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 시선] 쿠팡, 역대급 꼼수를 남기다

  • 등록 2025.12.30 09: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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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보상’ 뒤에 숨은 역대급 꼼수
소비자 보호는 실종, 마케팅만 남았다
통제받지 않는 플랫폼, 방치된 시민
이건 보상이 아니라 구조적 기만이다

쿠팡이 1조7천억 원을 보상하겠단다. 숫자만 보면 전례 없는 통 큰 결단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볼수록 남는 건 감탄이 아니라 허탈감이다. 이번 보상은 ‘역대급’이 맞다. 다만 규모가 아니라 꼼수의 수준에서다.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중대한 사고 앞에서 쿠팡이 내놓은 해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다시 들어오면 보상하겠다는 것이다. 탈퇴한 이용자도 대상이라고 했지만, 정작 이용권을 쓰려면 재가입이 필수다. 개인정보가 유출돼 등을 돌린 소비자에게 또다시 개인정보를 내놓으라는 구조다. 이쯤 되면 사과가 아니라 계산이다.

 

쿠팡이 내세운 보상액은 1인당 5만 원. 하지만 실제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은 고작 1만 원 수준이다. 쿠팡 본몰과 쿠팡이츠에서 각각 5천 원씩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4만 원은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전용이다. 여행 상품이나 고가 소비를 전제로 한 구조로, 추가 지출 없이는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결국 ‘5만 원 보상’이라는 말은 소비자를 현혹하기 위한 포장에 가깝다.

 

이쯤 되면 의문이 아니라 결론에 가깝다. 이번 조치는 피해 회복이 아니라, 소비를 다시 끌어올리기 위한 설계다. 참여연대가 “보상이 아니라 국민 기만”이라고 지적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거 통신사·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례에서는 1인당 10만~30만 원 수준의 실질적 보상 논의가 있었다. 그에 비하면 쿠팡은 최소 비용으로 책임을 덮으려는 길을 택했다. ‘많이 준 것처럼 보이게 하되, 실제로는 적게 쓰는 방식’이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로켓배송의 속도 뒤에 가려졌던 노동 문제, 물류센터 사망 사고, 플랫폼 노동 책임 논란까지. 쿠팡은 늘 사과했고, 늘 대책을 말했지만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이번 개인정보 유출 대응 역시 다르지 않다. 책임은 분산되고, 부담은 소비자에게 넘어간다. 쿠팡은 언제나 ‘문제는 인정하되, 비용은 최소화하는 방식’을 택해왔다.

 

이번 보상안은 쿠팡의 오래된 경영 철학을 다시 드러낸다. 사과는 말로 하고, 비용은 소비자에게 넘긴다. 재가입을 전제로 한 보상, 추가 지출을 유도하는 구조, 그리고 이를 ‘역대급 보상’이라 포장하는 방식까지.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쿠팡에게 고객은 보호의 대상인가, 아니면 데이터와 매출로 환산되는 숫자에 불과한가.

 

이번 보상은 역대 최대가 아니다. 역대급 불신을 남긴 결정이다.

 

숫자는 컸지만 책임은 없었고, 사과는 있었지만 진정성은 보이지 않았다. 쿠팡이 진정 신뢰를 회복하고 싶다면, 할인쿠폰이 아니라 책임의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1조7천억 원은 ‘보상’이 아니라, 스스로 신뢰를 허문 비용으로 기록될 것이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문채형 기자 moon113@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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