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장·해양장·산골장 확산…“나 죽거든 자연으로 보내다오”

  • 등록 2025.09.08 12:3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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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지만 깊은 이별과 추모 트렌드

지이코노미 이창호 기자 | 당신은 마지막 순간, 어디에 머물고 싶은가?

누군가는 숲길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언덕을 떠올릴 것이고, 또 누군가는 일렁이는 바다 위에 자신을 띄워 보내달라 말할지도 모른다. 생의 끝에서 우리는 ‘장소’를 선택하고, 그 선택은 곧 삶의 태도를 반영한다. 그것은 더 이상 ‘남기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는 것’, 묘소가 아닌 자연 그 자체가 유산이 되는 흐름이다. 변화하는 장례문화 속에서 자연 친화적 방식이 어떻게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는지를 살펴보자.

 

한때 죽음은 무겁고도 형식적인 절차로 다뤄졌지만, 이제는 다르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장례가 조용히,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자연장, 해양장, 산골장—이 세 가지 방식은 장례의 개념을 바꾸고 있다.

 

이제 장례는 고인을 기리는 의식을 넘어,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온 삶을 닮은 조용하면서도 깊은 이별의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 흐름의 저변에 깔린, 죽음을 바라보는 현대인의 철학을 들여다보자.

 

 

형식이 무겁게 짓누르는 전통에서

죽음을 자연으로 대하는 인식의 전환

 

장례는 유교식 전통과 묘제 중심의 문화가 지배적이었다. 죽음은 슬픔에 잠긴 고리타분한 의례로 여겨졌고, 삼일장과 관례적 절차, 봉분과 묘지를 중심으로 한 매장이 일반적이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장례문화는 근본적인 전환점을 맞고 있다. 화장을 기본으로 한 자연 친화적 장례 방식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자연장, 해양장, 산골장이 있다. 이들 방식은 단순한 비용 절감이나 공간 확보 차원을 넘어서, 죽음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변화를 반영한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라는 유언은 더 이상 낯선 표현이 아니다.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묘비나 납골당이 아닌, 숲과 바다, 산과 들판에 안기기를 원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한국의 인구 구조, 가족 형태의 변화, 환경 문제에 관심 고조 등과 맞물리며 사회 전반에 새로운 장례문화의 흐름을 만들고 있다.

 

 

 

자연장, 숲을 품은 추모

땅을 차지하지 않는 흙으로 돌아가는 장례

 

자연장은 화장한 유골을 수목이나 잔디 아래 묻고 봉분이나 묘비 없이 자연에 스며들도록 하는 장례 방식이다. 기존의 납골당은 물론 전통 매장과 비교했을 때 공간을 차지하지 않고, 시각적으로도 조화를 이루는 친환경 방식으로 평가받는다.

 

산림청이 조성한 국립하늘숲추모원(경기도 양평)과 국립영천호국원 자연장림(경북) 등은 자연장을 원하는 시민들로 인해 예약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이들 자연장지는 숲길, 전망대, 생태학습장 등의 요소를 포함해 ‘장례시설이 아닌 숲 공원’에 가깝다.

 

젊은 세대들은 “자녀에게 묘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다”라는 의식을 갖는 경우가 많다. 서울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김진아 씨는 “부모님이 먼저 자연장을 원하셨고, 이제는 저도 당연한 선택처럼 느껴진다. 숲에 들러 조용히 걷고 나면 왠지 모를 위로가 된다”라고 전했다.

 

통계청과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자연장 선택 비율은 전체 장례의 약 22%에 이른다. 10년 전보다 5배 가까이 늘었다. 도시화, 납골당 포화, 관리 비용 등 다양한 현실적 요인에 더해 심리적 안식처로서 자연의 의미가 커지고 있다.

