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이코노미 김정훈 기자 | 지난 8일 저녁, 전남 영광 한빛원전 2호기에서 CVCS(화학·체적제어계통) 밸브 누설 사고가 발생했다. 44분 동안 3,600리터가량의 보조계통수가 유출됐고, 이 물은 보조건물 바닥과 내부 집수조로 흘러들었다.
그 원인은 유로전환 밸브가 비정상적으로 닫히면서 압력이 상승하고, 밸브 가스켓 부위에서 누설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핵심 계통에서 발생한 사고였지만, 한수원의 첫 반응은 의외로 간단했다. “방사선 준위 초과나 냉각재 누설이 없으니 보고 대상이 아니다.”
이 한 문장은 안전을 설명하는 언어라기보다, 마치 모든 책임을 벗어나는 면죄부처럼 들린다. 법적 보고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사고의 무게와 의미가 줄어들 수는 없다.
원전은 ‘조금의 위험도 허용하지 않는 시설’이어야 한다. 핵심 부품 하나가 고장 나도 안전이 흔들릴 수 있는 곳이 원전이고, 특히 설비 노후화가 진행 중이라면 이런 작은 틈이 더 큰 균열로 번질 수 있다.
문제는 한수원의 태도다. 안전문화의 기본은 ‘있는 그대로 알리고, 그에 맞게 대응하는 것’인데, 이번 사건에서는 그 원칙이 실종됐다. 법 조항을 앞세워 형식적으로 보고 의무를 피하는 동안, 지역 주민과 국민의 알 권리는 뒷전으로 밀렸다. 보고 대상이 아니면 알릴 필요도 없다는 발상은 곧 ‘숨겨도 된다’는 인식으로 굳어질 수 있다.
이 구조가 반복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소한 결함은 기록되지 않고, 경미한 사고는 보고되지 않으며, 위험 신호들이 하나둘 사라진다. 그러다 누적된 문제가 한꺼번에 터지면, 우리는 후쿠시마와 같은 비극 앞에 설 수 있다. 방사선 수치가 안전 범위에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안전한 것은 아니다. 체온계가 정상이라고 해서 환자가 건강하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번 사건은 법적 기준이 아니라 ‘신뢰 기준’에서 바라봐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건 ‘보고 대상 아님’이라는 문구가 아니라, ‘작은 일도 보고하고 대비한다’는 약속이다. 모든 사고를 숨김없이 기록하고, 설비 상태를 투명하게 공개하며, 노후 부품은 과감하게 교체하는 것. 그것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원전의 최소한이다.
안전은 법이 정한 최소선이 아니라,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에서 지켜져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보고 대상이 아니다’라는 네 글자를 버리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