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선거의 공기가 달라지고 있다. 진영과 구호가 앞서던 선거판에 ‘누가 일을 잘하는가’라는 질문이 중심으로 떠오르면서다. 그 변화의 한복판에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이 있다.
아직 공식 출마 선언도 없지만, 정원오는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1위를 기록하며 단숨에 유력 주자로 떠올랐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무명 구청장’에 가까웠던 인물이 서울시장 판을 흔들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부상은 단순한 다크호스 등장이 아니다.
정원오의 부상은 민주당 경선 구도는 물론, 서울시장 선거 전체의 프레임을 흔들고 있다. 정치 경력이나 계파 경쟁이 아니라, 행정 성과와 문제 해결 능력이 핵심 기준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미 출마를 선언한 김영배 의원 등 경쟁 주자들 역시 앞다퉈 ‘행정 경험’을 강조하고 있다. 정원오라는 기준점이 생겼다는 의미다.
이 흐름에는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공개적 언급’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정치권에선 서울시장 선거를 이념 대결이 아닌 행정력 경쟁으로 끌어가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성과와 효능감을 중시해온 이 대통령의 정치 이력과, 정원오의 행정 스타일이 겹쳐 보인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원오를 서울시장 후보로 주목하게 만든 핵심 배경은 그의 지난 10여 년의 성과다. 성동구청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그는 성수동을 서울을 대표하는 도시 브랜드로 바꿔놓았다. 낙후된 준공업지대와 저층 주거지가 뒤섞였던 공간은, 지금 글로벌 도시재생 사례로 언급되는 지역이 됐다. 성수동의 변화는 정원오 재임 기간과 정확히 겹친다.
더 주목할 대목은 주민 평가다. 성동구는 강남권과 인접한 ‘한강벨트’ 지역으로, 전통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하다. 그럼에도 정원오는 민주당 소속으로 3선에 성공했고, 구정 만족도는 90%를 넘는다. 2022년 지방선거 당시 민주당이 서울 전역에서 참패했지만, 정원오는 한강벨트 12개 자치구 중 유일하게 승리했다. 득표율 57.6%는 민주당이 이긴 8개 자치구 중에서도 가장 높았다. ‘당이 아니라 일’로 평가받았다는 상징적 사례다.
정원오 정치의 또 다른 특징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 방식이다. 그는 리더가 앞에 서는 정치를 경계하며 ‘조연의 정치’를 말한다. 최근 출간한 책 『성수동』에서 그는 정치와 행정의 역할을 “조율과 지원”이라고 규정했다. 시민과 기업, 지역 공동체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이 행정의 본질이라는 인식이다.
이 지점에서 정원오는 오세훈 현 서울시장과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오 시장이 대형 프로젝트와 개발 중심의 시정을 이끌어왔다면, 정원오는 현장 중심의 생활 행정과 주민 소통을 통해 성과를 쌓아왔다. 종묘 고층빌딩 논란, 한강버스, 광화문광장 조형물 등 오 시장 시정의 쟁점이 부각될수록, 성수동 도시재생과 생활밀착형 성과는 더욱 대비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정치적 체급의 차이는 분명하다. 오세훈은 4선 서울시장으로 전국적 인지도와 조직력을 갖췄고, 정원오는 여전히 ‘구청장 출신’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그러나 선거가 ‘정치인 대 정치인’이 아닌 ‘행정가 대 행정가’ 구도로 재편될 경우, 그 격차는 빠르게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비교의 기준이 이력과 구호가 아니라, 누가 시민의 삶을 실제로 바꿔왔는가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정원오의 등장은 서울시장 선거를 다시 본질로 되돌려놓고 있다. 서울을 지배할 리더를 뽑는 선거가 아니라, 서울 시민의 일상을 가장 잘 이해하고 관리할 사람을 고르는 선거로 말이다. 진영의 언어가 아닌 행정의 언어로 경쟁하는 선거. 정원오의 부상은 그 변화가 이미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