께 약 1년간 호흡을 맞춰왔다. 그는 젠더 이슈와 성평등 의제에 전문성을 가진 인물로, 성희롱·성차별 사안에 적극 대응하며 실질적인 개선을 이끌어왔다. 그동안 함께 대응한 사건 중에는 복지시설 내 인권침해, 도청 산하 기관에서의 부당 해고, 청년 노동자의 정서적 학대 등 민감한 사안들이 많았다. 민 보호관은 이제 경기도 성평등 전문관으로 자리를 옮길 예정인데, 센터 내부에서는 그의 공백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들의 노고는 제도의 사각지대를 메워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도민인권센터는 조사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강제적인 조치 권한은 없다. 법적 판단은 결국 법원이나 감사기관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은 "내 이야기를 믿고 끝까지 함께 가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얻는다.

 

전라남도는 최근 인권 행정을 강화하려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 도민인권 보호 조례가 개정되며 인권옹호관 제도와 인권영향평가 등의 확대가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현장에서 이를 실천할 인력과 시스템은 부족한 상태다. 박현정 보호관은 "누군가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계속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번 칭찬글은 단지 한 사건에 대한 감사의 표현을 넘어서, 제도적 한계 속에서도 사람의 공감과 신념으로 인권을 지켜내는 이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인권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당연한 권리가 무너졌을 때, 그걸 다시 회복시켜주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 절차를 포기하지 않는 일"이라는 박현정 보호관의 말은 현재 인권 행정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말해주고 있다.

 

박 보호관은 "행정조직 안에서 인권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늘 외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다른 무엇보다 동료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칭찬글은 단순히 감사의 메시지를 넘어서, 도민 한 사람의 권리가 어떻게 회복되는지를 보여주는 작지만 중요한 기록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소리 없이 싸우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그 곁을 함께 걸으며 버텨주었다. 그것이 바로 감시와 규제의 이름이 아닌, 공감과 신뢰의 태도로 이루어지는 진정한 인권 보호의 모습이다.

 

인권이라는 단어가 때때로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 본질은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을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이어온 이들이 지금도 있다.

 

김정훈 기자 jhk71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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