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원 대하소설 ‘파시’] 적벽강 죽막동 해적 1

  • 등록 2025.12.05 14:45:42
크게보기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갑신년 중추 칠망이 뜨는 날, 물때는 한사리다. 칠산바다는 적벽강 갯바닥 깊은 속살까지 드러냈다가 물참 때가 되자 여울굴 안까지 밀물을 밀어 넣었다.

 

이틀 전, 중추절 해거름부터 하늘을 뒤덮었던 먹구름은 가고 하늘은 맑았으나 바다는 여전히 거칠다. 밀물이 들자 벼락바람이 윙윙거렸다.

 

하얀 물거품을 뒤집어쓴 칠산바다의 물너울이 육지를 집어삼킬 듯 치렁댄다. 채석강과 적벽강에는 벼락바람이 몰고 온 물벼락이 쏟아졌다.

 

여울굴 입구 칠십 척 적벽도 앉은벼락에 흔들린다. 태고적 개양할미와 여덟 딸이 살았다는 여울굴에 칠산바다의 성난 너울이 하얀 갈기를 곧추세우고 세차게 밀려든다. 바닷물이 밀려들면 칠산바다는 여울굴 구석구석의 기암괴석을 할퀴며 암벽 몇 점이라도 떼어내려는 듯 몸부림친다.

 

그때마다 천지를 뒤흔들 굉음이 울려 퍼진다. 귀신의 곡소리가 섞인 그 요란한 울림에 강한 심장 가진 사람도 금세 오슬오슬 떨며 오한을 느낀다.

 

그러나 바닷물이 칠산바다로 빠져나가면, 여울굴은 어머니 품같이 포근하다. 잠시 머물다 몽돌 사이로 빠져나가며 읊는 칠산바다의 노랫소리는 잘난 자식도, 못난 자식도, 고운 자식도, 미운 자식도 가리지 않고 품어 삐쩍 마른 젖꼭지를 배고픈 아이의 입에 물려 잠재우는 어머니의 자장가 같다.

 

어둠이 내린 뒤, 죽막동 대숲을 흔드는 바람결엔 칠산바다에서 죽어간 어부들의 한숨이 엷게 실린 듯하다. 윙윙거리는 죽막동 시누대 대숲에서 봉두난발의 사내 두 명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빠져나왔다. 차림과 낌새로 보아 때론 칠산바다를 누비고 때론 변산반도에 몸 숨기는 해적 무리 같다.

 

그 중 한 사람은 애꾸눈인 꺼꾸리. 구릿빛 얼굴, 골 깊은 주름살, 낫살을 좀 먹은 듯하다.

또 한 사람은 관자놀이에 깊이 팬 일자 흉터가 있는 앙얼. 젊어서 칼침을 맞은 듯하다. 

 

두 사람의 나이는 삼십 초반으로 뵌다. 불혹의 나이를 멀리 두고 있음에도 겉늙어 보인다.

죽막동 좁은 오솔길, 두 사람이 상체를 바짝 낮추고 줄지어 걷는다. 며칠을 굶어 속이 텅 비었는지 두 사람의 눈엔 힘이 없다. 그들의 치아는 옥수수 알처럼 흩어져 가관이다.

 

앞길 뒷길을 경계하며 걷는 두 사람이 가는 길은 수성당 초입이다.

 

“수성당 안에 떡도 읎고, 과일도 읎으믄, 앞으로 꺼꾸리 니 새끼 말은 콩으로 메줄 쑨다혀도 믿덜 않는다 잉!”

 

앙얼이 꺼꾸리에게 한 마디 던진다.

 

“그리서 꺼꾸리 니 새낀 여글 가나 저글 가나 맨날 찬밥신셀 면치 못허는 것여!”

 

앙얼이 다시 들이대지만 꺼꾸리는 대꾸없이 눈만 멀뚱거린다.

 

“수십년지기 칭구도 믿덜 못 허는 니놈을 이 시상에 언놈이 믿것냐? 그리서 넌 새꺄, 으딜가나 사람 대접을 못 받는 것이여 임마!”

 

꺼꾸리가 앙얼의 말을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로 흘려보내는데, 수성당 근처에 이르자 앙얼이 입술을 파르르 떨며 속말 내뱉는다.

 

“내에 내가 임마, 니 새낄 미잇 믿덜 못혀서 그러는 것이 아니랑께 그러네!”

 

앙얼이 생뚱맞는 소리를 지껄이자 꺼꾸리는 잠시 머리를 굴리다 공격적인 태도로 말길을 바꾼다.

 

“수성당 안에 처먹을 것이 읎으믄 어찌고 저찐다고, 아까부텀 너 멫 번을 씨부렁거렸는디, 대관절 묻 땜시 이러냐고, 시방?”

 

“시일 실은 말이여, 그 하알 할매가…”

 

“할매라니? 너그 할매가 우리 할매가?”

 

“개에 개양할매가…”

 

“무신 개떡 같은 소리여! 글씨 개양할매가 누군디?”

 

“으따 그 새끼, 말귈 못알어 듣네 그랴. 쩌그 수우 수성당 하알 할매가 개에 개양할매랑께 그라네!”

 

앙얼의 몸이 갑자기 뻣뻣해졌다. 엄동설한에 꽁꽁 얼어붙은 동태꼴이다. 꺼꾸리가 “카악! 카악!” 가래침을 돋워 “퉤!” 뱉으며 애꾸눈을 사납게 굴린다.

 

“이런 학십읎는 놈이 있나! 수성할매가 워찌기 개양할매냐고?”

 

꺼꾸리가 앙얼을 개무시한다. 앙얼은 움푹 팬 핏발 선 눈으로 말을 덧댄다.

 

“비이 빙신 다알 달밤에 체에 체조헌다뎅 시이 시방 이 새끼가 꼬오옥 그으 그짝이고만!”

 

꺼꾸리의 목울대가 한 번 꿀꺽 말라붙듯 흔들린다. 앙얼의 입에서 ‘병신’이라는 말이 튀어나온 직후, 꺼구리의 외눈깔이 뒤집혔다. 벌써 그의 오른손엔 날카로운 비수가 들렸다. 홑바지 뒷 괴춤에서 비수를 꺼낸 모양이다. (계속)

서주원 기자 arikore@naver.com
Copyright @G.ECONOMY(지이코노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특별시 서초구 언남5길 8(양재동, 설빌딩) 2층 | 대표전화 : 02-417-0030 | 팩스 : 02-417-9965 지이코노미(주) G.ECONOMY / 골프가이드 | 등록번호 : 서울, 아52989 서울, 아52559 | 등록(발행)일 : 2020-04-03 | 발행인·편집인 : 강영자, 회장 : 이성용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 방제일) G.ECONOMY의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2 G.ECONOMY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olf0030@kaka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