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K COLUMN] 연덕춘(延德春)과 노부하라 도쿠하루(延原 德春)

  • 등록 2025.09.01 09: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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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덕춘

 

연덕춘은 누구이며, 노부하라 도쿠하루는 또 누구인가?

눈치 빠른 독자라면 곧바로 알아차릴 것이다. 괄호 안에 있는 한자 이름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연덕춘과 노부하라 도쿠하루는 같은 사람이다. 연덕춘의 일본명이 바로 노부하라 도쿠하루다.

그럼 연덕춘이란 이름을 두고 왜 굳이 일본 이름을 썼을까. 그건 본인의 뜻(自意)이 아니었다. 시대가 그랬다. 일제 강점기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도 마음대로 쓸 수 없었던 시대, 그게 바로 그때였다.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이란 게 바로 그런 것이다.

나라를 빼앗기면 모든 걸 잃는다. 우리말과 우리글도 사라진다. 그러니 연덕춘이란 이름 대신 노부하라 도쿠하루를 쓰게 된 것이다.

그 노부하라 도쿠하루가 연덕춘이란 본래의 이름으로 돌아오는 데 84년이 걸렸다. 1941년부터 2025년까지 딱 84년이다. 이름 뿐만 아니다. 국적도 되찾았다. 일본에서 대한민국으로.

 

연덕춘은 한국인 최초 프로 골퍼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1호 골퍼이며, KPGA 창립회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프로 골프 역사는 연덕춘에서 시작됐다. 그는 우리 프로 골프의 시조새와 같은 존재다.

1916년 서울에서 태어난 연덕춘은 국내 최초의 골프장인 경성골프클럽에서 캐디로 일하던 친척과의 인연으로 골프에 입문했다. 그는 1934년 일본으로 건너가 이듬해 프로 자격을 얻은 뒤 1941년 5월 일본오픈골프선수권대회 정상에 올랐다. 한국인 최초의 우승이자 한국 골프사에 길이 빛날 위업이었다.

 

일제강점기 한국 사람으로선 유일하게 출전해 내로라하는 일본 선수들을 꺾었다는 것은 기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프로 입문 6년 차인 한국 선수가 수많은 일본 선수들을 모두 이기리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더구나 일본 땅, 그것도 식민지 백성이라고 멸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그런 실력과 베짱이 나왔을까.

이는 손기정이 1936년 독일 베를린올림픽에서 마라톤을 제패한 데 뒤이은 쾌거이자 감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때 한국 골프는 장차 세계로 뻗어가는 시금석을 마련한 셈이다.

 

앞서 그는 1937년과 1938년 일본프로골프협회(JPGA) 선수권대회에 나가 잇따라 3위에 올랐고, 1938년 일본오픈에선 5위에 입상했다. 1942년엔 JPGA 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연덕춘은 1956년 캐나다에서 열린 캐나다컵(월드컵 전신)에 박명출과 함께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그는 1958년 필리핀오픈에서 4위에 올랐고, 같은 해 창설된 한국 최초의 프로골프 대회인 KPGA 선수권대회에서 초대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74세 때인 1990년엔 시니어부에서도 우승했다.

 

그는 프로 골프 선수로서뿐만 아니라 골프 지도자로서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후배 양성에 힘을 쏟아 국내 1세대 프로골프 선수들을 양산했다. 1968년에는 KPGA 창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제2대 KPGA 회장(1972~1973년)도 지냈다.

그가 키워낸 제자 중 한장상이 1972년 일본오픈에서 우승했다. 스승 연덕춘 이후 한국인으로는 31년 만이었다.

 

연덕춘은 지난 2004년 5월, 향년 88세로 작고했다. 평생 골프인으로 살다간 인생이었다.

올해는 그가 프로가 된 지 90년, 우리 곁을 떠난 지는 만 20년이 넘었다.

역대 일본오픈 우승자 이름에 노부하라 도쿠하루로 남았던 그가 연덕춘이란 이름을 되찾고 국적을 회복한 것은 정말 축하할 일이다.

 

8월 12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던 '대한민국 1호 프로골프 선수 고 연덕춘' 복원식. 이하 사진: KLPGA 제공

 

일본 오픈승 트로피에 새겨진 연덕춘의 영문명. 1941년과 290타 기록이 함께 새겨져 있다

 

복원식에 참석한 한일 골프 단체 관계자들 

 

그러나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마침 그에 대한 재평가와 기념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재 한국 골프 위상을 생각한다면 새삼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

KPGA와 KGA는 말할 것도 없고, 정부도 이런 여론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더 늦기전에...

 

김대진 편집국장

김대진 기자 djkim987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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