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김정훈 기자 | 오는 12월 16일(화), 전라남도 나주시가 대한민국 과학기술지도에 진하게, 또렷하게 이름을 새긴다. 이날 오후 3시 30분, '인공태양 연구시설 유치 환영행사'가 나주종합스포츠파크 다목적체육관에서 열린다.
이날 행사에는 전라남도와 나주시를 비롯해 정치권, 학계, 시민단체, 공공기관 관계자 등 900여 명이 모인다. 열을 환영하는 자리가 아니다. 에너지 주권과 탄소 없는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장면이다. 축하를 넘어선다. 대한민국이 오래도록 준비해온 '에너지 독립'과 '탈탄소 사회'라는 무거운 숙제가, 나주라는 조용한 도시에서 현실이 된다.
‘인공태양’ 이름부터 장대하다. 태양 내부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을 지구에 끌어내려는 인류의 오랜 꿈. 방사능 걱정 없고, 탄소 배출 없고, 연료는 바닷물 속에 풍부한 중수소. 말하자면, 바다에서 태양을 끌어올리는 기술이다. 폭발 위험도 없고, 안전성과 효율성을 모두 갖췄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것을 '21세기의 에너지 혁명'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왜 하필 나주인가. 나주는 이미 한전 본사를 중심으로 한 빛가람혁신도시의 심장이다. 에너지 관련 국가기관이 웅성거리는 이곳, KIER(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전력거래소, 한전KDN, 에너지공단, 전기안전공사까지. 이름만 들어도 전력과 에너지의 판이 깔려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했다. 이번 유치는 시민사회, 정치권, 행정이 삼각 편대를 이뤄낸 결과였다.
나주시는 일찌감치 ‘인공태양 유치 시민추진위원회’를 꾸렸다. 시민들과 청년들이 거리로 나섰고, 서명하고 외쳤고, 열정을 공론화로 만들어냈다. 이는 '민·관·정 3각 공조'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진짜 협치의 장면이었다. 나주의 에너지는 기술만이 아니었다. 사람의 열기였다.
윤병태 나주시장은 “이번 유치는 한 도시의 성과를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향한 제안”이라고 강조했다. 김영록 전남지사도 "지방과 중앙이 손잡으면 못할 일 없다"며 힘을 보탰다.
행사는 시립예술단의 식전 공연으로 막을 연다. 주요 인사 환담이 있고, 본행사에선 환영사, 기념 영상 상영, 유치선언 퍼포먼스가 이어진다. 퍼포먼스에는 시민, 청소년, 기관장이 모두 함께 나선다. 핵융합 반응을 시각화한 장면이, 그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진다. 마지막엔 초청 가수의 공연으로 마무리된다. 딱딱한 행사를 넘어, 시민들과 함께 박수 치고 즐기는 열린 무대다.
이 연구시설 유치는 단지 표지석 하나 박는 수준이 아니다. 수백 명의 전문 연구 인력과 운영 인력이 투입된다. 융합연구센터, 실증센터, 에너지 스타트업 허브가 함께 들어선다. 나주는 이제 '기반시설 있는 도시'에서 '기술을 창출하는 도시'로 변신을 예고한다.
그 변화는 곧장 산업지형에도 반영된다. R&D 중심의 첨단 산업 생태계가 자리 잡고, 에너지 관련 부품·소재·장비 산업까지 줄지어 일어선다. 짧은 일자리 몇 개가 아니다. 구조 자체가 달라진다.
지방대학과 연계한 교육, 청소년 과학 캠프, 시민 대상 강좌도 활짝 열릴 예정이다. 공장만 짓는 게 아니라, 미래를 함께 배우는 도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나주라는 도시는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한국은 이미 ITER(국제핵융합실험로) 프로젝트의 핵심 참여국이다. 협력 경험도, 기술력도 있다. 나주는 국제 공동연구와 기술 실증의 테스트베드가 될 수 있다. 기술 주권은 기본이고, ‘에너지 외교’라는 이름으로 국가 전략의 한 축이 되어간다.
기술 공유, 국제 표준 제정, 연구자 교류 이른바 ‘한국판 ITER 네트워크’가 현실이 되면, 나주는 세계 과학자들이 모여드는 글로벌 사이언스 시티가 된다.
이번 유치를 지방 프로젝트의 성공으로만 보는 건, 표지만 읽는 것과 같다. 이건 기후 위기, 에너지 고갈, 지역 소멸이라는 3대 위기에 맞선 하나의 거대한 실험이자, 시대적 전환점이다.
오는 16일, 나주는 태양을 맞이하는 도시가 아니다. 미래를 껴안는 도시가 된다. 대한민국이 에너지 강국으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나주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유치한 건 태양이 아니다. 미래다.”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