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 시선] "주민 손으로 만든 안전망, 함평 구기산마을 화재 초동 진압 빛나다"

  • 등록 2025.06.03 13:36:07
크게보기

 

지이코노미 김정훈 기자 | 전남 함평군 구기산마을. 이 조용한 시골 마을이 지난 5월 29일, 짧지만 긴박했던 순간을 겪었다. 오후 4시경 마을 배수구 인근에서 발생한 불씨가 자칫하면 큰 화재로 번질 뻔한 상황. 하지만 불길은 이내 잡혔다.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침착한 대응 덕분이었다.

 

불을 끈 건 소방관이 아닌 마을 주민들이었다. 가장 먼저 화재를 목격한 이들은 곧장 119에 신고했고, 누군가는 재빨리 마을 입구에 설치된 공용 소화기로 달려갔다. 불씨가 주변으로 번지기 전, 주민들은 불길을 막아냈다. 인명 피해도, 시설 손상도 없었다.

 

이 마을에 공용 소화기가 설치된 건 지난해 함평읍 주민자치회의 제안 덕분이었다. 마을 곳곳에 43개의 공동 소화기함이 설치됐고, 주민들은 사용법을 직접 익혔다. 그때의 교육이 이번에 그대로 살아난 것이다. “훈련 덕분에 당황하지 않았다”는 주민 김모 씨(63)의 말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훈련이 있었기에, 위기 앞에서 마을은 흔들리지 않았다.

 

함평소방서 관계자는 이번 사례를 두고 “공용 소화기 배치와 주민들의 숙련된 사용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소방차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화재가 진화된 뒤였다. 말 그대로, ‘주민 손으로 만든 안전망’이 제 역할을 해낸 셈이다.

 

이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부분의 화재가 ‘초기 5분’ 안에 대응 여부에 따라 피해 규모가 갈리는 만큼, 소방 인력이 도착하기 전까지의 대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고령 인구가 많은 농촌 마을에서는 주민 주도의 대응 체계가 사실상 유일한 ‘첫 방어선’이다. 그런데 구기산마을은 그 방어선을 스스로 세운 것이다.

 

무엇보다 이 시작이 '주민 제안'에서 비롯됐다는 점이 특별하다. 누구의 지시도 아닌,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위험을 인식하고 대비책을 만들었다. 함평읍 주민자치회는 이를 구체적인 사업으로 만들어 행정에 제안했고, 행정은 그 뜻을 받아들여 장비를 설치하고 교육을 마련했다. 공동체가 한 방향을 바라봤을 때 어떤 변화가 가능한지를 증명해낸 장면이다.

 

이상익 함평군수는 “이웃을 지키기 위한 주민 제안이 실제 생명을 지키는 장비가 되었다”며, “앞으로 더 많은 마을로 공용 소화기 설치와 안전 교육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구기산마을의 조용한 화재 진압은 우리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재난 앞에서 누가 가장 먼저 움직이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첫 움직임’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안전은 멀리 있지 않다. 준비된 한 사람, 움직이는 마을, 그리고 서로를 믿는 공동체가 가장 강력한 안전망이다.

김정훈 기자 jhk7111@naver.com
Copyright @G.ECONOMY(지이코노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특별시 서초구 언남5길 8(양재동, 설빌딩) 2층 | 대표전화 : 02-417-0030 | 팩스 : 02-417-9965 지이코노미(주) G.ECONOMY / 골프가이드 | 등록번호 : 서울, 아52989 서울, 아52559 | 등록(발행)일 : 2020-04-03 | 발행인·편집인 : 강영자, 회장 : 이성용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 방제일) G.ECONOMY의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2 G.ECONOMY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olf0030@kaka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