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이코노미 김정훈 기자 |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개인의 몫이 된 사회에서, ‘함께 키운다’는 말은 종종 공허하다. 출산 장려를 외치는 정책은 넘쳐나지만, 정작 그 이후의 삶은 여전히 외롭다. 그래서 장흥군의 실험은 낯설고도 의미심장하다. 이곳은 출산·육아를 행정의 영역에서 ‘문학’이라는 감성의 언어로 끌어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아이가 자란다, 장흥이 잘한다."
장흥군은 지금 ‘노벨 성장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독특한 여정을 걷고 있다. 임산부와 영유아 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치유 프로그램인데, 중심에 놓인 건 놀랍게도 ‘문학’이다. 생애초기 건강관리사업의 일환으로 4월부터 9월까지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육아 정보 제공이나 산후 관리 차원이 아니다. 마음의 돌봄, 정서의 연결, 그리고 감성의 회복을 꾀하는 시도다.
‘자유부인 힐링타임’, ‘노벨맘 힐링테라피’, ‘오감 놀이터’, ‘다함께 다정한 문학육아’. 프로그램의 이름만 보아도 단순한 행정사업의 어투는 찾기 어렵다. 오히려 한 편의 시처럼 들린다.
문학과 태교, 놀이와 정서안정, 다문화 감수성까지 포괄하는 이 프로그램은 출산을 사회가 함께 껴안는 문을 문학으로 열고자 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문학’일까.
장흥은 문학적 토양이 깊은 고장이다. 이청준, 한승원, 천승세 같은 작가들이 태어난 곳이며, 문학과 치유, 자연이 어우러진 문화적 실험을 이어온 지역이다. 이 지역이 품고 있는 서사는 단지 과거의 자랑에 머물지 않는다. 그 서사를 현재의 삶에, 미래 세대의 성장에 연결하려는 시도가 바로 ‘노벨 성장 프로젝트’다.
이 사업은 아이를 돌보는 시간을 공동체가 감싸 안자는 제안이다. 육아의 고립에서 벗어나 정서적 지지를 얻고, 문학이라는 언어를 통해 부모와 아이, 지역이 서로를 돌보는 관계망을 만들자는 철학이 깔려 있다. 경제적 지원보다 정서적 기반을 더 먼저 세우겠다는 선언이다.
짧은 프로그램이지만, 참여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몸도 마음도 따뜻해지는 경험이었다”, “혼자가 아니란 걸 느껴 위로받았다”는 말이 이어졌다. 그 말 속에는 지금 우리 사회가 간절히 필요한 문장이 숨어 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짧지만 깊이 울리는 말.
장흥군의 시도가 모든 해답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실험이 행정의 문법이 아닌, 사람의 언어로 삶을 바라보려는 시도라는 점이다. 정책도 감성이 필요하고, 행정도 서사를 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귀한 예다.
출산율을 높이는 일보다 더 근본적인 건 아이를 기르는 삶을 존중하는 일이다. 장흥은 지금 그 존중을 ‘문학’이라는 방식으로 풀어가고 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도시도 함께 자란다. 아이를 품은 도시가 되어가는 과정, 장흥은 그 길 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