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강매화 기자 | 미국 이민당국이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해 건설 중인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현장을 급습해 450여명을 불법체류 혐의로 체포했다. 한국인 30여명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한미 양국 경제협력의 상징으로 불리던 대규모 투자 사업에 적잖은 충격이 가해졌다.

이번 단속은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과 이민세관단속국(ICE)을 비롯해 연방수사국(FBI), 마약단속국(DEA) 등 다수의 사법기관이 동원된 합동 작전으로, 수백 대의 법 집행 차량이 투입될 정도로 대규모로 진행됐다. 현지 언론은 “이민 당국이 특정 기업 건설 현장을 대상으로 이처럼 대규모 단속에 나선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체포된 인원 중에는 한국에서 파견된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협력업체 소속 직원 30여명도 포함됐다. 이들은 대부분 회의나 계약을 이유로 입국 가능한 B1 비자나 무비자 전자여행허가(ESTA)를 통해 미국에 들어왔지만, 실제로는 현장에서 건설 업무에 투입된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 이민법상 해당 비자 소지자는 노동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불법 취업에 해당한다는 것이 당국의 판단이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 측은 돌발적인 대규모 단속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HL-GA 배터리회사 홍보 담당자는 성명을 통해 “관계 당국과 전적으로 협력하고 있으며, 당국의 조사를 지원하기 위해 건설 작업을 일시 중단했다”고 밝혔다. LG에너지솔루션도 “임직원과 협력사 인원의 안전과 신속한 구금 해제를 위해 한국 정부 및 관계 기관과 협력하고 있으며, 통역과 변호사 지원 등 가능한 모든 조치를 하고 있다”고 입장을 전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이민법 위반을 넘어 한미 간 경제협력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에 건설 중인 현대차·LG엔솔 합작 공장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가 집행된 미국 내 최대 전기차 배터리 생산 거점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공장 가동이 지연되거나 인력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현대차그룹의 미국 내 전기차 생산 계획 전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현지 업계 관계자는 “이전부터 건설 현장에서 ESTA로 입국한 한국인이 근무한다는 얘기가 돌았고, 불법체류 혐의가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투입됐다는 소문도 있었다”며 “당국이 예의주시하다가 결국 대규모 단속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미 경제협력의 상징적인 투자 현장에서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는 점에서 파장이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도 신속히 대응에 나섰다. 외교부는 5일 “미국의 법 집행 과정에서 우리 투자기업의 정상적인 경제 활동과 국민 권익이 침해돼서는 안 된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또 주미국대사관과 주애틀랜타총영사관 영사를 현장에 급파해 체포된 한국인들의 상황을 점검하고 통역·법률 지원 등 필요한 조치를 진행 중이다. 아울러 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서도 우리 국민의 권익 보호를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태가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공장 건설 일정뿐 아니라 향후 미국에 진출한 다른 한국 기업들의 사업 운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업계 전문가는 “최근 미국은 불법 고용과 이민법 위반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 모두 인력 관리와 비자 문제에서 더 큰 부담을 지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이번 사태는 한미 경제협력 프로젝트가 단순한 투자 차원을 넘어 양국의 법과 제도, 노동 관행이 직접 충돌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향후 외교적 협의와 법적 절차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현대차·LG엔솔 합작 공장은 물론 한국 기업들의 미국 내 입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