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이코노미 유주언 기자 |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을 올린 고려아연이 정작 주주와 약속했던 중간배당을 생략했다. 경영권 방어에는 수조 원을 쓰면서도, 배당 확대 공언은 뒷전으로 미룬 셈이다. 전문가들은 ESG 경영과 책임 있는 오너십을 외면한 전형적 ‘오너리스크’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분기배당 도입” 약속하고 불과 몇 달 만에 뒤집어
고려아연은 올해 상반기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하고도 중간배당을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 7일 열린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올해 중간배당 없이 결산배당만 하느냐”는 애널리스트의 질문에 회사 측은 “지난해 특수한 상황에서 대규모 자사주를 매입했고, 연내 소각 계획이 있어 올해 중간배당은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문제는 이 결정이 회사가 스스로 밝힌 배당 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이다. 고려아연은 2023년 ‘3개년 배당 확대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2025년까지 중간배당을 포함한 주주환원 확대를 약속했다. 올해 3월 정기주총에서도 분기배당 도입을 위한 정관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불과 몇 달 만에 이를 뒤집은 셈이다.

자사주 매입 명분은 ‘주주환원’… 실상은 ‘오너 방패막이’
회사가 밝힌 중간배당 생략 사유는 대규모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이다. 그러나 지난해 매입한 자사주는 일반적인 주주환원 목적이 아니라, 최대주주인 영풍·MBK파트너스 연합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최윤범 회장이 우호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회사 자금을 투입해 공개매수한 물량이다.
즉, 경영권 방어에는 수조 원을 쓰면서도, 주주에게 돌아갈 배당 재원은 줄어든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는 전형적인 오너리스크 사례”라며 “한 개인의 지배권 유지를 위해 법인 자금이 사실상 방패막이로 쓰였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주주 몫의 배당 축소로 이어졌다”고 꼬집었다.
ESG·CSR 원칙 무시… UNGC 정신에 역행
유엔글로벌콤팩트(UNGC)는 기업이 책임 있는 기업시민으로서 지속가능하고 포괄적인 글로벌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다른 사회 주체와 협력할 것을 촉구한다. ESG 경영의 핵심은 투명한 의사결정, 주주와 이해관계자에 대한 신뢰, 그리고 준법·환경·사회적 책임(CSR) 이행이다.
그러나 이번 고려아연의 결정은 이 원칙과 거리가 멀다. 경영권 유지라는 사익을 위해 주주와의 약속을 저버린 것은 준법·투명경영, 사회적 책임 이행 모두에 흠집을 낸 행위다. 전문가들은 “대기업은 시장의 모범이자 기준이 되어야 한다”며 “경영권 방어와 같은 사적 이익보다, 장기적으로 주주·사회와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 지속가능 성장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