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이창희 기자 | 경기도의회 파행은 도민에게 '정치 뉴스'가 아니라 '내 삶의 일정'이었다.
예산 심의가 멈춘다는 말은 곧바로 아이들 돌봄, 취약계층 지원, 골목상권 숨통, 교통·안전 사업 같은 생활 현장이 줄줄이 늦어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언제 정상화되나"는 한숨이 커지던 때, 비서실장 사퇴와 도지사 사과로 예산 심의가 재개되며 겨우 숨을 돌리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수습의 온기가 채 퍼지기도 전에, 도민의 마음을 다시 차갑게 만드는 장면이 이어졌다.
성희롱성 발언 논란으로 촉발된 파행의 당사자로 지목된 양우식 경기도의회 운영위원장이 전국 협의체 회의에 참석해 '행정사무감사 실효성 강화'를 내세우며 공무원 불출석·자료제출 거부·증언거부에 대한 처벌 강화를 촉구한 것이다.
물론 행정사무감사는 필요하다. 도민 세금이 제대로 쓰였는지, 정책이 현장에서 작동하는지, 권한을 가진 기관이 책임을 다하는지 따져 묻는 절차다.
공무원이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하거나 자료 제출을 회피해 감사가 무력화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도민에게 돌아온다. 지방의회의 감사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 자체만 놓고 보면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순서와 태도다. 이번 사태는 공무원 불출석이 원인처럼 보이지만, 출발점에는 운영위원장 본인의 논란과 그로 인한 의회 신뢰 추락이 있었다.
도민 입장에서 보면 "파행을 만든 사람이 책임을 정리하기도 전에, 상대를 처벌하자고 더 강하게 말한다"는 인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상처를 만든 손이 붕대는커녕 칼날부터 꺼내 든 느낌이랄까.
더불어민주당이 "적반하장"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고, 불신임 추진까지 거론하는 이유도 결국 그 지점에 닿아 있다.
도민들은 '말싸움'보다 '책임'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잘못이 있었다면 정리하고, 공직자로서 최소한의 자숙과 설명을 거친 다음에야 제도 개선 논의를 꺼내는 게 상식적인 흐름이다.
예산 심의가 재개됐다지만, 도민이 체감하는 정상화는 '회의를 다시 연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파행을 둘러싼 갈등이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는 불안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예산안은 연말마다 촘촘한 시간표로 굴러가는데, 또다시 멈춘다면 피해는 행정도, 의회도 아닌 도민이 가장 먼저 떠안는다.
지금 도민이 듣고 싶은 말은 "누가 더 잘못했나"가 아니다. "다시는 이런 일로 민생을 흔들지 않겠다"는 약속과, 그 약속을 담보할 책임 있는 조치다.
의회는 의회대로 품격과 신뢰를 회복할 방안을 내놓고, 집행부는 집행부대로 출석·자료 제출 원칙을 분명히 하며, 무엇보다 논란의 핵심 당사자는 도민이 납득할 수준의 책임을 보여야 한다.
경기도의 예산은 정쟁의 카드가 아니라 도민의 생활비다. 도민이 바라는 수습은 '겨우 재개'가 아니라 확실한 정상화다.
그리고 그 정상화의 첫 단추는, 뒤에 숨어 칼을 휘두르는 듯한 모습이 아니라 앞에 서서 책임을 정리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