 

 

 

해양장, 화장 후 자연에 뿌리는

바다에 몸을 맡기고 떠나는 장례

 

해양장은 화장 후 유골을 바다에 뿌리는 방식으로, 최근 몇 년 사이 조용한 인기를 얻고 있다. 해양수산부 지침에 따라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진 해역에서 진행된다. 친환경 용기를 사용해 유골을 바다에 자연스럽게 뿌리는 것이 원칙이다.

 

이 방식은 부산, 여수, 인천 등 항구도시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유족은 고인을 모시고 선박에 승선해 바다 위에서 간단한 추모 의식과 함께 유골을 뿌리고 꽃과 편지를 띄우며 이별을 고한다. 이 과정은 장엄한 의식이자 치유의 시간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박성호 씨는 아버지를 해양장으로 보내드렸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낚시를 좋아하셨고, 바다를 제 집처럼 여기셨어요. 자연스럽게 바다에 안겨 떠나보내는 것이 그분의 삶과도 닮아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해양장은 관리 부담이 적다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묘지나 납골당 방문이 어려운 이들에게 바다라는 상징적인 공간은 추모의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다만 해양장은 일정한 규제와 신고 절차가 필요한 만큼, 공식 허가 업체를 통해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산골장, 직접적인 자연회귀 방식

흙과 들판에 고요히 스며드는 이별

 

산골장은 화장한 유골을 산이나 들판에 흩뿌리는 장례 방식이다. 자연장 중 가장 직접적인 자연 회귀 방식으로 꼽힌다. 유럽에서는 이미 1960년대부터 널리 시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수년 사이 비용 절감과 생태 친화성 측면에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산골장의 절차는 단순하지만, 법적 요건은 비교적 까다롭다. 유골을 3mm 이하의 가루로 분쇄하고, 국유지 또는 산림청 지정 장소에서만 가능하며, 무단 산골장은 불법이다. 가족이나 지인이 소유한 사유지에서 동의하에 조용히 치르는 경우도 많다.

 

산골장을 선택한 유족들은 자연 속에 흔적 없이 스며드는 방식이 가장 온전한 이별이라고 말한다. 가족들이 모여 숲길을 따라 걷다가 고인이 안식한 자리를 조용히 지나치는 행위 자체가 이미 의식이고 추모라는 인식이다. 일각에서는 “산골장은 관리나 추모가 어렵지 않느냐”라는 지적도 있으나, 그에 대한 반론은 명확하다. “지속적으로 묘소를 찾기보다, 살아가는 동안 고인을 품은 자연 전체를 기억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조용하지만 깊은 이별과 추모

“고인의 죽음 아닌 삶을 기억하자”

 

전통적인 장례문화가 의례의 무게와 형식에 집중했다면, 현대의 새로운 장례 트렌드는 ‘의미와 정서’에 집중하고 있다. 1인 가구, 무연고자 증가, 고령화의 심화는 가족 중심 장례에서 개인 맞춤형 장례로의 전환을 불러오고 있다.

 

202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40세 이하 응답자의 67%가 “자연친화적 장례 방식을 고려하겠다”라고 답했다. 여기에 “장례비가 부담스럽고, 유가족에게 관리 의무를 지우고 싶지 않다”는 현실적 이유도 작용하고 있다.

 

장례 업계도 변화에 발맞추고 있다. 자연장, 해양장, 산골장 전문 업체가 등장하고, 온라인 추모 공간, 생전 계약 장례 서비스, 가족 참여형 셀프 장례 등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유행이 아닌,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자 문화적 진화다.

 

자연장, 해양장, 산골장은 결국 삶의 마무리를 자연 속에서 그리는 방식이다. 죽음을 회피하거나 억지로 감추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조용히, 의미 있게 이별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이제 장례는 고인을 떠나보내는 의례이자, 남겨진 이들이 어떻게 기억하고 살아갈지를 되새기는 시간이 되고 있다. 묘지가 사라지고, 산과 들, 숲과 바다, 바람이 고인을 품게 되는 이 새로운 장례문화 속에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기억되기를 원하는가?”

이창호 기자 golf003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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